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디지털 성범죄 심층탐사 이어가는 '추적단 불꽃'

"n번방 이후 1년 … 사각지대 피해자 여전히 많아"

2021-03-24 11:55:56 게재

몸캠피싱·온라인그루밍 등 문제제기 이어가

크라우드펀딩 시작 후 목표액 3배 이상 달성

"주변에선 그냥 언론사에 들어가라, 공부를 해라 이야기하셨지만 n번방·박사방 피해영상이 아직도 공유되는 정황이라든지, 플랫폼만 바꿔서 성착취를 이어가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걸 저희들은 알잖아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여기서 멈출 순 없겠더라고요. 저희 둘이 추적을 이어가기로 마음 먹은 이유에요."

지난해 한국사회를 뒤흔든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알린 사람은 대학생 2명으로 이뤄진 '추적단 불꽃'(사진·이들은 익명으로 활동중이어서 오는 7월 그들이 내놓을 예정인 르포매거진 이미지로 대체했다)이다. 이들은 2019년 7월, 각종 불법촬영물·아동청소년성착취물이 넘쳐나는 n번방을 알게 된 후 잠입취재를 시작했고 이 내용을 공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경찰 수사로 '박사' 조주빈, '갓갓' 문형욱은 물론 성착취범죄에 가담한 3000명 이상이 검거됐다. 국회에선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고 디지털 성범죄 관련 경찰의 위장수사도 가능해졌다.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비판을 받은 법원은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강화했다. 이 정도면 된 걸까? 온라인 세상은 디지털 성범죄에서 안전한 곳이 되었나?

추적단 불꽃은 23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법제도적으로 디지털성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많이 갖춰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여전히 온라인 상에는 디지털 성범죄의 뿌리가 넓게 뻗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탐사보도를 이어가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응은 엄청났다. 추적단 불꽃이 올린 펀딩 프로젝트 마감은 4월 말까지인데 단 며칠 만에 펀딩이 성사됐다. 18일 텀블벅 펀딩 사이트에 관련 내용을 올리자 이틀 만에 목표액의 2배, 24일 오전 현재 목표액의 3배가 넘는 330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추적단 불꽃은 후원자들에게 3월부터 5월까지 약 80일간 취재한 결과를 담은 '추적단 불꽃 - 우리, 다음' 르포 매거진을 만들어 보낼 계획이다. 매거진에는 디지털 성범죄로 인정받지 못해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몸캠피싱 피해자들의 이야기, 디지털 성범죄의 입구로 일컬어지는 온라인 그루밍의 실태 등이 담길 예정이다.

"온라인상에서 접근해 영상 통화를 하며 성적인 행위를 유도하고, 이를 녹화하거나 개인 정보를 빼내서 이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범죄가 몸캠피싱이잖아요. 그런데 정작 몸캠피싱이 디지털 성범죄로 분류가 되지 않아서 피해자들이 상당히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피해자들이 주로 중년 남성들인데 신고 하려고 해도 경찰이 못 잡는다며 되돌려보내는 경우가 많고, 결국은 사설기관을 찾아서 해결해 보려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고요."

온라인 그루밍의 실태도 좀 더 자세하게 담을 예정이다. "온라인 그루밍이라는 말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피해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온라인 그루밍에서부터 시작해 피해를 입었더라고요. 피해를 예방해보자는 차원에서 좀 더 다양한 사례를 담아볼 생각입니다."

르포 매거진 외에도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와 협업해 구글 네이버 등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나갈 예정이다. n번방 사건 때에도 그랬듯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은 글로벌 기업들이 운영하는 대중적인 SNS에서 피해자를 찾거나, 불법성착취물을 공유할 가담자를 찾곤 했다.

"텔레그램이 성착취물이 실제로 공유되는 허브라고 한다면 트위터 인스타 유튜브 디스코드 라인 카카오톡 같은 것들은 성착취물을 홍보하고, 텔레그램 허브로 유인하는 유통망이자 홍보망으로 역할이 나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런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뭔가 조치를 해야 할 텐데 대책이 상당히 미미합니다. 당장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면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한데 그런 장도 없다는 건 문제잖아요. 앰네스티와 함께 문제제기를 할 겁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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