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본 빅테크, 커져도 너무 커졌다?

2021-02-08 14:44:17 게재

영국 가디언 “이익·주가 급등 … 미·EU 당국, 거대한 영향력에 고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적어도 한 그룹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바로 미국 ‘빅테크’(Big Tech·거대기술기업)다.

애플과 아마존은 지난해 4분기 각각 10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영국 유통전문기업 테스코가 지난 한해 벌어들인 것보다 25%나 많은 액수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최근 CEO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26년 전 미국 시애틀에서 창업한 아마존에겐 중대한 시기다. 그럼에도 아마존 주가는 거의 요동치지 않았다. 아마존 사업 역시 별 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페이스북과 아마존, 넷플릭스, 알파벳(구글 모회사),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식스’(Big Six) 주가는 거침없는 상승세로 미 증시를 이끌고 있다.

S&P500 지수는 지난해 18% 넘게 상승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지난해 3월 증시가 붕괴한 것을 고려하면 눈부신 반전이다. 증시를 견인한 힘의 2/3는 빅식스의 가치상승에 따른 것이었다.

아마존 주가는 지난해 62% 상승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기준 시가총액은 1조6600억달러로, 전년 대비 6500억달러 늘었다. 애플 주가는 지난해 70% 이상 상승했다. 1조달러 넘는 시가총액을 더해 2조3000억달러다.

MS는 1조8300억달러, 알파벳은 1조4000억달러, 테슬라는 8100억달러, 페이스북은 7590억달러, 넷플릭스는 2380억달러다.

2021년 현재까지 빅식스의 상승세는 꺾일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애플은 지난달 “2020년 4분기가 역대 가장 이익이 많이 난 분기”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역시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장세가 가팔라졌다”고 말했다.

아마존은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분기매출 1000억달러를 넘었다. 은퇴를 선언한 베이조스는 향후 우주사업과 기후위기 대응펀드인 ‘어스펀드’, 워싱턴포스트 사업에 더욱 집중할 방침이다. 알파벳은 2분기 연속 자체 매출기록을 갈아치웠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7일 “빅테크는 기록적인 실적에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날로 커지는 영향력에 미국 워싱턴 정가가 규제의 칼날을 갈고 있다”며 “특히 빅테크에 비판적인 미국 민주당이 백악관과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장악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빅테크’는 얼마나 큰가

2018년 8월 애플은 전세계 처음으로 1조달러 시가총액을 기록한 기업이 됐다. 정확히 2년 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인 2020년 8월 애플 주가는 2조달러 관문을 돌파했다.

가디언은 “빅테크의 이례적으로 큰 몸집은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2019년 알파벳의 매출은 1620억달러였다. 같은해 헝가리 경제 규모를 넘어섰다. 지난 회계연도 애플의 세전이익은 670억달러다. 영국정부의 국방·교통 예산을 모두 메우고도 남는다”고 전했다.

아마존 임직원은 전세계 120만명에 달한다. 1위 월마트, 2위 중국석유화학집단공사(시노펙)에 이은 3위다.

논란이 있지만 최근 빅테크에 신규진입한 기업은 테슬라다. 투자자들은 테슬라를 단순 전기차 제조사가 아니라 기술플랫폼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 브랜드와 향후 완성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미래 교통을 지배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그같은 논리에 테슬라는 전세계 가장 가치 있는 기업 리스트에 올랐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다. 테슬라 주가는 2020년 초 주당 86달러였지만 현재 845달러로 10배 올랐다. 일부 투자자들이 ‘테슬라가 거품에 휩싸인 게 아닌가’ 우려할 정도다.

빅테크는 어떻게 그렇게 커졌나

증시에 대한 한가지 공통의 불만은 실물경제와 단절됐다는 것이다. 주요국 경제가 역사적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도 주가가 오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반인의 삶에 더 가까워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격리된 가족에겐 모바일폰과 이에 들어가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하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컴퓨터의 쓰임새는 더 커졌다.

테슬라가 선도한 전기차 기술은 기후변화 위기와 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투자자들은 뒤늦게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하지만 빅테크는 나머지 기업들의 운명과 점차 멀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 GMO의 공동 창업자이자 유명 투자가인 제러미 그랜덤은 지난달 “테슬라 시장가치는 테슬라가 1년 동안 판매한 모든 자동차의 1대당 가격이 125만달러인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면 경쟁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판매한 자동차 1대당 가격은 9000달러에 그친다”고 말했다.

빅테크의 고공행진은 5대 기업들에 시장가치가 집중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집중은 1970년대 초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수준이다.

당시 증시는 올드산업기업에 지배됐다. 사진용품회사 이스트먼 코닥, 엑슨모빌 전신 스탠더드오일, GM 등이 IBM과 AT&T와 함께 5대 회사에 속했다. 이제 빅테크는 올드기업들을 톱5에서 완전히 밀어냈다.

주가 급등에 누가 혜택 보나

빅테크 주가상승은 개인의 부를 역대급으로 늘렸다. 1000억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센티빌리어네어’(centibillionaire) 등 새로운 계급의 하이퍼리치를 탄생시켰다. 창업자들이 보유한 주식 덕분이다.

2020년 베이조스와 머스크는 각각 1000억달러 이상 벌었다. 초당 3000달러를 번 셈이었다. 이달 3일 기준 테슬라 일론 머스크의 재산은 2040억달러,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1930억달러, 알파벳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1870억달러, MS의 빌 게이츠는 1340억달러,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1010억달러,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아내인 로렌 파월 잡스는 210억달러,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는 62억달러에 달했다.

다른 수혜자도 있다. 블랙록 뱅가드 리걸앤드제너럴 등 미국 월가와 영국 시티오브런던의 투자기업들이다. 이들은 연기금 같은 고객들의 자산을 불려주면서 넉넉한 수수료를 챙긴다. 연기금 재산이 늘어나면 은퇴를 위해 저축하는 수억명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영국 연금운용사 베일리 기포드는 테슬라에 투자해 290억달러를 벌었다. 이곳에 자산을 맡긴 연기금과 재단 자선단체 등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베일리 기포드 산하 ‘스코티시 모기지 인베스트먼트 트러스트’(SMIT)는 2013년 테슬라를 집중 매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당 6달러 선이었다. 현재 840달러대다. 테슬라 덕분에 SMIT는 2017년 영국 FTSE100지수에 편입됐다. 지난해 테슬라 주가 급등으로 SMIT는 FTSE100 상장기업 중 가장 좋은 실적을 거둔 회사가 됐다.

규모는 왜 문제가 되나

규모가 크면 힘을 얻는다. 알고리즘의 단순 변화가 기술기업 플랫폼에 의존하는 작은 기업들의 존폐를 좌우한다. 2018년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바꿨다. 소규모 온라인 매체들의 매출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아마존 검색순위 결정의 복잡성은 이에 조언을 하는 기업들을 양산하기도 했다.

빅테크는 점차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려 한다. 구글은 2014년 골드만삭스를 제치고 정치 기부금을 가장 많이 쓰는 기업에 올랐다. 빅식스 기업들이 2019년 로비자금으로 쓴 총액은 6400만달러였다. 기업 이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하지만 로비자금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빅테크가 정부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빅테크의 몸집은 또 다른 이점을 준다. 규모가 커질수록, 상대방이 이에 도전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는 지배적 기업에 관련된 오래된 문제다. 거대기업들은 규모를 활용해 더 나은 거래를 타결하거나 단가를 낮춘다. 소셜네트워크나 아마존의 소매네트워크 등의 테크 플랫폼은 유저들이 많아질수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네트워크 효과’다.

빅테크가 당국과 부딪히는 지점

빅테크 기업들은 경쟁법 위반 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 부분적인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더 싸게 제공한다’는 논리가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점행위에 대한 조사가 늘어나고 있다.

일부 빅테크들은 위협적인 경쟁기업을 비싼 가격에 사들이면서 사전에 싹을 잘라내고 있다. 미 의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이메일에 “인스타그램을 사들여 사전에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저커버그의 말대로 페이스북은 실제 인스타그램을 사들였다. 그러면서 '기존 서비스와 연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메시징 기술과 페이스북 산하 소셜네트워크인 왓츠앱을 연동하고 있다.

구글은 미국에서 인터넷 검색 독점에 대한 강도높은 반독점 조사에 직면했다. 2017년 유럽연합(EU)은 구글이 자사 서비스 검색기록을 조작하는 등 권한을 남용해 제3의 사업자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아이폰 유저에게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기업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유명 게임 포트나이트를 만드는 '에픽게임즈'와 음악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는 앱스토어를 통해 올린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가져가겠다는 애플의 고집에 맞서 소송을 걸었다. 이들은 "애플이 제3의 앱개발자에게 오래 전부터 불공정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은 얼마나 내나

미국의 모든 기술기업들은 공통적으로 탁월해 보이는 절세기술을 갖췄다. 일각에선 규모가 작은 경쟁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불공평한 기술이라고 비판한다.

빅테크는 전세계 각국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해 얻은 이익을 룩셈부르크나 버뮤다, 아일랜드 등 세율이 낮은 국가들로 옮긴다. 비영리조직인 '페어택스마크'는 지난해 "특히 아마존은 불투명한 세금 구조를 갖고 있다. 이익에 비해 턱없이 낮은 세금을 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페어택스마크에 따르면 빅식스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전세계 각국에 내야 할 세금 가운데 최소 1000억달러를 덜 냈다. 이 세금은 전세계 각국이 공공서비스와 인프라 건설의 재원으로 쓰는 돈이다. 이익을 조세회피처로 옮기거나 창조적인 회계기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이용할 수 없는 기법이다.

과거 미국의 법인세율은 35%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21%로 줄었다. 그럼에도 빅테크 세율은 그보다 낮았다. 페어택스마크에 따르면 2010~2019년 10년 동안 평균 애플이 낸 법인세율은 17.1%, MS는 16.8%, 알파벳은 15.8%, 넷플릭스는 15.8%, 아마존은 12.7%, 페이스북은 10.2%였다. 각 기술기업은 복잡한 영업방식과 재무구조를 갖고 있어 외부인은 이들이 각국에 정확히 얼마나 세금을 내야하는지 추산하기 어렵다. 영국 세금감시 기구 '택스와치UK'는 "2012~2017년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MS 시스코가 영국에 내야 할 법인세 50억파운드를 덜 냈다"고 추산했다.

세금을 제대로 내게 할 수 있나

전세계 각국은 빅테크의 세금회피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글로벌 세제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최근까지 미온적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연대해 미국 테크기업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려는 노력들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가디언은 "그러나 조 바이든 행정부는 '빅테크에 제대로 과세하자'는 움직임에 제한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고 전했다.

개별국가 차원에서도 빅테크를 겨냥하고 있다. 영국 등은 디지털서비스세금을 부과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마존은 '그같은 부과금을 내지 않을 것이며 플랫폼을 이용하는 제3자 셀러에게 떠넘길 것'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가디언은 "한 국가가 홀로 시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고 전했다.

빅테크는 해체될 수 있나

결국 빅테크와 정면승부를 겨룰 곳은 이들의 거대시장인 미국과 EU다.

EU는 빅테크에 대한 싸움에서 일부 주목할 만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또 고통스런 패배도 기록했다. 애플은 지난해 '아일랜드에 세금 130억유로를 추가로 낼 필요가 없다'는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미국은 1890년 제정된 독점금지법 '셔먼법'으로 거대 기업들을 강제 해체한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11년 스탠더드오일을 34개의 독립기업으로 해체한 것이었다. 1984년 AT&T를 해체했다. 1998년 MS를 두 회사로 나눴지만 항소심에서 이를 뒤집기도 했다.

미국 의회는 최근 '빅테크가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위원회 보고서를 냈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구글에 대해 반독점 소송을 걸었다. 법무부는 "셔먼법을 동원해 경쟁이 가진 긍정적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독점소송은 보통 수년 동안 진행된다. 따라서 당국은 빅테크의 완전한 해체보다 점진적인 개선책을 통해 제기된 문제점을 해결할 가능성이 크다.

가디언은 "민주 공화 양당으로 분열된 미국 정치권에서도 빅테크에 대한 규제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며 "2019년 당시 상원의원이던 카멀라 해리스는 빅테크에 보다 많은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현재 미국의 부통령이 됐다. 빅테크가 향후 4년 동안 녹록지 않은 시절을 보낼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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