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변화에 원자재부족 … 차세대배터리 소환하다

2021-04-08 12:13:31 게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전고체전지 시급성"

배터리는 현대의 기술혁명을 구동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전기차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현대세계를 주도한 리튬이온전지 기술은 지난 3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이온전지는 다양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흑연과 코발트, 고순도 니켈 등 수백킬로그램의 금속과 원자재를 담고 있다. 채굴과 제련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한다. 안전성도 문제다. 리튬이온전지는 화재와 폭발에 취약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그같은 결점이 전고체전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고 전했다.

전고체전지는 전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기존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차세대 배터리다. 리튬이온배터리에 필요한 전해액과 분리막을 없애는 대신 비는 공간에 에너지밀도가 더 높은 물질을 집어넣을 수 있다. 화재 위험을 줄이고 원자재를 덜 쓸 수 있다.

배터리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화재 위험 없이 더 짧은 충전시간으로 더 긴 주행이 가능한 기술은 장벽에 다다랐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게 되면 전기차 혁명은 날개를 달 수 있다. 전고체 전지는 부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배터리가 미래의 핵심기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전고체전지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전기차 리더기업인 테슬라로서는 잠재적으로 큰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FT는 "배터리기술에 전환점을 가져올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중국의 전기차시장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하나다. 또 하나는 배터리에 필요한 원자재와 산업물질의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치솟고 있어 장기적으로 배터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유럽의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두배 이상 늘었다. 기존 내연기관차에 대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다. 영국과 독일 등 많은 나라들이 2030년 내연기관차나 디젤차의 신규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친환경 녹색기술은 경제성장 둔화를 극복할 국가적 어젠다로 취급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130만대의 전기차가 팔렸다. JP모간자산운용의 리서치 애널리스트 마크 마오는 "전기차 수요 증대는 더 이상 보조금 때문이 아니다. 전기차 비용에서 보조금의 비중은 1/10 정도로 낮아졌다 무시해도 될 정도"라며 "전기차 판매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같은 낙관론은 부분적으로 배터리가격의 하락과 맞물려 있다. 컨설팅기업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기차에서 가장 비싼 부품인 리튬이온전지팩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90% 가까이 하락했다. 지난해 킬로와트시당 평균가격이 110달러 선에 안착했다.

전기차는 평균적으로 전통의 내연기관차보다 30% 가량 비싼 상황이다. UBS는 그 격차가 계속 좁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유지비용이 같아지는 '가격 패리티'(Price parity) 달성까지는 이제 고작 3년 남았다. 이후 전기차 수요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배터리 수요의 폭발을 의미한다.

자연적인 한계

그러나 배터리기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 문제다. 전기차 시대 도래를 둔화시킬 수 있다.

기존 배터리의 액체전해질은 화재에 취약할 뿐 아니라 재활용을 어렵게 만든다. 재판매 가치에 큰 위해가 된다. 가격은 또 다른 결함 요소다. 자동차 1대당 1만2000달러 선인 배터리팩의 가격을 높이지 않고 안전성과 에너지밀도를 개선하는 건 한계에 다다랐다.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하는 자동차 가격대가 더 낮아질 수 없는 바닥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테슬라 모델3는 3만7990달러에서, 현대차 아이오닉은 3만3245달러에서 시작한다. 업계에선 이를 하한선으로 보고 있다.

리튬이온전지는 또 부피가 크고 무겁다. 테슬라 모델S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은 540킬로그램이 넘는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무거운 이유다. 특히 추운 날씨에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동일한 주행거리를 가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미국 브라운대 공학교수인 브라이언 셸던은 "평균 50분 정도 걸리는 급속충전은 액체전해질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급속충전에서 발생한 열은 배터리 성능을 해치고 화재의 위험을 높인다"며 "전고체전지는 그런 리스크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애호가들은 그같은 한계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겨울에 히터를 끄거나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등 우회로를 찾고 있다.

하지만 안전성의 문제는 쉽게 대처할 수 없다. 전통의 배터리는 니켈과 코발트, 망간의 양이 동일했다. 그러나 최근의 업계 흐름은 니켈의 비중을 크게 늘리는 쪽이었다. 전해조 음극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니켈보다 가격이 2배 비싼 코발트를 덜 써도 되기에 생산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같이 새로운 조합은 배터리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니켈의 비중을 높인 배터리를 처음 상용화한 중국의 경우 지난해 5월 이후 이 배터리를 장착한 3대의 자동차에 화재가 났다. 리튬과 철을 조합하는 방식은 보다 안전한 것으로 증명됐지만 에너지밀도는 더 낮아졌다.

원자재 수요와 공급

설상가사아으로 자동차제조사는 물론 스마트폰제조사 등 많은 산업계에서 배터리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배터리에 들어가는 원자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니켈과 흑연 리튬 코발트 구리 등 원자재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원자재 가격을 표시하는 달러약세와 더해지면서 향후 원자재 가격은 더 상승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전기승용차 배터리엔 20킬로그램의 니켈이 필요하다. 테슬라 모델3의 배터리는 30킬로그램이 들어간다. 코발트는 20킬로그램, 리튬 화합물은 대략 60킬로그램이다. 지난해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공급된 니켈의 총량 중 절반 이상을 테슬라 전기차가 차지했다. 머스크는 니켈의 공급을 "큰 걱정거리"라고 지목했다. 테슬라는 2030년 3테라와트시 용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투자은행 '제퍼리스'는 "현수준 공급되는 전세계 모든 니켈을 소진시킬 규모"이라고 말했다.

니켈의 생산량을 늘리기도 어렵다. 생산된 니켈 중 배터리에 투입되기에 적합한 건 절반이 안된다. 새롭게 발견되는 니켈 지질도 드물다. 향후 니켈 부족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리튬의 경우 풍부한 자원이지만 배터리용으로 제련하는 기업의 능력이 제한적이다. 대체제는 드물다. 새로운 리튬 채굴시설을 구축하는 건 최장 10년까지 걸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제조사들의 수요가 너무 커 올해말부터 리튬 공급 부족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코발트도 비슷한 운명이다. UBS는 향후 10년 코발트 수요가 공급을 계속 앞설 것이라고 봤다.

구조적 요소도 한몫한다. 골드만삭스는 "기초원자재 가격이 10년 주기로 오르는 새로운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FT는 "이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원자재나 배터리 기술 모두 대체재를 빠르게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차세대 기술

폭스바겐 배터리 사업부 대표인 프랑크 블로메는 전고체전지가 리튬이온전지와 '최종전'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본다.

블로메에 따르면 전고체전지는 더 안전하고 더 싸다. 성능저하 없이 더 오래 사용될 수 있다. 전지를 벽돌처럼 쌓을 수 있다. 각기 다른 설계의 자동차에 배터리를 탑재하는 게 더 쉬워진다는 의미다. 또 더 가볍다. 완전충전까지 대략 10분이면 된다. 에너지밀도도 2배 이상 높다. 구리와 알루미늄이 덜 들어간다. 흑연과 코발트는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전고체전지 재활용은 더 단순하고 더 안전하다.

벤처투자기업 '하나벤처스' CEO 김동환은 "역사적으로 자동차 배기장치에서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세대 기술은 원자재 사용을 극적으로 줄이는 것과 관련돼 있다. 전고체전지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전고체전지 시제품들을 보면 같은 무게 같은 크기의 리튬이온 전지보다 에너지를 80% 더 저장할 수 있다. 에너지밀도가 높은 리튬금속으로 흑연을 대체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배터리 무게와 크기를 줄이게 된다.

500킬로그램이 넘는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주행거리와 안전성을 해치지 않고 성능을 개선하는 건 매우 힘든 과제다. 향후 3년 내 리튬이온전지의 에너지밀도를 50% 이상 높여 주행거리를 향상시키겠다는 테슬라의 장담에 대해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다.

브라운대 셸던 교수는 "현재의 한계로부터 50%를 더 늘리겠다는 건 결국 배터리 크기를 키우겠다는 의미다. 보다 많은 원자재가 음극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며 "커진 배터리를 자동차에 집어넣는 건 또 다른 도전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연 평균 4% 정도 올랐다. 현재 리터당 약 700와트시 수준이다. 승용차 주행거리로 환산하면 1번 충전에 약 500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밀도의 추가 증대는 달성하기 어려웠다. 액체전해물질과 양극재 음극재가 차지하는 크기 때문이다.

전고체전지는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에너지밀도가 리터당 1000와트시를 넘는다. 1번 충전으로 800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다. 배터리 수명도 100만마일(160만킬로미터) 정도다. 평생 소유하는 전기차가 될 수 있다. 원자재 사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다.

특허 붐

전고체전지 제조사들은 여전히 다양한 실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시제품 개발엔 성공했지만, 각 장거리 전기차에 들어갈 전지에는 현재까지 실험실에서 수행했던 것보다 최소 20배 많은 배터리셀이 필요하다. 공장에서 이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데 고전할 전망이다. 자동차 1대에 들어가는 전고체전지 제조비용은 현재 10만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양산까지는 수년이 남았다. 하지만 기업들은 거의 가까워지고 있다고 본다. 셸던 교수는 "과거와 커다란 차이점은 전고체전지 기술의 상용화를 막았던 문제점들이 속속 확인됐다는 점"이라며 "상황을 낙관하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말했다.

전고체전지와 관련해 가장 주목 받는 기업은 '퀀텀스케이프'다. 폭스바겐과 빌 게이츠가 투자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다. 2024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퀀텀스케이프는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를 통해 상장한 이후 지난해에만 주가가 1000% 넘게 올랐다. 기업가치는 제너럴모터스보다 높은 500억달러에 육박한다.

미 콜로라도 소재 스타트업인 '솔리드파워'는 소형 22단 리튬메탈전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 역시 현재 장거리 배터리보다 더 긴 주행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기업은 올해 더 큰 크기의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2025년 자동차에 탑재될 배터리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테슬라에 대항할 창조적 파괴자를 찾는 투자자들에겐 퀀텀스케이프나 솔리드파워는 최고의 투자대상이 아닐 수 있다. 아직 제조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배터리와 자동차, 기계류를 지배하는 대기업들처럼 강력한 시장접근력을 갖지 못했기에 부품의 대량생산엔 한계가 있다.

이같은 이유로 전고체전지 현실화의 꿈은 아시아 대기업들에서 보다 유망하다는 분석이다. 일본 도요타는 올해 전고체전지 시제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약 10분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요타는 2년 전 렉서스 LF-30 컨셉트 모델에 전고체전지를 장착해 공개한 바 있다. 도요타는 전고체전지 기술과 관련해 1000여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삼성은 1번 충전으로 800킬로미터 주행거리를 제공하는 배터리를 준비중이다. 게다가 전통의 배터리보다 크기가 절반에 불과하다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마스터 임동민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대폭 늘리는 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수명도 1000번 이상 완충-방전이 가능하다. 급속충전 60번이 넘어가면 성능이 저하되는 기존 배터리와 큰 차별성을 띨 전망이다. 삼성은 향후 10년 동안 BMW에 35억달러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키로 한 것을 포함해 여러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이같은 상황은 테슬라에게 큰 위협이 된다. 현재까지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지배력은 경쟁차보다 더 긴 주행거리, 더 빠른 충전시간 덕분이다. 그러나 전고체전지가 일반화되면 테슬라가 전세계에 큰 비용을 들여 구축중인 급속충전 네트워크의 경쟁력이 크게 하락할 수 있다. 1번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면 중간에 충전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허 추이를 보면 배터리 제조사들이 전고체전지 상용화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알 수 있다. 유럽특허청의 2005년 이후 최근까지 자료를 보면 배터리와 전기충전장치에 대한 글로벌 특허 신청수는 다른 산업부문 특허보다 평균 4배 빨리 늘었다. 그중 전고체전지 특허가 가장 빨랐다. 전고체전지가 시장에 풀릴 날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벤처스 김 대표는 "우리가 얼마나 빨리 대량생산에 돌입하느냐 하는 건 얼마나 많이 투자하느냐에 달렸다"며 "반도체 제조와 관련해 한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문제들은 늘어나는 투자로 결국 극복됐다. 전기차 시장의 최근 성장세를 보면 전고체전지에 보다 많은 자본이 몰리게 될 것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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