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가난의 땅이 여성창업공간으로
서울 '스페이스 살림' 육아·업무 한곳서
여성창업가 중점 지원, 150개 회사 입주
수십년 동안 미군기지와 갈 곳 없는 여성들의 피난처로 쓰였던 땅에 국내최대 여성창업공간이 들어섰다.
서울시는 동작구 대방동 옛 미군기지 부지에 조성된 '스페이스 살림' 개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스페이스 살림은 서울시가 2017년부터 짓기 시작한 여성창업공간이다. 대표자가 여성이거나 직원 수 절반 이상이 여성인 여성기업을 중점 지원한다. 지하 2층, 지상 7층에 연면적 1만7957㎡로 광화문광장과 견줄 만큼 큰 규모로 조성된다.
건물 내에는 사무공간 뿐 아니라 자녀 돌봄 걱정을 덜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들어선다. 지하 1, 2층에는 사무실과 공방 형태 매장, 회의실, 녹음·편집촬영실 등이 꾸며졌다. 1층에는 자녀 동반 사무실, 마을서재, 카페, 공유주방, 시간제돌봄센터, 키움센터, 실외놀이터 등이 들어섰다. 2층에는 사무실 식당 회의실 등이, 3~7층에는 야외공연장, 옥상텃밭도 마련됐다.
스페이스 살림이 들어선 곳은 1952년부터 55년간 미군기지 '캠프 그레이'가 있던 자리다. 바로 옆에는 서울시립부녀보호소가 있었다. 1963년부터 36년간 갈 곳없는 여성들의 임시 보호소 역할을 하던 곳이다. 분단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여성들 삶이 담긴 자리가 새 삶을 개척하는 여성 창업가들 도전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스페이스 살림이란 명칭에도 여성 일자리와 가족 관계를 모두 살리자는 뜻이 담겼다.
2007년 캠프 그레이 이전 뒤 활용방안을 찾던 서울시가 공모를 통해 스페이스 살림을 조성키로 했다. 시민 설문, 아이디어 공모전, 박람회 등을 거쳐 2017년 12월부터 공사를 시작, 지난해 마쳤다. 하지만 일반 시민에 개관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공개 강좌 등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전혀 진행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대신 창업공간이 목마른 여성기업인들을 위해 입주기업 모집부터 시작했다. 최초의 여성창업 전문공간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97개 기업이 모집됐고 스페이스 살림에 둥지를 마련했다.
시는 이같은 상황을 반영해 당초 연수동으로 만들 예정이던 건물을 사무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대형 회의실이나 공연장, 교육장 등은 비어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요가 넘치는 창업공간으로 바꾸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공사를 마치면 약 40여개 기업이 추가로 입주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개인맞춤형 육아정보 전문기업, 아이의 울음소리와 여성의 위급상황을 감지하는 사운드 분석 AI 기업, 비건 전문 플랫폼 운영사, 여성용 트렁크 속옷 전문 기업 등 다채로운 여성기업들이 내일을 향한 도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협 서울시장권한대행은 18일 개관 준비와 입주기업들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스페이스 살림을 방문했다. 서 권한대행은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우선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하고 올해 상반기 중 정식 개관할 계획"이라며 "입주기업 뿐 아니라 홍보관, 편집매장 등 다양한 여성기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활발한 협업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