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빅데이터로 정보 가공서 우위 확보

2021-01-06 12:24:12 게재

포린폴리시 심층기획 ③ … 관민 긴밀한 협조로 데이터 수집·처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2017년, 막후에선 또 다른 싸움이 고조되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 정보기관들이 치열한 정보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점차 자신감을 갖고 야심을 키워가는 중국 때문에, 그리고 수십년 동안 적수가 없었던 미국에게 중국이 경제와 정치, 국가안보 측면에서 도전장을 던졌다고 믿는 트럼프행정부 내 핵심 요직들의 확신 때문에, 미중 첩보전은 가열되고 있었다.

중국은 미국의 매파들이 득세할 다양한 먹잇감을 제공했다. 2017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미국 개인신용정보업체인 ‘에퀴팩스’에 대한 대규모 해킹을 배후조종한 의혹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 군부와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해커들은 사회보장넘버와 집주소, 생년월일, 운전면허, 신용카드 정보 등 약 1억4700만명의 개인정보를 탈취한 뒤 종적을 감췄다.

트럼프행정부의 중국정책은 1960년대 냉전 이래 가장 적대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행정부 내 핵심 중국 참모들의 의견은 갈렸다. 2018년 초까지 미 국가안보회의(NSC) 선임 전략기획국장으로 일했던 로버트 스팰딩은 “트럼프정부 첫해 NSC에서 중국정책 방향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의견대립은 2018년부터 봉합됐다. 트럼프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또 중국에 온건했던 수전 손튼 동아태차관보가 하차한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술기업의 데이터 처리능력 적극 활용

그러나 일각에선 트럼프행정부의 갈지자 행보가 중국정책의 신뢰성을 해쳤다고 봤다. 행정부 내 많은 인사들이 중국 기술기업들이 미국에 안보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다른 인사들은 중국 기업들의 미국시장 접근 여부를 무역전쟁 협상카드로 인식했다.

트럼프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국 중싱통신(ZTE)은 안보위협을 이유로 미국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 기업은 ZTE와 사업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무역협상을 위한 카드로 ZTE 퇴출을 보류했다. 트럼프는 2018년 5월 트위터에 “시진핑 주석과 나는 ZTE가 미국시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다. 중국에서 너무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상무부에 이를 바로잡도록 지시했다”고 올렸다.

세계 최대 이동통신장비업체 화웨이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행정부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해 캐나다에서 체포된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을 국내로 송환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중국과의 무역협상 수단으로 송환요청을 중단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혼란을 주기도 했다.

미 정보기관들은 화웨이가 중국 정보기관과 긴밀히 연계됐다고 주장한다. 그밖의 주요 기업들도 중국 당국가(party-state) 체제에 복종하거나 연계됐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인민해방군은 과거 수십년 동안 중국 산업계의 지배적인 주체였다. 병원사업에서 콘돔 생산공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체를 보유했다. 과거 중국 공산당은 부패 일소 차원에서 군부소유 기업을 강제로 분할하거나 매각하곤 했다.

2017년 중국은 새로운 국가정보법을 제정했다. 중국 정보기관이나 보안기관의 요청을 받을 경우 기업들은 이에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이다. 중앙정보국(CIA) 전직 선임간부는 “수년 전부터 암묵적으로 벌어지던 상황을 비로소 성문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행정부 후반기 각 정보기관에 ‘중국 정부와 민간기업의 관계를 시사하는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중국 민간기업과 정보기관 사이에 데이터 이전 등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이 벌어지는 방대한 증거를 수집했다고 한다. 트럼프행정부에서 국가안보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민관이 일상적으로 협력한다는 증거가 포착됐다”며 “중국 기업들은 사실상 공산당의 사업적 날개였다. 기업들은 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보기관과 협력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윌리엄 에바니나 소장은 “정보기관이 해킹 등을 통해 획득한 방대한 벌크데이터를, 민간기업들이 정교하게 거르고 가공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면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현직 정보요원들은 “중국 정보기관들은 민간기업에게 ‘빅데이터 분석능력을 활용해 벌크데이터를 가공처리하라’고 지시한다”며 “높은 정보가치를 지닌 미국 인사관리처(OPM) 해킹 데이터 등이 대표적이다. 엄선된 정보는 다시 중국 국영기업들에 넘겨진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보기관 현직 간부는 “미국 NSA나 CIA가 중국 군부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 ‘주말 동안 이 정보를 분석 처리해 다음주에 넘기라’고 지시한다고 상상해보라. 이는 중국이 하고 있는 일이다. 중국은 정보기관에 협력하는 알리바바와 바이두를 갖고 있다. 미국엔 그런 기업이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중국 기술기업의 데이터처리 능력을 끌어들이면서 중국 정보기관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신속히 걸러 가치가 높은 핵심정보를 추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중국 국가안전부(MSS)가 수집한 다양한 실시간 여행정보와 미국 인사관리처(OPM) 해킹 데이터를 교차 검토하면 해외에서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CIA 요원을 적발할 수 있다는 것. 포린폴리시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알리바바와 바이두에 문의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민간기업 기술자들은 정상적 기업 원해

물론 중국 민관의 정보협력이 늘 매끄러웠던 건 아니라고 한다. 미국 방첩기관의 전직 수장은 “민간기업들은 인질로 잡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에 대한 논쟁이 내부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관들은 중국정부를 위해 가욋일을 해야 하는 데 화가 난 중국기업 직원들로부터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 전문가이자 ‘신미국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인 엘사 카니아는 “많은 중국 기술기업들은 이념이나 국가안보 증진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는 정상적인 기업이 되기를 원할 것”이라며 “대부분의 중국 기술기업들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체제 내에서 활동한다는 점, 거기서 일탈할 경우 보복이 따를 가능성이 높은 체제 내에서 활동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은 긴밀한 민관 연계설에 극구 부인한다. 미국의 전면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는 “우리 회사는 임직원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측은 ‘중국 군부가 사실상 소유한 기업’으로 확신하고 있다.

CIA 전직 선임간부는 “메시징 애플리케이션 ‘위챗’을 운영하는 중국 기술기업인 텐센트는 MSS로부터 창업비용을 지원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간부는 “중국 정부가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나 민간 감시망을 구축할 당시 MSS가 텐센트에 종잣돈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텐센트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며 “스타트업으로서 우리 회사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초기엔 창업자들에게서, 이후엔 미국 인터내셔널데이터그룹(IDG)과 홍콩 통신업체 PCCW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우리는 지난 16년간 언제나 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이었다”고 반박했다.

정보흐름,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중국의 지적재산권 탈취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다. 과거 중국 정보기관들의 경제스파이 행위는 중국 기업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해킹 등으로 얻은 데이터를 민간기업에 보내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한 사례들이 많았다. 정부 또는 군부와 계약사업을 주로 하는 미국 기업들은 온라인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집중 타깃이 됐다.

미 국가안보국(NSA) 위협대응센터 스티브 라이언 부국장은 “2000년 당시 미국 정보요원들은 중국이 사이버활동을 통해 미 국방부 계약업체들에 침투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는 2006년까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국방산업기지를 중심으로 산업기밀을 마구잡이로 빼갔다. 그리고 나서 관련 기업을 설립했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폐업하는 일이 많았다. 우리는 이를 계속 지켜봤다”고 덧붙였다.

그같은 사이버 침투는 만연했다. 2014년 미 상원 국방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정부 해커들은 미 국방부 수송사령부를 한해 20차례나 침투했다. 또 중국 해커들은 2018년 미 해군 계약업체에 침투해 잠수함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고도로 민감한 정보를 빼가기도 했다. 미국에서 탈취한 설계도로 중국이 신형 전투기와 무기시스템을 내놓자 미 정부는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자체 첩보능력을 발휘해 해당 설계도가 중국 정보기관이 통제하는 데이터센터를 거쳐 반관반민의 중국 군산복합체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중국 민관의 이같은 초기 협력모델은 일방향이었다. 중국 정보기관에서 기업으로 정보가 흘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중국의 거대 기술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처리 능력과 노하우를 갖게 됐다. 미 정보기관들은 "이젠 민간기업들이 정부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미중 정보전쟁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 전직 요원은 "중국 정보기관들이 활용하는 민간 기업들은 이제 스스로를 거대하고 합법적이고 다국적이라고 말한다"며 "이 기업들은 더 이상 왜소한 계약업체들이 아니다.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라고 말했다. NSA 위협대응센터 라이언 부국장은 "중국 정보기관들이 민간기업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정보수집능력뿐 아니라 정보처리능력까지 큰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정보기관들은 법적인 한계, 문화적 특성 등으로 민간기업들에게 '사이버해킹 정보를 선별 가공하라'고 지시할 수 없다. 즉 민간기업들의 데이터처리 능력을 징발할 수 없다.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미국 정보기관들의 우선순위는 중국이 미 인사관리처(OPM) 해킹자료 등 각종 데이터를 빅데이터 분석해 알아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미 정부 공무원, 요원들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게 됐는지 파악하는 일이었다. 3명의 정보기관 전현직 선임간부들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의 일부분이나마 파악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직 정보기관 선임 간부는 "OPM 해킹 정보를 분석처리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이 작업을 마쳤을 때 확인된 그림은 아름답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미 정보기관 보고서엔 '속이 뒤집히는 내용'으로 표현됐다고 한 선임간부는 말했다.

정보기관 현직 선임간부는 "중국은 에퀴팩스를 통해 신용정보를, 앤썸을 통해 건강정보를, 메리어트를 통해 여행·이동 정보를 더했다. 중국은 우리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스파이의 타깃이 될 수 있는 미국인에 대해 중국이 알고 있는 것을 우리도 따라잡으려고 애쓰고 있다"며 "우리가 파악한 중국의 이해관계와 해당 정보를 결합한 뒤 잠재적 타깃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준다. 우리에겐 새로운 종류의 사업모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도 새로운 사업모델을 시험하고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 전직간부는 "NSC와 정보기관들은 중국이 메리어트와 에퀴팩스, OPM, 기타 해킹으로 얻은 데이터로 미국 스파이를 적발하는 '안보사냥'을 넘어 경제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정보기관의 비밀임무에 가담하지 않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미국 기업들을 재정적으로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아니면 중국 기업들에게 상대적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고위 관리를 지낸 션 캐넉은 "국제 호텔체인을 확대하려거나 국제여행업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이 유나이티드항공이나 메리어트호텔, 아메리칸항공의 고객 정보를 보유하게 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사 '앤썸' 해킹자료를 통해 중국 기업들은 미국 보건의료 시장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또 미국인의 방대한 건강정보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거쳐 더 나은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 외국인투자위원회'를 적극 활용해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를 깐깐히 조사한 것도 이런 우려였다고 한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에 거액의 투자를 하는 이유가 단순한 경제 목적을 넘어 개인정보를 확보하는 것도 포함됐다는 것. 그렇게 되면 미국인의 개인정보가 통째로 중국 정보기관에 넘어갈 수 있다.

바이든, 트럼프와 방향 다르지 않을 것

조 바이든이 이끌 미국 차기 행정부의 최우선 외교정책은 당연히 미중관계 설정이 될 전망이다. 포린폴리시는 "양당의 분열과 대립이 극심한 워싱턴 정치권에서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은 거의 유일한 초당파적 소재"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와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방향 자체가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와 기술기업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 걱정거리가 될 전망이다. 화웨이나 알리바바, 바이트댄스와 같은 중국 기술기업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포린폴리시는 "중국은 지구상에 거주하는 5명중 1명을 글로벌 인터넷 생태계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젠 미국도 데이터를 보다 엄격히 통제해 중국 기업들과 정보기관들로부터 분리하려 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데이터 안보가 당과 정부의 안위에 중요하다고 본다. 미 정보기관의 전직 분석가는 "중국의 사이버안보 시스템은 중국 내 모든 기업, 모든 개인에게 백도어를 요구한다"며 "그같은 백도어가 공격자를 만들어내고 기업의 보안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린폴리시는 "중국 정보기관과 기업들의 밀착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며 "중국은 가장 중요한 교역파트너인 미국과 경제적 디커플링을 한다고 해도, 디커플링이 중국 내부의 불안정을 야기한다 해도 이를 감수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쇄효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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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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