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글로벌 법인세 하한선에 복잡한 속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흐름의 반전을 요구하기까지, 전세계 법인세율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 40여년 동안 글로벌 평균 법인세율은 40%에서 24%로 하락했다. 첫번째 조치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극적인 법인세 인하로 경제를 부양하고자 했다.
슈피겔은 "경제부양 효과는 현재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하지만 각국의 재정을 약화시켰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적다"고 지적했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 법인세 비중은 연방세수의 1/10 이하로 하락했다. 반면 노동에 대한 각종 세금 비중은 80%를 넘는다.
세계화도 법인세 하락 흐름을 가속화했다. 1980년대 미국 기업들의 해외매출 비중은 15% 미만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30%로 상승했다. 다국적기업들은 점차 어디에서 얼마의 세금을 낼지 정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화 역시 주요 동인이었다. 페이스북이나 애플 구글 등의 기술기업들은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새로운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이들 기업의 사업모델은 데이터와 기술에 기반하고 있기에 전세계 곳곳에 손쉽게 이익을 배분해 세금을 회피할 수 있었다.
전세계는 주요 기술기업들이 턱없이 낮은 세금을 내는 것에 경악했다. 아일랜드에 거점을 마련한 아이폰 제조사 애플은 수익의 0005%만 세금으로 냈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제대로 계산할 경우 애플의 체납세금은 130억달러에 달한다.
각국 정치권도 다국적 기술기업들의 꼼수를 오랫동안 방치했다. 오히려 일부 국가에선 기업의 탈세를 조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2016년 역외 금융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파나마의 최대 로펌 모색 폰세카가 보유한 약 1150만건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파나마 페이퍼스' 스캔들이 터졌다. 각국 대중의 분노가 치솟았다. UC버클리대 경제학자 게이브리얼 저크먼과 이매뉴얼 사에즈는 현재의 법인세제를 '불공정의 승리'라고 비판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미 재무부 세제분석실은 경제학자 킴벌리 클라우싱이 이끌고 있다. 클라우싱은 기업이 역외 조세회피처로 이윤을 옮기도록 만드는 현행 세금제도의 허점을 연구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역시 글로벌 법인세 인하 경쟁이 '자기파괴적'이라며 "미국은 게임의 법칙을 바꾸길 원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전세계 법인세율 하한선이 최소 21%는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인세 하한선 설정은 그동안 독일이 주도적으로 밀어붙인 사안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세정책국장인 파스칼 생아망은 "독일 재무장관 올라프 숄츠가 핵심 인물"이라며 "독일은 미국의 입장 변화에 매우 고무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의 속내가 편치만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법인세 하한선 설정 계획은 다소 복잡하다. 다국적기업에 대한 세금을 매길 때 해당국가에 공장을 갖고 있느냐뿐 아니라 해당 나라에서 얼마의 매출을 올리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당초 최저법인세 아이디어는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을 겨냥한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뒤틀었다. 수출강국의 대기업들에게도 매출에 비례해 이를 적용하자는 것. 그렇게 되면 폭스바겐과 로레알 등 유럽의 주요 기업들도 대상에 오른다.
OECD 생아망 국장은 "미국의 요구는 정당하다"며 "이익 배분의 문제는 디지털기업이냐 아니냐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스타벅스는 전세계 카페 네트워크를 통해 벌어들인 이익들을 곳곳에 이전하면서 세금을 안낸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세제전문가인 토마스 릭센 역시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내세운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같은 접근법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한다. 릭센 교수는 "협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자신의 계산기를 들고 테이블에 앉는다"며 "미국은 최대 소비시장을 갖고 있다. 미국은 세금의 상당몫을 할당받고자 하는 이유다. 그리고 미국이 적극 나서야 국제 세금공조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은 최근 수년 동안 한가한 상황이었다. 다국적기업들이 수십억달러 이익을 조세회피처로 옮기는 와중에서도 각국의 세율은 들쭉날쭉 갈라졌다. 유럽대륙의 공식 법인세율은 헝가리 9%에서 프랑스 31%까지 다양하다. 각국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제시한 세금우대조치를 고려한다면 격차는 더 커진다. 유럽의회 녹색당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룩셈부르크의 실효세율은 2.0%인데 반해 이탈리아 30%에 이른다.
이같은 차이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최저법인세율에 적극적인 독일과 프랑스도 지난 15년 동안 두 나라 간 법인세 공통점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EU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큰 위기를 겪은 아일랜드에 유럽구조기금 수십억유로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법인세율을 높이라고 요구했지만 아일랜드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현재 아일랜드 법인세율은 12.5%에 불과하다.
2012년 다국적기업들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얻은 수익을 세율이 낮은 룩셈부르크로 옮겨 수십억유로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룩스리크스'가 폭로됐지만 유럽 내 법인세제에 반전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EU 집행위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 내 세금인하 경쟁은 오히려 더욱 고조됐다"고 지적했다.
독일 재무부는 글로벌 세제개혁에 수출 대기업이 포함된다고 해도 세수에는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추산한다. 독일 경제의 주축인 많은 중소기업들이 현재 논의되는 매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 이익의 15~20%를 한 나라에서 벌어들일 경우 수익금을 해당 국가 세무당국에 내야 한다는 내용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이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독일 역시 8000만명 이상 인구를 가진 거대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 세수를 국제적으로 배분할 경우 독일도 상당한 몫을 분배받는다는 의미가 된다.
'국제법인세개혁위원회' 사무국장인 토마소 파치오는 "글로벌 법인세 개혁에 가장 큰 저항은 결국 다국적기업들이 주도할 것"이라며 "이미 OECD 협상 과정에서 다국적기업들은 거세게 저항한 바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많은 EU 국가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 독일 재무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슈피겔에 "유럽 중소규모 국가들의 큰 손실이 예상된다.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율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확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유럽 기업들은 페이퍼컴퍼니가 아닌 이상 EU 어느 나라에서나 본사를 설립할 권리가 있다. 만하임대학 세무학 교수 크리스토프 슈펭겔은 "유럽 기업이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에서 우편함만 있는 기업을 운영하지 않는 한, 그리고 주요 사무실과 자체적인 인력을 고용하는 한 독일 세무당국이 해당 기업의 이익을 걷어갈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