탈탄소, 새로운 도약 'RE100' | ① 이상과 현실, 기업들은 혼란

"현 전기요금체계시 부담 과다, 저렴한 요금이 성공열쇠"

2020-09-14 11:32:27 게재

내일신문, 국내기업 30개사 설문조사

기업 선호도 1위 '녹색요금제·PPA'

"제도 첫발, CEO 결단·자율경쟁 중요"

내년부터 국내 기업들도 RE100 캠페인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내친김에 충남 당진에 국내 최초로 'RE100 산업단지'를 만든다는 청사진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목표를 이행해야 하는 기업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탈탄소 시대에 발맞춰 국내 기업들이 나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내일신문은 3회에 걸쳐 기업들의 RE100 준비 현황을 살펴보고 현실적인 실행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RE100을 하고 싶어도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 정부 인센티브 부족과 현 전기요금체계로는 섣불리 에너지전환에 동참하기 힘들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RE100(Renewable Energy 100%) 제도와 관련, 기업들의 체감도를 압축한 말이다.

세계 시장에 불고 있는 RE100 캠페인이 국내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동안은 의지가 있어도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없었다면, 내년부터 제도가 도입되는 만큼 이제는 실행에 옮길 단계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분위기다. 정부 정책 역시 구체적인 세부안을 만들고 있는 단계여서 당분간 시장 혼란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RE100은 최소 2050년까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전력량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발전된 전력으로 사용하겠다는 캠페인이다.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인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영국의 탄소공개프로젝트(CDP·Carbon Disclosure Project)가 연합해 개최한 2014년 뉴욕 기후주간에서 처음 발족됐다.

기업특성에 맞춰 조달 방법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재생에너지 조달 전력량이 목표대비 어느 정도인지 CDP에 보고해 인증을 받아야 한다. 캠페인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 제도 발표에도 아직 결정 꺼려져" = 내일신문은 8월 11일부터 21일까지 국내 기업체 30곳을 대상으로 'RE100 도입 계획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RE100에 대한 관심도는 상당히 높지만 실행을 못하는 이유 1위는 'RE100 전환시 정부 인센티브 부족'(37.1%, 복수응답)이었다.

이어 '현재의 값싼 전기요금체계로는 RE100 전환 동력이 없음' 17.1%, '기술 및 인력 확보 어려움' 14.3%, '기술개발 자금 부족' 8.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A업체 관계자는 "기업은 결국 가격경쟁력 등이 있어야 움직이는데, 현 산업용 요금 체계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시 더 비싼 비용을 내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RE100 선언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룹사 차원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서 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RE100 참여시 기업들이 정부에게 가장 원하는 지원은 온실가스 감축 부분이었다. 'RE100 도입시 필요한 정부 지원 및 제도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1위가 '재생에너지 구매시 온실가스 감축 인정'(31.0%, 복수응답)이었다.

이어 재생에너지 구매시 세제 혜택 24.1%, 재생에너지 시설 투자 지원 20.7%,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지원 10.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감축 인정 부분은 일정 부분 해소된 측면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RE100 이행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녹색 프리미엄제(녹색요금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구매 △제3자 PPA △지분투자 △자가발전 등 5가지 이행방안을 내놨다.

녹색요금제를 제외한 나머지 이행 수단에 대해서는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 주기로 한 상태다.

◆가격 경쟁력 'PPA', 리스크 예방 '녹색요금제' = 기업들이 RE100 참여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녹색요금제와 PPA(각각 33.3%)였다. 이어 자가설비구축과 지분 참여가 각각 10.0%로 조사됐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재생에너지 생산 설비를 설치하기에는 초기 투자비용, 대지 확보 문제 등 여러 가지로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 확인 됐다.

PPA를 선택한 기업들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격'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B업체 관계자는 "PPA의 경우 초기 투자비용이 들지 않으며 장기계약시 녹색요금제 보다 낮은 비용으로 재생에너지 수급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력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C업체 관계자는 "전력 대량 구입에 유리하다는 생각 때문에 PPA 방식을 선호한다"며 "제3자를 거치지 않고 발전사업자랑 직접 가격 딜을 할 수 있으면 가격적인 측면에도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녹색요금제를 선택한 기업들은 '리스크 예방'과 '용이성'을 그 이유로 꼽았다.

D업체 관계자는 "간접 투자 방식인 녹색요금제가 직접 설비 운영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업체 관계자는 "주변에 해당 인프라가 없을 경우 전력 수급의 어려움 등이 있을 수 있어 녹색요금제가 안정적이라고 판단한다"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F업체 관계자는 "참여 방법이 쉽고 업종 특성에 맞춰 실행하기가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한전 전력 직접생산에 대해서는 찬반 '팽팽' = 산업부가 지난 2일 발표한 RE100 이행 지원 방안 중에는 제3자 PPA가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자와 수요자간 직접 거래를 하는 PPA가 활성화된 미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한국전력이 중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기소비자간 전력거래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PPA의 또다른 형태인 제3자 PPA가 등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기사업법에서는 전기사업자가 2종류 이상의 사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전사업자는 배전이나 판매 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송갑석 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서구갑)은 한국전력도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한해 직접 전력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시장형 공기업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신·재생발전사업을 하는 경우에 한정해 전기사업자에게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하는게 주요 골자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돼 한국전력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전력 생산도 할 수 있게 된다면 RE100 시장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한국전력이 직접 전력 생산이 가능해지면 어떠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질문에 '긍정(매우 긍정+긍정)'이 43.3%, '부정(매우 부정+부정)'이 43.3%로 나타났다. '긍정' 답변을 한 이유 1순위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대폭 확대 가능'이었다. 반면 '부정' 답변을 한 이유 1순위는 'RE100 시장의 자율경쟁 체제 활성화 저하'로 나타났다.

◆당초 취지에 맞춰 기업 자율성 확보가 중요 = 이번 조사에 따르면 RE100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기업들이 원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자율성'이었다.

때문에 정부가 제도 도입 초기에 일정부분 가격 하한선이나 상한선을 설정해 시장 안정화를 해줄 필요가 있냐는 질문에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PPA계약시 가격 범위를 정부가 규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33.3%가 '필요 없다'고 답했다. '필요하다'는 답변도 33.3%로 동일했다.

PPA계약시 정부의 개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율가격경쟁 체계가 극대화해 저렴한 가격이 가능해진다'(43.8%)였다. 또한 '시장 활성화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37.5%)는 의견도 많았다.

사실 RE100은 기업의 자발성에 바탕을 둔 이니셔티브다. 기업 자본으로 에너지 전환시 발생할 수 있는 국민 비용부담을 덜면서 에너지 전환 속도를 앞당기는 만큼 기업이 최대한 자율적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독려할 필요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이슈와 논점-RE100 캠페인의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RE100의 장점 중 하나는 정부와 공공기관 주도로 에너지 전환을 할 때 시민들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공공재정이 아닌 민간자본을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과 투자 확대를 유도해 일반 시민들에게 전가되는 부담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까지 잡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제도 형성 뒤에도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함께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구매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어려움에 대한 솔루션을 함께 고민해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어떻게 조사했나

'RE100 도입 계획 실태 조사'는 이메일을 통한 설문 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RE100에 동참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업종 추이를 분석, 조사 대상 업종으로 IT 금융업 전기전자업종 석유화학 반도체 에너지업종 등을 선정했다.

1차 조사는 8월 11월부터 21일까지 이뤄졌다. 40여개 업체들에게 설문 답변을 요청해 34곳의 답변을 받았다. 이 중 중복응답 등 통계상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설문들을 제외, 30곳의 데이터를 냈다. 기업들의 솔직한 의견들을 듣기위해 기업별 세부 내용은 일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메일 설문 조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차 추가 전화 인터뷰 등을 실시했다.

■ 설문조사 누가 참여 했나

경동원 금호석유화학 동아 동아제약 두산중공업 롯데케미칼 삼성화재해상보험 삼성SDI 솔라커넥트 신성이엔지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SKE&S SK하이닉스 HM일렉트로닉 LG디스플레이 LG화학 오비맥주 우성케미칼 유한양행 KB국민은행 케이티앤지 KT 태양금속공업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한화솔루션 헤리트 해줌 현대제철 환경시설관리

(이상 기업 30곳,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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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이재호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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