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동시다발적 기술기업 규제

2021-04-27 12:32:06 게재

NYT "전례없는 수준"

중국이 이달 10일 인터넷 거대기업 '알리바바'에 반독점법 위반으로 28억달러(약 3조1000억원) 벌금을 물린 데 이어 26일엔 대형 음식배달 서비스업체인 '메이퇀'을 반독점 조사대상에 올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2일 인공지능(AI)으로 구현되는 기술을 제한하기 위한 규제방안을 전세계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마존과 페이스북, 구글을 겨냥해 반독점 전문가를 속속 행정부에 배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전세계 각국 정부가 기술기업의 힘을 제한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단일 산업계에 이토록 강력하고 폭넓은 글로벌 규제가 가해지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호주는 구글과 페이스북에 뉴스 게재의 대가를 내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은 자체적으로 기술업계를 규제할 기구를 만들고 있다. 인도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권한을 채택했다. 러시아는 트위터의 트래픽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 미시건대 법학교수이자 반독점 전문가인 대니얼 크레인은 "전세계가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기술기업과 전투를 벌이는 건 전례가 없다"며 "19세기 철강과 석유, 철도기업에 대한 미국의 반독점 규제도 이보다는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각국이 기술기업과 대결을 벌이는 기저엔 동일한 이유가 있다. 전세계 10대 기술기업들은 상거래와 금융, 엔터테인먼트, 정보통신 분야의 게이트키퍼가 됐다. 이들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10조달러를 넘는다. 국내총생산(GDP)으로 비유한다면, 전세계 3대 국가 규모다.

기술기업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인식은 동일하지만 해법은 제각각이다. 각국의 경합하는 정책은 지정학적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바이든정부는 지난달 미국 기술기업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들에겐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국경없는 디지털세상에서 모든 종류의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경쟁한다는 인터넷의 초기 가치가 허물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각국의 짜깁기 규제 때문에 어느 곳에서 접속하느냐에 따라 콘텐츠와 개인정보보호, 온라인 자유 등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표현과 정보의 자유 등 디지털권리 옹호 단체인 영국의 '아티클19'(Article 19) 대표 퀸 매큐는 "호환가능한 열린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기업들은 대응에 나섰다. 아마존과 페이스북은 자체 기구를 설립해 콘텐츠를 둘러싼 갈등을 심사하고 사이트를 감시하고 있다. 또 미국과 EU 정치권 로비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일부 기업은 자사의 막강한 힘을 인정하면서 보다 촘촘한 규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동시에 규제로 갈가리 찢어진 인터넷이 어떤 악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페이스북 국제문제·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인 닉 클레그는 "각국 입법기구가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내릴 결정들은 인터넷과 국제동맹, 글로벌 경제에 심대한 파급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부총리를 지낸 그는 "페이스북은 미국과 유럽 인도 등 기술민주주의 국가들(techno-democracies)이 협력해 민주적 가치를 보호하고 증진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구글의 글로벌 담당 수석부사장인 켄트 워커 역시 "지역으로 갈라지고 일관성이 없는 규제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반면 적절하고 잘 짜여진 규제는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고 경쟁을 북돋우며 소비자와 중소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기업에 대한 반감은 수년 동안 서서히 탄력을 받았지만 지난해 12월 가속화됐다. 전세계 주요국들의 규제당국과 입법부가 잇따라 독점과 유해콘텐츠를 문제 삼으며 기술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쏟아냈다.

지난해 12월 9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주정부와 함께 페이스북을 반독점 행위자로 고소하는 초당파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1주일도 안돼 EU 당국은 기술기업 경쟁법을 도입하고 온라인 증오 콘텐츠를 막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다. 같은 달 24일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에 대한 반독점 심사에 돌입했다.

독점과 유해콘텐츠 문제는 기술기업들이 가장 아파하는 지점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알리바바 아마존 등 기업들은 온라인 광고와 검색, 전자상거래, 애플리케이션 장터 등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중소규모 경쟁기업을 통째로 사들이거나 아니면 타사제품에 불이익을 줘 경쟁기업을 방해하는 등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반독점 공격은 특히 미국에서 날카롭다. 민주, 공화 양당은 페이스북과 구글 애플 아마존을 겨냥해 반독점, 개인정보보호, 콘텐츠 규제 등에 대한 새로운 입법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유튜브와 같은 사이트가 사용자 게시 콘텐츠에 대한 소송에서 면죄부를 받도록 한 법안을 손질할 방침이다.

로드아일랜드 민주당 의원으로 하원 반독점 소위원회 위원장인 데이비드 시실리니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위해 독점을 해결해야 할 시간"이라며 "거대 기술기업 플랫폼들이 가진 독점력에 대항하기 위해, 디지털경제에 경쟁과 혁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각국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술기업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을 속속 핵심 보직에 앉혔다. 페이스북 해체를 주장하는 컬럼비아대 법학교수 팀 우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기술경쟁특별보좌관에, 기술기업 독점 연구에 정평 난 같은 대학 리나 칸 교수를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에 임명했다.

EU 당국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에 유해콘텐츠를 신속히 삭제할 것을 강제하는 한편 이들 기업이 사이트에서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지 자세한 정보를 제시할 것을 강제하는 새로운 법안을 준비중이다. EU는 또 인공지능(AI) 기술이 영향력을 더 키우기 전에 이를 통제할 계획이다.

EU 디지털정책 담당 부집행위원장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디지털플랫폼 기업들의 힘이 커지면서 이들을 규제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기술기업들은 법적소송을 예고하고 새로운 입법 움직임에 최후통첩을 보내면서도 대세적인 흐름에 수긍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호주다. 호주는 지난해 언론사 기사를 공유하는 대가 지불 문제로 구글, 페이스북과 내내 싸웠다. 이들 기업에 비용을 지불토록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구글은 호주에서 자사 검색엔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위협했다. 페이스북은 올해 2월 뉴스링크 공유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은 현재 뉴스 게재 대가로 일부 언론사에게 콘텐츠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기술기업들에 대한 극명한 반전사례는 중국이다. 중국은 외국 사이트를 막고 국내 플랫폼에 유통되는 콘텐츠를 감시하면서도 자국 기술기업 알리바바나 텐센트에겐 경쟁사를 인수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을 확대하도록 했다.

그런 기류는 지난해 바뀌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알리바바 자회사 앤트그룹의 기업공개를 불허한 데 이어 12월 알리바바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개시했다. 연이은 원투펀치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그로기 상태로 몰았다.

중국은 이달 12일 앤트그룹에 '투자와 신용상품을 운용 방식을 전면 교정하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텐센트와 바이트댄스 등 34개 거대 인터넷 기업들을 소집해 1달 동안 반독점 행위에 대한 자기시정 기회를 주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바이트댄스는 "당국의 지침을 따르겠다"고, 바이두는 "그릇된 선전선동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선 지난달 텐센트 마틴 라우 대표는 "우리는 정부가 우려하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텐센트는 정부 지침을 더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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