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투기(내부정보 이용) 공공기관 전반 만연

2021-03-26 11:55:03 게재

경찰, 농어촌공사 직원 투기 의혹 수사 착수 … 인지·신고로 공직사회 전체 수사 확산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투기 의혹 수사가 공직사회 전체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LH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의심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공직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은 물론 대부분 부동산 투기의 배경에 무분별한 대출이 있었다며 관련 규제 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직원 투기 의혹…LH는 한국투기주택공사"│25일 오후 진보당 전북도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광역의원과 기초의원까지 부동산 투기 전수 조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북도당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이름을 '한국투기주택공사' 변경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경북경찰청 부동산투기전담팀은 최근 농어촌공사 차장 A씨를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사무실과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농어촌공사 영천지사에서 근무하던 2017년 경북 영천 임고면 하천 부근 땅 5600여㎡를 5억2000여만원에 매입했다. 앞서 농어촌공사는 2012년 영천시의 위탁으로 이곳에 57억원 규모의 권역단위 종합정비사업을 시행했다. 이 정비 사업은 A씨의 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A씨가 매입한 땅의 ㎡당 공시지가는 평균 4만원으로, 2017년 매입 당시보다 1.5배 넘게 올랐다.

하지만 A씨는 퇴직 이후 노후 대비용으로 땅을 매입했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를 위해 A씨에게 출석요구를 하고 변호사와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수사초기라 구속영장 신청 여부 등에 대해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며 "농어촌공사와 관련한 추가 땅 투기가 있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농어촌공사 의혹과 같은 사건이 더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 정부합동조사단 수사의뢰에만 의존하지 않고 투기 의혹에 대한 자체 인지나 신고센터 신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의혹 89건을 단서별로 구분하면 경찰 자체 인지 70건, 시민단체 등 고발 13건, 정부 합동조사단 등 수사 의뢰 6건이다.

실제로 농어촌공사 직원 의혹 수사도 주민들과 마찰로 인한 신고가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포천 공무원 부동산 몰수보전 결정 = 법원은 24일 전철역 예정 부지 인근에 수십억원을 들여 토지를 매입한 경기도 포천시 공무원에 대해 부동산 몰수보전 결정을 했다. 몰수보전이란 범죄 피의자가 확정판결을 받기 전에 몰수 대상인 불법 수익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원의 처분을 뜻한다.

경기북부경찰청에 따르면 B씨는 지난해 9월 부인과 공동명의로 포천시내 도시철도 7호선 연장 노선 역사 예정지 인근 땅 2600여㎡와 1층짜리 조립식 건물을 매입했다. 매입 비용 약 40억원은 담보 대출과 신용 대출로 마련했다. 경찰은 B씨가 부동산을 매입하기 전 해에 도시철도 연장사업 업무를 담당하면서 알게 된 내부 정보, 즉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투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해 왔다.

앞서 경찰은 투기 의혹을 받는 B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사전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할지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B씨가 수십억원대의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지 등도 살펴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LH 직원 투기 의혹을 처음 제기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부동산 투기의 근본 원인으로 대출제도를 지목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출제도가 부동산 투기 조장 = 참여연대와 민변은 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가계부채 폭증, 정부의 부실 대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LH 임직원들은 자기 돈이 아니라 대출을 크게 받았다"며 "포괄적 총부채원리금상황비율(DSR) 규제만이 과잉대출에 따른 가계의 부실과 부동산 투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LH 투기 의혹 사건의 핵심적 원인은 이해충돌 문제나 공직자 비위에 대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엄청난 대출을 통해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가 경기 시흥 과림동과 무지내동의 LH 직원들 투기 의심 사례 11건의 예상치를 계산한 결과 평균 DSR은 81%였다. 이중에는 DSR이 144%일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권호현 변호사는 "토지대출을 제외한 개인의 주택 관련 전세자금 대출 등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며 "여기에 자기 주택과 관련된 대출이 없겠나. 그것까지 넣으면 200%가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금융당국이 DSR을 40%로 하고 있는데 차주별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별로 적용된다는 게 문제"라며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은 DSR이 10%인데 반해 어떤 사람은 100%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은 전 세계에 유례없는 전세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현 시점에서 어떤 기관도 전월세보증금반환채무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한 적이 없다"며 "DSR 계산식의 분자인 총부채에서 전월세보증금반환채무를 제외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백주선 변호사는 "대출을 통해서 집과 땅을 사는 게 무한 허용되는 한 공무원과 공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민간에서 이뤄지는 투기는 근절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며 "상환 능력과 담보 가격에 맞게 대출하는 기준을 엄정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세호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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