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사라지고 '정권심판론'만 남았다
서울시장 선거, 후보·정책·공약 실종
진영대결 극한 치달아, 미래고민 부재
대통령 지지율과 '박·오' 지지율 일치
'합니다 박영선 서울 대전환' vs '첫날부터 능숙하게'. 여야를 대표하는 기호1· 2번 서울시장 후보 핵심 구호지만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서울시장 선거전이 진영 대립 극대화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서울'도 '시민'도 모두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공약은 물론 후보마저 사라진 자리엔 대통령 심판론만 남았다.
1일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최근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바로 '문재인 선거'라는 점이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최근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는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주인공이었다. 후보마다 청와대 경력을 1순위로 내걸었고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홍보물 맨 앞장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정반대 양상이다. 문재인정부 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진영 다툼이 극대화되고 '구도' 싸움이 될 것이란 점은 어느정도 예상됐다. 문제는 그 구도가 서울시 미래를 내건 정책과 비전이 아닌 문재인정권에 대한 호·불호로 나뉘었다는 점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이번 선거는 정책도 공약도 심지어 후보도 보이지 않고 오직 문재인정부 심판이냐 아니냐로 귀결되고 있다"면서 "후보 자질 검증, 공약, 네거티브 공세 등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치러진 21대 총선 당시 문 대통령 지지율은 60%대를 유지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얻은 국회 의석수는 대통령 지지율 60%에 국회의원 의석 수 300명을 곱한 180석과 일치했다.
현재 박영선·오세훈 후보 지지율은 문재인정부 국정 운영 긍·부정 지표와 놀랄만큼 비슷하다. 지난 22일 YTN- 리얼미터 조사(15~19일. 전국 유권자 2510명)에 따르면 문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4.1%, 부정평가는 62.2%였다. 지난 30일 MBN-한길리서치 조사(28~29일. 서울시민 842명)에서 박 후보와 오 후보 지지율은 각각 32.5%, 60.1%였다. 정부에 대한 긍·부정 평가와 여야 후보 지지율이 거의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 답변에서도 드러난다. MBN-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서울시민들은 지지 후보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국정심판(22.1%)을 꼽았다. 지난달 10일 뉴스1-엠브레인퍼블릭 조사(8~9일 / 서울시민 1002명)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1.9%가 이번 선거 의미를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시장 선거가 정권심판론으로 도배되면서 '시민'은 사라졌다. 지난 10년간 진전된 민주주의와 도시성장,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도시로의 전환, 글로벌 경제도시 비전 등에 대한 고민은 종적을 감췄다. 쏟아지는 주택공급 공약은 뉴타운 난민, 강제철거 악몽은 외면한 채 개발시대로 회귀를 부추기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서울시장 선거는 글로벌 10대 도시로 도약 중인 서울의 내일과 달라진 시민 삶과 복지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공론장이 되어야 하는데 정쟁만 넘쳐난다"며 "아무리 정권 말 보궐선거라 해도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심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조사 시점의 아침·저녁 여부, 조사방식의 유무선 비율, 전화면접조사 비중 등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나지만 이같은 과정은 무시된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도 "지금 나오는 조사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는 차이가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엄 소장은 "정치권이나 여론조사업계, 언론 모두 여론 왜곡이 아닌 민심을 최대한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밖의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