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현장보고

바이든-해리스 ‘아시안 증오범죄’ 막아낼 수 있나

2021-03-23 12:27:09 게재
21세 백인 남성이 저지른 총기난사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 아시아계 6명이 목숨을 잃은 애틀랜타 총격참사를 계기로 미 전역에서 ‘아시안 증오범죄를 멈추라’는 함성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첫 아시아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들불처럼 번지는 함성에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중대 과제를 떠안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주말 애틀랜타를 직접 방문했고, 최근 민주당 상·하원의원들이 상정한 ‘코로나19 증오범죄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약속했다.

바이든-해리스팀이 미국에서 가장 풀기 어렵다는 인종문제, 인종증오범죄를 차단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첫 아시아계 부통령과 신속 행동

미국에서 인종증오범죄는 다루기 힘든 뜨거운 감자로 꼽힌다. 소수계 보호를 기치로 내건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은 신속한 행동에 나섰다. 미국의 정·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사건현장인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직접 방문해 아시안 공동체 지도자들을 만나 위로하고 대책을 숙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종증오범죄에 침묵하는 것은 공범과도 같은 것으로 결코 공모할 수 없다”며 “이에 강력히 대처해 미국에서 증오범죄가 더 이상 발을 못 붙이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도계 어머니를 둔 해리스 부통령은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와 손잡고 증오범죄를 멈추기 위해 맞서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전임 행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내 아시안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게 된 핵심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차이나 바이러스’라며 모든 비난을 중국으로 돌렸기 때문이라는 비판론이 있다.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은 갈등과 혼란을 부추겼던 전임자와는 달리 국민여론 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부각시키는 전략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안 증오범죄를 차단하기 위해 ‘코로나19 증오범죄 법안’을 통과시켜 증오범죄를 즉각 추적하는 다국어 신고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1년간 150% 급증한 미국 내 아시안 증오범죄가 급기야 애틀랜타 총기난사사건으로 폭발한 것으로 간주되자 강력한 차단책을 내놓은 것이다.

‘연방신속수사, 전국신고시스템’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안 증오범죄를 차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시행하기 위해 연방의회에 ‘코로나19 증오범죄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한국계 남편을 두고 있는 대만계 그레이스 맹 하원의원(뉴욕)과 일본계 마지 히로노 상원의원(하와이)이 최근 상정한 ‘코로나19 증오범죄 법안’에는 공동제안자 60명이 서명했다. 조만간 연방의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기존 증오범죄법에 따른 인종과 피부 국적 성별 성적취향 장애 등에 대한 혐오·증오범죄에 더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며 아시안을 무차별 공격하는 행위도 증오범죄로 수사하고 강력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은 또 증오범죄로 여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 연방법무부가 한명 이상의 전담요원을 임명해 해당지역 사법당국과 함께 증오범죄로 신속히 수사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방법무부는 각 주, 지역 사법당국과 협력해 피해자들이 손쉽고 빠르게 신고할 수 있도록 다국어로 된 온라인 신고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아시안과 아메리칸 태평양 도서지역에 대한 증오범죄를 종식시키자는 캠페인을 이끄는 ‘Stop AAPI Hate’는 코로나 사태가 미국에 본격 번진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 아시안을 향한 증오범죄가 3795건 보고됐지만 신고 안된 피해사례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한인여성 4명이 참변을 당한 애틀랜타는 물론 아시안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보스턴과 워싱턴 수도권까지 미 전역에서 ‘스톱 아시안 헤이트’(아시안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 ‘아시안 목숨도 소중하다’, ‘정의 없이 평화 없다’ 등을 외치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미 전역서 연일 시위와 집회, 행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중국계와 베트남계, 필리핀계 등 아시안 공동체, 중남미계와 흑인 공동체도 증오범죄 퇴치 연대투쟁에 나섰다. 워싱턴DC에서는 지난 17일 밤 아시안 증오를 멈추라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데 이어 일요일인 21일 낮 1시에도 시내 집회와 시위, 행진이 벌어졌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차량들이 줄지어 차량시위를 펼쳤다. 조지아 애틀랜타 집회에는 결선투표로 당선돼 민주당의 연방상원 다수당 탈환에 기여한 라파엘 워녹, 존 오소프 두 상원의원이 함께 나와 아시안 증오범죄 퇴치에 앞장설 것임을 약속했다. 한인 유명 여배우 샌드라 오는 오클랜드 시위에 참여해 “나는 자랑스런 아시아계”라며 아시안 증오범죄 퇴치를 외쳤다.

애틀랜타와 조지아주의 30여개 한인단체들은 아시안 증오범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한편 수사당국엔 인종증오범죄로 수사해 엄벌에 처할 것을, 정부당국엔 소수계 공동체와 사업 보호, 안전강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가장 큰 한인사회가 형성돼 있는 로스엔젤레스와 뉴욕시, 워싱턴 지역 등의 단체들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임에 이어 지역별로 다른 아시아계와 연대집회를 갖거나 한인단체들의 독자 연합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선봉에 나선 한국계 유명인사들

한국계 연방하원의원들과 미국사회에서도 유명해진 한인 연예인들도 아시안 증오를 멈추라고 외치고 있다. 지난주 연방하원에서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 근절을 위한 청문회가 열려 증오범죄를 규탄하고 연방차원의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한국 출신 유명배우 대니얼 김은 이번 청문회에 화상으로 연결된 자리에서 “미국의 인종증오범죄는 비단 아시아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인 모두의 문제”라고 규탄하고 이를 퇴치하는 데 모두가 연대해 맞설 것을 촉구했다.

미셸 박 스틸, 영 김 의원을 포함한 한국계와 아시아계 연방의원들도 적극 나서 인종증오중단을 촉구하고 구조적인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한편 미국을 넘어 서구사회 전반에 퍼진 반 아시아계 정서와 증오범죄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유럽과 호주 등에서 일상 속 증오범죄를 겪은 아시아계 목소리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 런던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6~9월 인종 또는 종교를 이유로 동아시아계에 가해진 증오범죄는 222건으로, 전년 동기(113건)보다 95% 증가했고 2018년(105건) 에 비교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해 6월 영국 내 소수인종 127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는 중국계 1/3 이상이 인종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또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가 지난해 11월 중국계 호주인 1040명을 조사한 결과 37%가 최근 1년 사이 중국계라는 이유로 차별적 또는 비우호적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린 적 있다는 응답자는 31%였고 물리적 공격이나 위협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18%였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