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성범죄, 낯선 관계에서도 일어나"

2021-03-31 11:26:32 게재

여성가족부, 청소년성보호법 세미나 … 10대 여성 피해자 3.5배 증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부족하다. 커뮤니티 반응들을 모니터링하면 '야동이지 무슨 아동성착취물이냐, 외국 것을 보면 되냐'는 얘기들이 많다. 과거 법률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온라인 상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범죄들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도 예전에는 친밀한 사이에서 이뤄졌다면 요즘에는 전혀 친분이 없는 상황에서도 일어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들끼리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

강선혜 탁틴내일 국제협력팀장은 30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루밍이란 성적 의도를 갖고 피해자에게 접근해 신뢰관계를 쌓은 뒤 피해자가 성적 가해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길들이는 행위다. 성폭력 행위가 수월해지고 범죄 폭로를 막는 효과가 생긴다.
그루밍 성범죄를 법에 명시하자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뒤늦게 실현됐다. 사진은 휴대전화로 웹 검색을 하고 있는 한 미성년자. 사진 이의종


정부도 뒤늦게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련 법을 개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지난 23일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찰이 신분을 밝히지 않거나, 신분을 위장해서 수사할 수 있는 내용의 새 청소년성보호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 9월 24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률은 범죄 피해자를 아동이나 청소년으로 한정하고, 처벌 대상이 되는 범죄 유형도 온라인 공간 등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성범죄로 한정하고 있다.

◆"온라인 그루밍 법 제정으로 끝이 아니다" = 여성가족부(장관 정영애)는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성과와 과제 세미나'가 열렸다고 밝혔다.

강 팀장은 "온라인 그루밍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피해의 책임이 아동에게 지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인식개선과 신중한 판결을 통해 개정안이 올바르게 시행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팀장은 "아동성착취 범죄는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경찰, 관련 전문기관, 서비스 제공기관 등이 꾸준히 고민을 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며 "아동성착취 범죄에 대항하는 것은 다 같이 똑같은 입장일 텐데 서로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협력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팀장은 30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페이스북 사례를 소개했다. 페이스북의 경우 인공지능(AI) 등을 통해 게시물 뿐만 아니라 댓글이나 메신저에서 온라인 그루밍이 이뤄지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문제는 온라인 그루밍의 경우 딱 봐도 성적인 단어가 아니라 암시적이고 암묵적인 대화가 이뤄지는 데 이를 구분하기 위한 가이드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강 팀장은 "성범죄 예방에 대해 얘기를 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페이스북은 이러한 균형감각을 맞추기 위해 꾸준히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노력하고 있다"며 "이러한 협력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실장은 발제문을 통해 "과거에는 그루밍을 성범죄의 예비 혹은 부수적인 행위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서구국가들의 판례를 보면 온·오프라인 관계없이 그루밍 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한다"며 "불법 아동 성착취 영상물은 해외에 기반을 둔 다크넷의 마켓들을 통해서 암호화폐 등을 이용해 아직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고, 수요가 존재하는 한 이를 제작하기 위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 그루밍은 절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루밍 통로, SNS에서 게임으로 =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 3년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지원센터)를 운영한 결과도 제시됐다. 지원센터는 2018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모두 30만5996건의 피해자 지원을 진행했다. 피해 유형별로는 불법 촬영이 27.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유포(24.3%), 유포될 가능성에 대한 불안(15.2%), 유포 협박(12.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지원센터는 모두 28만2722건의 불법 촬영물을 삭제했다. 플랫폼별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28.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성인사이트 25.7%, 검색엔진 22.4%, 기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10.2%로 나타났다.

지난해 1∼12월 접수한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가해자와의 관계에 대해 밝히지 않는 사례(55.2%)를 제외하면 '일시적 관계'라는 응답이 28.8%로 가장 컸다. 사회적 관계(7.2%), 모르는 사람(6.6%), 친밀한 관계(1.9%)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지원센터는 아동·청소년 피해의 특징으로 10대 여성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대 여성 피해자는 모두 1007명으로 전년(288명)보다 3.5배로 증가했다. 지원센터에 따르면 온라인 그루밍 범죄 발생 통로도 소셜 SNS에서 게임을 통한 일시적 만남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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