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다-4.자치분권2.0 어떻게 준비할까

"후속입법, 지방정부로 도약해야" 한목소리

2021-02-05 11:28:23 게재

자치입법 원천봉쇄 여전

주민자치회 부활 움직임

"근본적 해법은 헌법개정"

32년 만에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이 2022년 1월 시행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주민이 조례를 직접 발의할 수 있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주민투표·주민감사청구도 쉬워진다.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전문인력도 둘 수 있다. 주민투표를 거치면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형태를 바꾸는 일도 가능해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치분권 2.0'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가 3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내일신문은 행정안전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과 함께 새롭게 바뀌는 제도가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미리 살펴본다. 주민과 지자체가 준비해야 할 일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들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단은 25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을 간담회를 갖고 기초중심 2단계 재정분권 등 지방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제종길 시군구협의회 사무총장, 곽상욱 경기 오산시장, 박재민 행안부 지방재정경제실장,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 전해철 행안부 장관, 박성호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 김승수 전북 전주시장,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 황명선 충남 논산시장, 사진행정안전부 제공

"무엇을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인가?" "30년간 요구해온 핵심적인 내용은 빠져있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이 이달 공포되면서 32년만의 변화를 축하하는 분위기와 함께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기초지자체 차원에서는 진전된 내용이 전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국회에서는 법률안이 통과된 지 한달만에 보완 법률을 발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조례제정권 더 약화될 수도" = 지방의 정책자율성을 상징하는 조례제정권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치입법권' 문제다.

새 법률 28조 2항에 따르면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은 그 법령의 하위 법령에서 그 위임의 내용과 범위를 제한하거나 직접 규정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법령에서 '조례로 위임한 사항'은 대통령령이나 총리령 부령 등으로 내용과 범위를 제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는 기존 법률과는 달리 '자치입법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사회는 "국가가 시키는 경우에만 조례를 정할 수 있도록 해 지방의 필요에 의한 자율적인 자치입법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반자치적 조항"이라며 "자치입법권이 신장된 것처럼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고 악평한다. 신설 조항이 없어도 법령에서 조례에 위임한 내용을 하위법령에서 규정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위법'이기 때문이다.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방분권전국회의는 "신설조항을 반대 해석하면 '법령으로 조례에 위임했더라도 대등한 법령이나 상위법령으로 직접 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며 "오히려 조례제정권의 입지를 더 좁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자치행정의 핵심 영역인 자치조직권이 보장되지 못한 부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지역 특성과 주민 요구에 따라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정법률에 반영되지 않았다. 지자체는 여전히 지방자치법에서 규정한 정수만큼만 부단체장을 임명할 수 있고 대통령령에서 규정한 숫자대로 실·국·본부를 두어야 한다.

심지어 정부가 앞서 논의에 포함시켰던 시·도 부단체장 증원도 새 법률에서 빠졌다. 송하진(전북도지사) 시도지사협의회장은 "부단체장에 관한 규정은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중앙부처와 달리 지역에서 종합행정을 구현하는 지방정부가 탄력적으로 조직을 구성·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법률에 제한적으로 규정돼 있는 부단체장 정수를 조례로 증원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아쉬워했다.

자치를 위한 재정권 역시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지방세 비중은 1995년 21.2%에서 지난해 25.9%로 25년간 4.7%p 증가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여전히 정책수단으로 지방세를 볼모로 삼는다. 지난해 6억원 이하 1주택자에 대해 기초지자체 주요 세원인 재산세를 감면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지자체는 중앙과 지방 자치분권위원회가 참여하는 '2차 재정분권TF'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읍·면·동 주민자치 물 건너가나 = 읍·면·동 단위 풀뿌리자치를 상징하는 '주민자치회' 조항은 통째로 삭제됐다. 법률 1조에서 지방자치법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지방자치행정에 주민 참여를 보장한다는 점을 명시하는데 그쳤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40개 읍과 129개 면, 457개 동까지 626개 기초 행정단위에서 주민자치회를 시행 중이다. '지방분권법'에 근거한 주민자치회를 지방자치법에 담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는 게 당초 목표였다. 하지만 법안심사 과정에서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와의 관계, 정치적 중립성 확보방안 등에 대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아예 삭제됐다.

전부개정안 핵심 중 하나가 지방자치 주체인 주민이 적극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인데 정작 그 내용이 누락된 셈이다. 지방분권전국회의는 "선진국 수준의 풀뿌리자치를 위한 읍·면·동 자치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개정법률에서 무시됐다"며 "주민들은 동네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시·군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구경꾼으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황명선(충남 논산시장)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은 "조항 삭제가 오히려 주민자치회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된 역설적 상황"이라며 "조속한 시기에 근거조항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이 보다 활성화된 주민자치회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국회에서는 전부개정안이 통과된지 한달여만에 이를 보완하는 '주민자치기본법'을 추진하고 있다. 읍·면·동단위 주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민총회에서 자치계획 승인과 행정사무 위임·위탁, 주민감사·조례발안 청구권 결정 등을 맡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이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이밖에 지방의회 아쉬움을 달랠 '지방의회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개정법률은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의원 정수의 절반으로 제한했는가 하면 인사권 독립과 함께 필요한 조직권은 여전히 집행부에 주었다.

◆지방자치 정신, 헌법에 담아야 = 학계와 시민사회 지자체는 개정법률을 보완하는 후속 입법과 함께 문재인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지방분권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지방정부'로 규정, 독자적인 입법권 조직권 재정권을 보장해야 진정한 지방자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률 개정 과정에서도 논의가 됐지만 헌법에 가로막혔다.

이동진(도봉구청장)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은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 지방자치가 부활했는데 현재 헌법은 1987년 개정돼 그 정신이 제대로 반영돼있지 않고 지방은 여전히 중앙정부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헌법에 지방정부를 명시, 지방자치 정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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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홍범택 김신일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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