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인식 전환이 석유수요에 큰 영향 미쳐

2020-12-08 11:09:20 게재

"'피크오일' 갑자기 대세가 되다" 에서 이어집니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석유수요 감소 예측의 차이는 암울한 경제전망이나 재택근무 확산으로만 설명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올해 두드러진 또 다른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바로 전기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다. 운수송은 전 세계 원유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 3/4은 육상교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전기차를 셈법에 넣어야 석유수요를 제대로 전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 1~9월 전 세계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다.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 모두 영향을 받았다. 단 테슬라는 예외였다. 전기차 제조사인 테슬라는 역대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미 경제가 침체에 빠졌지만, 테슬라에겐 가장 장기간 이익을 내는 분기였다. S&P500지수에 편입된 해이기도 했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테슬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통의 내연기관차들이 판매부진을 겪었지만 대개의 전기차는 판매신장을 이뤘다. 폭스바겐과 다임러는 총매출에서 역대급 감소를 기록했다. 주력인 내연기관차 부문의 부진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 부문에선 2배의 매출을 기록했다.

내연기관차는 이미 정점 지나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격리와 봉쇄로 전 세계 주요 도심의 하늘은 맑았다. 자전거 판매량은 급증했다. 가솔린 첨가제로 사용되던 에탄올은 손세정제로 모습을 바꿔 팔렸다.

내연기관엔진과 전기차 구동장치의 엇갈린 운명은 2018년 처음 두드러졌다. 둔화하는 자동차 판매 흐름을 전기차가 역으로 돌파하던 때다. 그러자 일부 전문가들은 화석연료 자동차가 2017년 수준을 회복할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연기관차 판매가 정점에 달했다는 주장은 단지 이론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그 이론을 현실로 만들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내년 35종의 새로운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기 위해 작업중이다. 테슬라는 올해 텍사스주 오스틴에 전기 픽업트럭과 전기 트레일러를 생산하는 공장 착공에 돌입했다. 자금력이 풍부한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 '루시드 모터스'는 신차 출시를 위한 막바지 작업중이다. 수십개의 미래 전기차 모델을 위해 새로운 모듈 플랫폼을 구축한 폭스바겐은 이곳에서 첫 번째 전기차를 만들어 판매중이다. 중국 자동차제조사들은 서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신차 출시를 준비중이다. 비야디의 탕 EV600, 지리자동차의 폴스타2, 샤오펑의 P7 등이다.

배터리는 기술이다. 연료가 아니다. 더 많이 생산할수록, 더 싸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 자체 추산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공급이 2배 늘어날 때마다, 가격은 약 18%씩 낮아진다. 과거 전기차는 가솔린 차보다 제조비용이 컸다. 이제 셈법이 바뀌고 있다.


결국 관건은 배터리 가격이다. 전문가들은 킬로와트시(kWh) 당 100달러가 돼야 가솔린 연료 자동차와 가격경쟁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 관문을 통과한 업체는 이후 전기차 가격을 계속 낮출 수 있다.

전 세계 판매량 1위 업체 폭스바겐은 "올해 출시한 ID.3 세단, 곧 출시예정인 ID.4 컴팩트SUV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1kWh 당 100달러 관문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배터리공급업체인 중국 CATL 역시 거래업체들에 100달러대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지난 9월 '배터리데이'를 주최했다. 자동차 제조사 중 처음으로 배터리를 직접 제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2023년 1kWh 당 배터리 가격을 현재보다 56% 낮춰 58달러에 공급하겠다고 장담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전기차 제조역량에서 수년을 앞선 것처럼 배터리 역시 크게 앞설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대중시장이 열리려면 배터리 가격이 하락해야만 한다. 그러면 선순환이 이뤄진다. 배터리 가격이 낮아지면 고객들이 더 많은 전기차를 구매하고, 그러면 다시 배터리 가격이 더 낮아진다"고 전했다.

전기차에 집중하는 유럽

유럽은 올해 초 강력한 자동차 연료 효율 규제를 시작했다. 소비자들도 이에 화답했다. 석유가 풍부한 노르웨이에서도 올해 팔린 신차의 70% 이상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또는 순수전기차였다.

유럽 전반의 전기차 점유율은 올 3분기 신차 판매의 1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의 전기차 점유율(6%)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또 3년 만에 처음으로 전기차 판매대수에서 중국을 제쳤다. 유럽에서 3분기 37만1000대의 전기차가 팔렸다. 중국은 32만7000대였다.

유럽의 연료효율 규제에 따르면 배출가스를 줄이는 데 실패한 기업은 상당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아니면 청정 자동차를 제조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공동풀을 만들어야 한다. 테슬라가 이 정책의 덕을 톡톡히 봤다. 유럽에 첫 번째 공장을 짓기에 충분한 매출흐름을 만들었다. 테슬라는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베를린 공장을 착공했다. 내년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차로 유럽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중국도 예상치 못한 전기차 시장의 활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 부양책의 일환으로 지난 4월 사라질 예정이었던 전기차 보조금이 2022년까지 연장되면서다. 중국은 9월 전 세계를 놀래켰다. 전 세계 가장 오염이 심한 나라인 중국이 2060년까지 순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그러자 일본과 한국이 뒤따랐다. 양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에너지 지정학 지도에서 마지막 남은 퍼즐 조각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는 나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박차고 나갔다. 자동차 연료 효율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청정에너지 보조금을 종료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졌다.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은 전직 국무장관 존 케리를 기후변화특별대사에 지명했다. 장관급 자리다. 파리협약 설계자인 케리는 "신정부 출범 첫 날 협약에 재가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2050년 탄소중립 정책 수립과 미국 전력망의 친환경 정비 작업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로써 미국과 중국 EU 등 글로벌 3대 강국들이 석유로부터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할 태세다. 3개 주체는 전 세계 원유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블룸버그 산하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인 '블룸버그NEF'의 냇 불러드는 "지금껏 나온 에너지 수요 전망에는 현재와 같은 에너지 지정학 배경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향후 석유수요가 새로운 고점을 다시 돌파한다는 주장보다는 평탄하다가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이 더 탄력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21세기 에너지 권력 이동

올해 2월 BP의 새로운 CEO 버나드 루니는 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 "30년 뒤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두 달 뒤 로열더치셸 역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5월엔 프랑스 최대 석유기업 토탈SA가 뒤따랐다. 스페인 최대 석유기업 렙솔과 이탈리아 최대 기업 ENI는 이미 지난해 그같은 목표를 밝혔다.

블룸버그는 "이들 석유기업의 탄소중립 세부내역은 다양하다. 탄소중립 선언은 석유업계를 양분하는 일종의 경계선이 됐다. 과거와 결별에 나선 기업들은 석유기업으로 인식되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어떤 요인이 사업전략의 전면적 변화를 이끌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석유에 대한 장기 수요 전망이 변해서인지, 아니면 대중과 사회의 압력이 커져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두 가지 측면 모두 고려가 됐을 것"이라며 "석유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최종결론은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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