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차진료 육성, 국가가 맡아야 한다

2021-02-02 13:09:08 게재

30년 넘게 담배를 피워 온 55세 A씨. 최근 대학병원에서 유명한 K흉부외과의에게 폐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고 A씨는 ‘역시 K의사는 명의’라고 생각하며 큰 고마움을 전했다. 반면 30년 전 동네의원 P의사를 만나 20년간 피워 오던 담배를 끊은 75세의 B씨. 금연을 한 덕분인지 평생 폐암에 걸리지 않았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우수한 진료일까? 아니 누가 더 건강에 도움을 주었을까?

중병 예방하는 주치의, 1석 5조

비슷한 상황은 많다. 심부전을 잘 치료하는 심장내과의는 ‘명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만, 고혈압을 잘 관리해줘서 환자가 심부전에 걸리지 않게 한 동네의사는 TV에 나오지 못한다. 복수까지 찼던 알코올성 간경화 말기 환자를 간이식으로 살려준 외과교수는 세계인명사전에 등재되지만, 간곡하고 끈질긴 상담으로 환자가 술을 끊게 해 간경화에 안 걸리게 한 동네의사는 네이버 인물 검색에도 안 나온다.

이렇듯 동네에서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일차진료의는 그 역할과 실력에서 과소평가되기 쉽다. 하지만 일차진료의들이 실력과 사명감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인정받는 주치의가 됐을 때, 우리나라에 산재된 보건의료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수 있다.

주민들에게 신뢰받고 실력이 출중한 주치의들이 어떤 지역을 맡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지역 주민들의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골다공증 등 흔한 만성질환들을 잘 관리한다. 잘 관리하므로 3차병원에 가야할 합병증 환자들이 덜 생긴다. 또 주치의들이 감기 배탈 두통 발열 등 급성 증상들을 잘 처리하면 3차병원 응급실에 갈 환자들이 줄어든다.

3차병원에서는 환자가 줄어드니 환자 1명당 진료 시간은 늘고 수술대기는 준다. 응급실 대기도 줄어들어 입원이 빨라진다. 우수한 주치의는 금연 절주 식이 운동 체중조절 등 건강증진상담과 행동요법에도 능하므로 담배 술 비만 운동부족 때문에 생기는 각종 암과 심뇌혈관질환의 발생 자체를 줄일 수 있다. 또 그들은 국가건강검진을 비롯한 건강검진의 시행을 독려하므로 각종 암들을 조기 발견해 암사망률도 낮출 수 있다.

양질의 일차진료 수련 지원 필수

환자 입장에서 살펴보자. 실력있는 일차진료의를 자신의 주치의로 두면 고혈압 당뇨병 등 대부분의 만성질환을 가까운 곳에서 꾸준히 관리할 수 있다. 급성증상이 생겨도 일단 주치의를 찾아가면 해결해주든지 큰 병원을 가야할지 결정해준다. 평소에 궁금한 건강상식도 주치의한테 물어보면 된다. 큰 병원에 가야 할 때도 정확한 진료과와 교수님을 지정해주니 시간과 노력이 절약된다. 평소에 잘 아는 사이니 방어진료를 할 필요도 없고, 인간적으로도 친하니 정신건강 문제 등도 상담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정국에도 1339로 전화해 생판 모르는 사람과 상의하는 것보다 주치의랑 상의하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1석 4조, 5조의 효과가 있는 셈이다.

이렇듯 책임감 있고 유능한 일차진료의들이 많으면 환자, 환자 가족, 병의원, 지역사회, 3차병원 등 국가 보건체계의 많은 분야에서 선순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책임감과 실력을 갖춘 의학도들이 일차진료의를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또 지원한 의학도들이 양질의 일차진료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많은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양질의 일차진료 육성을 비롯한 일차진료 강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