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도 못 피한다 … 정치인의 숙명 '선거비용'
대선 500억, 서울시장 34억 들어 … "윤도 100억 대선판 못 버텨"
전당대회 기탁금 1억, 문자 한 번에 6천만원 … 초선 출마 어려워
신인이나 초선 출마하려면 선거운동 방식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
4.7 재보선 당시 오세훈 캠프 이준석 뉴미디어본부장은 "윤석열 전 총장도 재산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100억, 200억 들어가는 대선판에서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재산은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선거비용 때문에 국민의힘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거란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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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 출마를 고민 중인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당원들에게) 문자 한 번 보내는데 수천만원 든다는데… 최고위원이 수억원 값어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내년 3. 9 대선이 11개월 앞으로 다가오고 여야 모두 전당대회를 눈 앞에 두면서 정치인의 숙명으로 불리는 '돈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2004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이후 돈선거 논란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정치인에게 돈은 풀기어려운 숙제다. 합법적 선거자금만 쓰더라도 보통사람은 구하기 어려운 거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소 수억 드는 전대 출마 = 2017년 대선 선거비용 한도액은 509억원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500억, 자유한국당은 420억, 국민의당은 460억원을 지출했다. 이중 100억원 안팎은 선관위가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채웠지만, 나머지는 펀드나 대출 등으로 감당해야했다. 당시 한국당은 당사를 담보로 250억원을 빌리기도했다. 대선에 나오려면 어떤 식으로든 400억∼500억원은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총선후보가 쓸 수 있는 한도액은 1억 8200만원(21대 총선 기준)이다. 물론 총선 전에 쓰는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통상 1∼2년간 사무실 운영과 인건비로 매달 1000만원 넘게 쓰기 일쑤다. 4. 7 재보선에서 서울시장 선거비용 한도액은 34억원이었다. 부산시장은 14억원이었다. 후원금으로 일부 마련이 가능하지만 결국 후보 개인이 상당액을 부담해야 했다.
그나마 대선과 총선 등은 선거공영제 덕분에 비용 대부분을 돌려받는다. 15% 이상 득표하면 선관위가 선거비용 대부분을 환급해준다.
돈문제가 더 심각한 건 당내 선거다. 전당대회나 공직후보자 경선은 선거공영제에 의한 환급이 없다. 후보 개인이 전부 부담해야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대표 후보는 1억원을, 최고위원 후보는 5000만원을 기탁금으로 내야한다. 당원들에게 홍보문자를 한 번 보낼 때마다 수천만원(200만명×33원=6600만원)이 든다. 사무실 운영과 유세 비용도 만만찮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전당대회에 나오면 아무리 안 써도 내 주머니에서 수억원은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윤, 돈 때문에 제1야당행? = 2004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이전까지는 역대대선에서 말그대로 천문학적 자금이 풀렸다는 게 정설이다.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는 수천억원대 불법자금이 살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수사에서 밝혀진 2002년 대선의 불법자금도 한나라당 823억원, 민주당 119억원에 달했다.
2004년 수사 이후 대선에서는 합법적 한도(500억원) 내에서 지출한다지만 이 돈을 정당이 아닌 개인이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윤 전 총장이 무소속이나 군소정당 대신 국민의힘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제1야당에 들어가야 선관위 보조금과 대출을 통해 대선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당대회나 경선 비용도 과거에는 더 많이 지출됐다고 한다. 2012년 당시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2008년 전당대회에서 3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가 돌려줬다"고 폭로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과거 전당대회 때는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에게 500만원, 300만원씩 주는게 관행이었다"며 "그렇게 쓰니 후보당 수십억원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2017년 야당이 된 뒤에는 전당대회 비용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기탁금과 문자발송 등 최소 수억원이 들어간다. 초선의원이나 정치신인이 전당대회에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선거문화 바꾸는 수밖에 = 정치권에서는 돈선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면 선거공영제의 범위를 확대하고 선거문화도 대폭 바꿔야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후보들 먼저 과거식대로 돈 쓰는 선거운동을 탈피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의 경우 제3지대를 택하려면 스스로 돈 안쓰는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국민의 지지가 있다면 펀드를 의욕적으로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비용 환급이 없는 당내 선거는 선거방식 변화가 더욱 절실한 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초선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려면 명분과 이슈를 앞세워야지, 세싸움으로 해서는 안된다"며 "남들 하는대로 문자 보내고 캠프 운영해서는 가성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