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방역 수능' 수험생이 진정한 승자다

2020-12-03 11:20:35 게재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오늘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다.

초유의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와 가정 방역까지 이중 삼중의 혹독한 자기 검역(檢疫) 속에서 최선을 다한 49만 수험생에게 큰 격려를 보낸다. 또, 진정한 승자라고 말하고 싶다.

길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을 '오직 단 하루, 이날'을 위해 뒷바라지해온 가족, 코로나 포비아(phobia) 속에서도 제자 한명 한명을 챙겨온 선생님의 큰 고생에도 형언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린다.

수능을 앞두고 또다시 확산한 코로나 팬데믹(Pandemic)으로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어떤 집은 엄마만 남고, 아빠는 임시 숙소로 옮겼다. 한 달 전부터 '집콕'하고, 거실에서도 수험생과 동선이 겹치지 말아야 했다. 인근 학교나 학원에서 감염된 학생이 나오면, 관련 학교는 코로나19 전수 검사에 임시휴교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나가는 비행기 시간도 조정해 세계적 뉴스거리가 되곤 하는 대한민국 수능일이 올해는 '병원 시험장' '자가격리 대상 시험장' 투명 칸막이,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수능'으로 또 화제가 됐다.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하고, 학교와 학원을 매일같이 '라이딩(Riding)'해 주는 대부분의 맹모(孟母)와 가족에게 '딱 한 번'뿐인 수능에 실패하면 그동안의 모든 수고는 물거품이 된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자가격리돼 낯선 환경을 접한 수험생의 심적 동요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때문에, 자녀 2명을 대학에 보낸 아버지이자 교육학자로서 수능 '단판 승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연구와 실증적 경험을 통해 수능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개인 삶의 '조건'까지 달라지는 허망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에는 수능을 2번 본 적이 있지만 난이도 조절 실패로 바로 폐기됐다. 2011년과 2017년에도 수능 복수 시행을 검토했지만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처럼 절대평가도 아니고, 난이도 조절과 시험 출제 범위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반면 학생·학부모는 수능 2회 실시 방안에 대해 찬성의 목소리가 높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 교육에 몰고 온 광풍을 보면서, 기성세대가 IT 강국을 자처하며 가상현실과 AI 기반의 미래 교육 등 장밋빛 이야기를 쏟아 낸 것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판명됐다. 막상 통일된 가이드라인은 물론 원격수업 플랫폼 하나 없는 등 학생과 교사의 입장에서는 그들만의 '언어 유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능 2회 응시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학창시절 내내 수능을 준비해온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순리라고 본다.

혹여나,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난이도 문제는 1차와 2차 수능 점수와 분포도 등을 비교·종합해 가칭 '난이도 조정계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결과에 수긍하는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수험생이 원하는 점수를 활용하고, 2회 응시 여부는 본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고착된 기성세대의 판단으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동안 학생·학부모의 고통은 흘러온 세대 만큼이나 누적되고 있다. 이제는 엄청난 심적 부담과 개인 삶까지 좌우하는 수능 '단판 승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요즘 젊은 세대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라고 한다. 공정은 시대변화와 세대의 가치에 따라 상대적이다. 그래서 '만드는 게 아니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지금의 '방역 수능'을 보며, 어떤 것이 수험생에게 보다 공정하고 사회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숙의할 필요가 있다.

아무쪼록 올해 최선을 다해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바라는 결과를 얻도록 아버지의 심정으로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