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 아마존에 노조 만들기

2021-03-31 12:22:36 게재

FT “코로나시대 급성장한 아마존, 임금·인종불평등의 초점 돼”


2020년은 여느 해와 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필수노동자의 존재감이 부각됐다. 또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인종차별 폐지운동의 절실함이 도드라졌다. 그리고 빈부격차가 확대됐다.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와 전세계 130만명이 넘는 아마존 직원들의 재산 차이는 더욱 커졌다.

미국 앨라배마주 베서머시엔 아마존의 물류창고가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6000명 가까운 직원 중 75%가 흑인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이슈와 깊이 연관돼 있다.

이곳에서 노조설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페리 코넬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베이조스는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그러나 그는 아마존을 위해 일하는 흑인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코넬리는 낮은 임금, 방역조치 미흡 등의 이유로 경영진과 갈등을 빚다 지난해 동료들과 함께 노조결성을 추진하게 됐다. 하지만 그가 맞서려는 아마존은 26년 역사에서 상품배송만큼이나 노조설립 저지에도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지난해 여름 코넬리의 동료인 대릴 리처드슨은 미국 ‘도소매·백화점노동자조합’(RWDSU)에 연락했다. 1937년 설립된 RWDSU는 미국 최대백화점 메이시스와 H&M, 자라는 물론 가금류공장 노동자와 기타 물류 노동자를 포함해 10만명 이상의 노조원을 대표한다.

RWDSU는 지난해 11월 베서머 노동자들로부터 노조설립 신청서를 받아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에 찬반투표를 신청했다. 투표는 올해 2월 8일 시작해 이달 29일 종료됐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우려에 우편투표로 진행됐다. NLRB는 30일(현지 시간)부터 투표를 집계한다. 결과가 나오기까진 수일이 걸릴 전망이다.

노동운동 관계자들은 “노조설립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오면 수십년래 가장 놀랄 만한 성과일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는 아마존에서 첫 노조가 설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소재 ‘정책연구원’의 흑인노동자정책국장인 마크 베이어드는 “앨라배마주 베서머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아마존은 전세계 최대기업 중 한 곳이며, 앨라배마는 역사적으로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곳 중 하나다. 아마존이 가장 걱정하는 불길이 결국 일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베서머에서 노조가 설립되면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아마존은 더욱더 커졌다. 집에 틀어박힌 소비자들이 아마존의 배송에 점차 의존하게 됐다. 아마존의 2020년 순매출액은 전년 대비 38% 올랐다. 지난해 50만명 이상의 직원을 새로 뽑아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임금과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새로운 논쟁에 불을 지폈다.

앨라배마 디스카운트

아마존에서의 노조설립 움직임은 미국인의 노조 지지율이 근 2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때와 맞물린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65%는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있다. 비슷한 위기였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미국 내 많은 사람들은 경기침체와 뒤이은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에 노조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봤다.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특히 흑인노동자들 사이에서 노조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응답자의 75%가 노조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흑인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10%를 밑도는 상황이다.

노조 지지와 가입 간의 불일치는 상당부분 노동자 보호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남부가 그렇다. 노동운동가들은 ‘앨라배마 디스카운트’ ‘하이테크 짐크로법’이라고 부른다. 앨라배마의 흑인노동자 임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 또 과거의 흑백인종분리법(짐크로법)이 있는 것처럼 고급기술 부문 일자리가 백인에 쏠렸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특히 군말없이 일하는 저렴한 노동자들을 원하는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남부지역 주들과 지자체들은 각종 인센티브와 세제혜택을 제공한다.

이달초 백악관이 지지하는 ‘노동자단결보호법’(PROA)이 하원을 통과했다. 1940년대 이래 노조의 힘을 대폭 약화시킨 ‘노동권법’(right to work law)을 대체하기 위한 법안이다.

상원에서는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노조를 찬성하는 사회적 흐름이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2032년이 되면 미국 노동계급 중 유색인종이 절반을 넘게 된다.

남부지역 노예제와 노동에 대한 역사전문가인 케리 리 메리트는 “남부지역에서 노동운동이 성공하려면 민권운동 이슈와 결합시켜야 한다”며 “그래야 정신적으로 고양시킨다는 의미를 줄 수 있다. 사람들이 공공선이란 무엇인지, 공동체의 이익은 무엇인지 재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계

노동운동과 민권운동은 오래 전부터 불가분의 관계였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63년 25만명과 함께 워싱턴을 향해 걸었다.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행진이었다. 1968년 킹은 마지막이 될 연설에 나섰다. 노조설립 허가를 요구하는, 행정관청에 사람다운 대접을 요구하는 테네시주 멤피스의 흑인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었다. 당시 흑인노동자들은 ‘나는 인간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옷을 입거나 팻말을 들었다.

오늘날 아마존 노동자들에게도 그같은 기류를 읽을 수 있다. 아마존 로보틱스의 CTO인 타이 브래디는 자사의 거대 물류창고를 ‘인간과 기계의 조화로운 합창곡’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하지만 아마존의 많은 노동자들은 기계화된 창고를 고통스럽고 가차없는, 비인간적인 공간으로 부른다.

베서머 물류창고 노동자인 제니퍼 베이츠는 이달 초 의회 청문회에서 “근무교대는 길고 작업속도는 너무 빠르다”며 “끊임없이 감시 당한다. 경영진은 우리를 또 다른 기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존이 인간노동자를 감시하는 방법 중엔 ‘작업중단’이라 불리는 기준이 있다. 작업장에서 일이 중단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시계가 집계를 시작한다. 작업중단 시간이 많아지면 해고로 이어진다.

코넬리는 작업중단 집계가 시작되는 건 약 4분 뒤라고 말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화장실 용무는 10시간 교대근무 중 30분씩 두번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처리해야 한다. 화장실이 고장나거나 누군가 사용중이어서 볼일을 못 볼 때도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코넬리는 “간부들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선 안된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는 성인이다. 화장실 용무를 보는 시간만큼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마존은 “초임부터 시간당 15달러 보수를 지급한다. 연방정부 최저임금의 2배다. 광범위한 저소득 일자리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건강보험 혜택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장실 갈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아마존 대변인은 “대부분 회사처럼 우리도 모든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그같은 기대감에 비춰 실제의 성과를 측정한다”고 말했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아마존은 미국에만 800곳이 넘는 물류시설을 갖고 있다. 전일·시간제 노동자만 95만명이다. 여기엔 거대한 배송직원 네트워크는 빠져 있다. 아마존의 직원수는 40년 전 미국 자동차산업 전성기 때 제너럴모터스를 능가한다. 현재 월마트에 이은 2위 규모의 기업이다.

아마존의 성장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탐구한 책 ‘풀필먼트’(Fulfillment)를 쓴 알렉 맥길리스는 “아마존 성공의 핵심은 노동자의 근무탄력성, 생산성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효율성을 극단으로 추구하는 기업에게, 노조와 의무적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sand in the gears) 일과 같을 것”이라며 “아마존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앞으론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아마존의 유럽 상황은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노동자 보호에 대한 법정다툼이 벌어진 끝에 프랑스에 있는 6곳의 아마존 물류창고 직원들은 지난해 4월 한달간 유급휴가를 얻었다.

최근 이탈리아의 아마존 노동자들은 보다 인간적인 작업스케줄을 요구하며 작업중단을 선언했다.

반면 미국에서의 상황은 달랐다. 지난해 뉴욕주 퀸스의 물류시설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을 때, 아마존 노동자 몇명이 잠깐 작업중단에 돌입했지만 회사측은 곧 공장을 재가동했다.

2주도 안돼 뉴욕주 스태튼아일랜드 물류시설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이를 이끌었던 크리스찬 스몰스는 즉각 해고됐다. 아마존은 스몰스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바이스뉴스'는 NLRB 조사결과 퀸스 물류시설에서 작업중단을 이끌었던 사람 중 하나인 조너선 베일리를 아마존이 불법적으로 추궁하고 위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아마존은 베일리와 비공개로 합의했다고 밝히며 "혐의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 사안을 처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퍼지는 소문

아마존은 베서머 노조 결성운동을 방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당초 노조찬반 투표를 물류창고 주차장에 투표소를 만들어 진행하려고 했다가 코로나 확산을 우려하는 NLRB에 제지당했다. 우편투표가 확정되자 아마존은 같은 장소에 우편함을 만들어달라 요청했고 관철시켰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노조반대에 표를 던지라고 종용했다. 노조설립 준비측은 '아마존의 또 다른 감시전략이자 위협전략'이라고 주장했고, 회사측은 '직원들의 우편투표 편의성을 높이려는 배려'라고 반박했다.

노조 지지자들은 베서머 공장 인근의 신호등에서 노조찬성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자 아마존은 지난해 12월 제퍼슨카운티에 신호변경 타이밍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해 승인 받았다. 노조 지지자들은 '적색신호에 잠깐 멈춘 자동차들이 노조찬성 캠페인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조치'라고 비판하는 반면 아마존은 '노조 캠페인과 관계없이 교통정체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물류창고 내 휴게실과 벽, 화장실 등엔 노조반대 벽보 등이 붙어있다. 직원들은 간부들과 일대일 대화는 물론 집단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반노조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아마존이 신설한 웹사이트 'DoItWithoutDues.com'에는 노조결성이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올라 있다. 또 노조에 회비를 내는 대신 자녀 학용품이나 선물을 사주는 게 낫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지역 내 노조 대표들이 얼마의 월급을 받는지 자세히 공개한 문서도 올라 있다.

RWDSU 대표인 스튜어트 아펠바움은 "베서머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5차례 반노조 관련 문자를 받는다. 퇴근 후에도 집에서 간부들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마존은 또 '노조가 설립되면 공장을 닫아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루머도 퍼뜨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마존 대변인 드루 허데너는 "아펠바움은 오래 전부터 쇠락해온 노동운동을 살리기 위해 허위정보를 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치적 지지 높지만 지역에선 회의감

그렇다면 노조는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노조 지지세는 광범위하지 않다.

베서머 물류창고에서 남편과 함께 일한다는 52세 라보넷 스포크스는 "아마존의 보험 제공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직장보다 좋다"고 말했다. 그는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 역시 주저하고 있다. 세대차에 따른 단절이 있다. 밀레니얼세대는 노조가 나에게 회비를 요구한다면, 노조에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지지세와 관련해선 노조에 무게감이 쏠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트위터에 올린 영상메시지에서 아마존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앨라배마주를 언급하며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 여부를 결정할 때 기업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조는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고양시킨다. 특히 흑인 등 유색인종에 그렇다"고 말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도 노조설립을 지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하는 '노동자단결보호법'이 법제화된다면, 아마존이 노조를 저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많은 전술은 불법이 된다. 하지만 노조 지지자들도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아마존의 거대한 힘을 인정한다. 앨라배마주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에서 추진된 노조설립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또 다른 자동차 부품 제조사에선 노조가 탄생했다. 하지만 설립 1년도 안돼 해당 공장에서 일자리 삭감이 있었다.

앨라배마대학교 마이클 이니스-지메네즈 교수는 "사실 노조설립은 매우 이기기 쉬운 캠페인이다. 관건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관련한 리스크를 지려고 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했다.

FT는 "노조에 대해 정치권의 지지나 외부에서 온 자유주의자들의 지지엔 리스크가 있다. 베서머와 같이 보수적인 지역에선 쉽사리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개표가 시작되기도 전 미국의 노동운동가들은 승리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 내 노동자들에게 노조설립 불을 붙인 전투를 벌였다는 것. RWDSU는 "베서머 노조설립 운동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나서 미국 내 아마존 물류창고들에서 일하는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전해왔다. 자신들도 노조결성의 첫발을 떼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민주당 상원의원 니나 터너는 "미국이 이뤘던 모든 진보의 발걸음은 노동운동과 민권운동이 결합하면서 가능했다. 우리는 다시 이를 이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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