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낮은 실효성'
감사위원 1인 분리선출 … 독립적 감사위원회 구성 난망
선임단계에서 영향력 행사는 진전
자회사 이사 상대로 소송제기 가능
"공정경제 의미 퇴색된 최저 기준"
김우찬(고려대 교수) 경제개혁연구소 소장은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외환위기 직후 9년간 감사위원 분리선출 방식이 적용됐었다"며 "당시 소액주주가 이를 활용하지 못했고 투기자본도 악용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채이배 전 의원도 "이번 개정안은 2017년 이후 법무부가 20대 국회에서 야당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박근혜정부안보다 후퇴했다"며 "여당은 재계의 무리한 반발에 물러서지 말고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한걸음 정도 나간 것' = 상법 개정안 가운데 재계가 가장 반발한 내용은 감사위원회위원 분리선출과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조항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조항에 대해 "주식회사 기본룰에 위배될 수 있다"며 "분리선출제도 시행시 투기펀드 머니게임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반대했다.
현행 상법은 주총에서 이사를 선임한 뒤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회)위원을 선임하도록 돼 있다.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선임한다는 입법 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다. 사실 예전 상법은 감사위원 선출방식을 '분리선출'로 했다. 2009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일괄선출 방식'이 명문화됐고 이사선임 단계에서 대주주 의결권제한이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 영향력이 제한되지 않게 된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상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방식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위원회 구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며 "다만 일부 위원만이 아닌 모든 위원을 대상으로 분리선출 방식으로 선임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감사위원 1명에 대해 분리선출한다고 돼 있다. 채 의원은 "한명의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출도 어렵거니와 선출됐다고 해서 견제와 균형이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투기자본의 악용에 대해 그는 "외국 투자자들이 의사결정을 함께하기는 쉽지 않다"며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사례처럼 외국 투자자들 국적도 다르고 펀드목적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도 "그동안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총수일가 등을 견제하지 못했다. 지금껏 사외이사 자격요건만 까다롭게 만들었다"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선임단계에서 소액주주 영향력을 받는 감사위원을 뽑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 한걸음 정도 나가는 '최저 기준'이라는 얘기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 도입도 이번 상법 개정안 주요 내용이다.
김 소장은 "독일국채금리 연계 파생상품인 DLF 사건에서 우리은행지주 주주들이 우리은행 이사인 은행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며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이같은 소송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의미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지분율 50% 초과를 기준으로 한 모ㆍ자회사 관계에 대해서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51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50% 초과 모·자회사 기준을 적용할 경우 다중대표소송 적용 회사 비율은 64.82%에 불과했다. 30% 초과 출자 기준으로 할 경우 82.24%로 크게 늘어 실효성이 높아지는 것과 대비된다.
◆"사익편취 대상 회사 범위는 확대했지만" =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실효성 평가 점수는 상법보다 낮다.
김 소장은 "총수일가 사익편취 대상 회사 범위에 지분 50% 자회사를 포함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며 "하지만 실제 공정위가 총수일가에게 사익편취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재판에서 승소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요건들이 그대로 있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는 한 애매모호한 사안일 경우 규제를 빠져 나간다는 설명이다.
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사익편취 규제 조항 시행 이후 이 규정 위반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사례는 대한항공 등 8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대한항공과 조원태 회장 고발건은 고등법원에서 패소해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사익편취 규제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거래의 '부당성'과 '상당성' 예외사유 해당성 등을 공정위가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익편취 적용 대상을 총수일가가 20% 이상(상장·비상장 동일) 지분을 보유한 국내 계열사로 강화한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새로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 삼성생명 현대글로비스 등 30곳이 포함된다. 또 총수일가가 20% 이상 보유한 계열회사가 50%를 초과해 보유중인 자회사도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데 삼성웰스토리 현대첨단소재 등 358개 회사가 이에 해당한다. 현행보다 1.85배 많은 계열회사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되는 셈이다.
◆의결권 제한 조항 다수 포함 = 대주주나 대주주와 관계가 있는 주주들의 의결권 제한 조항이 이번 개정안에 다수 포함됐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자산 10조원 이상)의 모든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5월 현재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구조를 형성중인 기업집단은 현대차(4개) 태광(2개)그룹 뿐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에서는 SM(5개)과 KG(10개)가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개정안 부칙에서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행사를 그대로 허용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질적인 규제 범위는 현재와 변함이 없다.
다만 자산총액이 10조원에 근접하면서 순환출자를 형성하고 있는 기업집단인 SM이 의결권 제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대기업집단의 금융·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보유한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해 원칙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상장 비금융 계열회사의 경우 주요 안건에 대해 특수관계인과 합해 15%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개정안은 예외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되 계열사간 합병, 영업양도 등의 경우는 제외하는 것으로 했다. 즉 합병이나 영업양도의 경우 금융ㆍ보험회사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얘기다.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비금융 상장회사 보통주에서 의결권 제한이 발생하는 회사는 삼성그룹의 6개사(삼성전자 호텔신라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와 하림(팬오션) HDC(HDC) 등 8개사다. 이 가운데 개정안의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곳은 에스원(의결권 2.4% 감소) 삼성전자(3.9% 감소) 호텔신라(5.3% 감소) 등 3개사다. 이들 회사는 총수일가 측이 단독으로 합병이나 영업양도 안건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의결권도 금융·보험회사 의결권 제한 규정과 같다. 계열사 합병이나 영업양도의 경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실제 분석결과 대기업집단 80개 공익법인이 보유중인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 발생할 수 있다. 삼성생명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삼성문화재단 등 공익법인 지분 7.6%가 이에 해당한다. 80개 회사 가운데 48개는 의결권 제한 효과가 1% 미만이고 24개는 1~3% 미만으로 의결권 제한 효과가 크지 않다.
의결권 제한 효과가 있는 회사는 삼성생명(삼성)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현대중공업) 포스포엠텍(포스코) E1(LS) 4개사다. 이들 회사는 의결권 제한 후에도 50% 가까운 지분율을 확보하고 있어 지배주주측에 실질적인 영향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기존 지주사는 개정안 규제받지 않아 = 대기업집단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규정도 포함됐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개정안은 지주회사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현행 상장 20%이상, 비상장 40% 이상에서 상장 30%, 비상장 50% 이상으로 각각 10%p상향하도록 했다. 지주회사 행위규제 강화 규제는 지주회사로 새롭게 설립되거나 전환되는 경우부터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기존 대기업집단은 규제에서 빠지게 됐다.
기존 대기업집단 가운데 롯데지주 10개, 한투금융지주 9개, SK 8개, 한진칼 7개, 효성 소속 7개 자·손자회사가 개정안에 따른 지분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개정안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은 사실상 특혜이며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예외규정을 그대로 두고 있어 의미가 상당히 퇴색했다"고 말했다.
◆재계 "의결권 제한은 기업 사회공헌활동 위축 우려" = 대한상의는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이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순기능까지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외국에서도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을 입법한 사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공신력있는 기관이 공익법인 공익활동을 평가하고 적정 인증을 못받은 경우에 한해 의결권을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10대그룹 임원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나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지분율 상향 규제는 기업에 부담"이라며 "경쟁력을 높이는 곳에 사용할 자원이 경영권 방어에 쓰이게 되는 셈"이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