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다-3.지방정부 자치권한 커진다

지자체, 제 몸에 맞는 옷 골라 입는다

2021-02-03 11:18:15 게재

주민이 지자체 기관구성 형태 선택

100만 특례시·특별지자체도 만든다

32년 만에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이 2022년 1월 시행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주민이 조례를 직접 발의할 수 있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주민투표·주민감사청구도 쉬워진다.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전문인력도 둘 수 있다. 주민투표를 거치면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형태를 바꾸는 일도 가능해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치분권 2.0'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가 3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내일신문은 행정안전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과 함께 새롭게 바뀌는 제도가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미리 살펴본다. 주민과 지자체가 준비해야 할 일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27일 염태영 수원시장과 이재준 고양시장, 백군기 용인시장, 허성무 창원시장(왼쪽부터)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특례시 권한 확보를 위한 시장 간담회'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들 단체장들은 이날 특례시 명칭부여에 걸맞는 권한 확보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진 수원시 제공


내년부터 주민투표를 통해 지자체 기관구성 형태를 바꿀 수 있다. 지금처럼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모두 주민이 직접 선출할 수도 있고 미국 등의 자치정부처럼 단체장을 직선으로 뽑지 않고 지방의회가 간선으로 뽑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바로 '제4조'다.

이 조항에는 지자체의 기관구성을 다양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4조는 '지자체의 의회와 집행기관에 관한 이 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따로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임방법을 포함한 지자체 기관구성 형태를 달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단, 기관구성을 달리하려는 경우에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자체 기관운영 형태 다양화 =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1949년 지방자치법이 처음 제정된 이래 '기관대립형'을 채택하고 있다. '기관대립형'은 주민이 직선제로 단체장과 의원을 따로 뽑아 상호 견제하도록 한 형태를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자체장의 권한이 지방의회를 압도하기 때문에 '강' 시장-'약' 의회 형으로도 불린다. 그러다보니 의회가 견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미국 독일 등 연방제 국가들처럼 지자체의 기관구성 형태를 다양화하고 주민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과 독일은 주민들이 지방정부 기관구성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영국은 지방자치단체가 법에 규정된 몇 가지 기관구성 형태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외의 지방정부 구성형태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우리나라 같은 '강단체장-약의회형'(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분야별 집행위원회를 운영하고 시장직을 겸직하는 의장이 이를 총괄하는 '의회중심형'(스웨덴 영국 등), 의회가 임명한 시장과 책임행정관이 집행부를 이끄는 '단체장 간선-책임행정관형'(호주 핀란드 미국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스위스 등의 작은 도시에서 채택한 총회형 지방정부가 있다. 주민총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중요사안을 결정하고 이를 집행할 대리인을 임명해 지방정부를 운영하는 형태다. 스위스 지방정부에선 시민권 부여문제를 주민총회에서 결정하기도 한다.

◆오는 2026년 9기 지방선거부터 적용될 듯 =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기관구성 형태 다양화 모델 설계 및 법제화 방안 연구'에서 "주민주권 강화, 단체장 권한집중 문제 개선, 지역별 차이와 급격한 행정환경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관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한국형 지자체 기관구성 모델'로 3가지를 제시했다. 현재 운영 중인 '단체장 중심형'(기관대립형), 단체장 권한집중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단체장 권한분산형', 내각제와 유사한 기관통합형 구성 형태인 '의회 중심형'이 그것이다.<표 참조>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기관구성 형태와 관련된 별도의 법률안을 마련해 내년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법률안이 예정대로 통과될 경우 2026년 9기 지방선거부터 자치단체 기관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의회중심형'을 선택할 경우 단체장 선거가 없어지고 선출된 지방의회 의원 중 한명이 단체장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황종규 동양대 교수는 "지방정부 운영형태를 주민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의 본질"이라며 "주민주권 실현을 지향하는 근대 지방정부 기관형태는 주민총회형이 맞지만 외국처럼 기초지자체 규모가 읍·면·동 수준으로 바뀌어야 현실적으로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아쉬운 점도 많지만 자치단체 기관운영 형태를 주민이 선택하도록 한 것은 새로운 지방자치의 물꼬를 트는 의미있는 일"이라며 "지방정부가 제 몸에 맞는 옷을 골라 입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중앙-광역-기초 행정구조도 변화 =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로 단편화된 행정구조도 변화한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특례시'가 생기고, 2개 이상의 지자체가 특정 목적을 위해 특별지자체를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우선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지위가 인정된다. 경기 수원·고양·용인시와 경남 창원시가 '특례시'로 지정돼 일반시와 차별되는 광역시에 준하는 권한을 보장받게 된다. 하지만 어떠한 행정·재정적 '특례'를 받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아 이들 4개 특례시와 경기도·경남도와의 권한 다툼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특별지지체 구성이 가능하지면서 부울경 단체장들은 동남권 광역연합을 우선 추진하고 단계적으로 행정통합까지 이루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별지방자치단체는 2개 이상의 지자체가 공동의 특정 목적을 위해 광역적으로 사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을 때 행정구역에 관계없이 설치할 수 있는 특수형태의 지자체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중앙과 지방의 협력관계가 정립되고 자치권도 강화된다. 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과정에 지방의 주요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설치한다. 지역적인 사무는 지역에 우선 배분하는 보충성의 원칙 등 국가-지방 간 사무배분 원칙과 준수의무를 규정했다. 또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에 대해 하위법령에서 위임의 내용과 범위를 제한하거나 직접 규정하지 못하도록 해 자치입법권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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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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