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사용후핵연료 관리’ 폭탄돌리기 이제 그만

2021-04-15 12:25:09 게재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최근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한 후 활동을 종료했다. 권고안 핵심 내용은 △특별법 제정(부지선정 절차·유치지역 지원 법제화) △독립위원회 신설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박근혜정부 시절(2016년 7월) 수립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 오히려 퇴보했다. 당시 활동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에는 △2020년 부지선정 후 중간처분장 착공 △2051년 영구처분장 운영이라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담겨있었다. 20개월 동안 2만7000명의 의견을 수렴하고, 35만명과 온라인에서 소통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추진하면서 “2016년 수립된 기본계획은 국민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분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다시 국민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내놓은 결론은 공론화위 제안을 재탕한 것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재검토위의 43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서도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다. 이 결론을 도출하려고 이전 정부의 공론화 내용을 뒤집은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안 역시 4.7보궐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된 현 정부의 오만과 무능 때문인 것 같다. 전 정권 정책은 무조건 나쁘다며 정부정책의 연속성을 백지화한 ‘오만’과, 끝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무능’의 결과라는 얘기다. 아니 처음부터 폭탄돌리기만 하다가 다음정부로 공을 돌리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24기에서 매년 쏟아내는 사용후핵연료는 557톤에 이른다. 이미 쌓여있는 양은 1만7257톤이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따르면 국내 운영중인 원전 중 10년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되는 곳은 한빛 2029년, 한울 2030년, 고리 2031년 등이다.

그런데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은 부지확보에 10~12년, 이후 중간저장시설·지하연구시설·영구처분시설 건설 등에 30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한참 늦었다.

사용후핵연료는 탈원전의 문제를 떠나 이미 사용했거나 가동중인 원전에서 계속 나오는 폐기물이다. 이 폐기물을 발전소 안의 임시저장시설에 무한정 보관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저렴한 전기요금, 충분한 전력소비 등 원자력발전의 혜택을 누렸다. 그러면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문제를 다음세대에 넘겨서 될 일인가.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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