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발전, 세계의 예상을 계속 뒤집다

2021-04-28 11:54:38 게재

가디언 “호주 연구 + 중국 산업력 + 미국 자본 + 유럽 정책이 저렴한 에너지 시대 열어”

호주 마틴 그린 교수(사진 왼쪽)와 중국 스정룽 대표 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00년 “2020년이 되면 전세계는 18기가와트의 태양광발전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7년 뒤 그 예상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2007년 단 한해에만 18기가와트 태양광발전 용량이 구축됐다.

1974년 설립 이후 IEA가 전세계 에너지시스템을 측정하고 변화를 예상하기 위해 발행하는 ‘세계에너지전망’ 연례보고서는 전세계 정책당국이 반드시 읽어야 필수 아이템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지난 20년 동안 IEA의 신재생에너지 성장세 예측은 거듭 실패했다.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을 과소평가한 것뿐 아니라 석탄과 석유의 수요를 매우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 태양광발전 분석팀장인 제니 체이스는 가디언에 “사실 예측에 실패한 건 IEA뿐만은 아니다”라며 “내가 2005년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언젠가 태양광이 전세계 전력의 1%를 차지할 것으로 봤다. 지금은 3%다. 우리의 공식예측은 2050년 태양광 비중이 23%에 달한다는 것이지만 그것 역시 완전히 과소평가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델링의 한계다. 대부분 에너지시스템 모델들은 화석연료나 핵연료에 운영되는 에너지시스템에 약간의 변수를 집어넣어 만들어진다. 하지만 태양광발전 용량을 2배 늘릴 때마다 비용은 28%씩 줄어든다”며 “태양광이 전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 된 시점에 도달했다”고 덧붙였다.

태양광발전의 아버지 마틴 그린

가디언은 “태양광발전 가격이 신속히 급격하게 인하된 건 중국의 산업능력에 미국의 자본과 유럽의 정책적 민감성이 보태지면서다. 여기에 호주 연구개발팀의 선구적인 노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해마다 국제기구의 예상을 뒤집는 태양광발전 이야기는 에너지독립을 추구한 미국 대통령들로부터 시작한다.

시초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1973년 11월 에너지독립프로젝트(Project Independence)를 선언했다. 1차 석유파동이 벌어지면서 중동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미 카터 대통령은 에너지위기가 한창이던 1977년 4월 ‘전쟁에 맞먹는 도덕적 노력’(moral equivalent of war)을 들여 에너지전환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했다.

수십억달러를 신재생에너지 연구에 쏟아부었다. 그러다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갑작스레 멈췄다. 하지만 그때 호주에서 태양광발전에 큰 흥미를 가진 인물이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패턴을 이어받았다.

태양광전지는 미국 벨연구소 연구자였던 러셀 슈메이커 올이 1940년 발명했다. 금이 간 실리콘 샘플이 빛에 노출되면 전류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 근무하는 젊은 공학교수 마틴 그린이 태양광발전에 관심을 가지면서 큰 진보를 이뤘다.

호주 동부 항구 브리즈번에서 태어난 그린은 캐나다에서 연구자로 잠깐 있다가 1974년 고국에 돌아왔다. 1년 뒤 그는 대학 내 작은 연구소에서 태양광발전 연구팀을 꾸렸다. 미국 거대 기업들이 쓸모 없는 연구장비를 무상 제공하면서 지어진 연구소였다. 그린은 이 연구소에서 박사과정 학생 1명을 데리고 초기 태양광전지 모델의 출력을 높이는 실험을 수행했다.

그린 교수는 “우리는 태양광전지 전압과 관련한 연구에서 미국에 있는 모든 연구팀들을 앞서기 시작했다”며 “미항공우주국(NASA)도 이를 연구하는 6개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이겼다”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그린의 연구팀은 야망을 키우기 시작했다. 전압을 높이는 데 성공하면서 다음단계로 보다 우수한 품질의 태양광전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린 연구팀은 1983년 태양광전지 변환효율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38년 중 30년 동안 거듭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태양광발전 산업 초창기 통념은 태양광전지 발전효율이 20%를 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린은 1984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를 반박했다. 1년 뒤 그의 연구팀은 20% 한계를 넘는 첫번째 태양광전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1989년엔 20% 발전효율을 낼 수 있는 첫번째 완전한 형태의 태양광패널을 개발했다.

태양광산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린 연구팀은 새로운 발전효율 목표를 25%로 설정됐다. 2008년 이 장벽을 넘어섰다. 2015년 이들은 40.6%의 발전효율을 내는 전세계 가장 효율적인 태양광전지를 개발했다.

‘태양왕’ 스정룽의 탄생

태양광발전과 관련한 숨가쁜 개발의 여정에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태양광발전의 중심인물은 물리학자 스정룽이다. 1963년생인 그는 석사학위를 따고 나서 호주로 건너갔다. 천안문시위가 벌어지기 1년 전이었다.

그는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전단을 보고 그린교수를 찾아갔다. 1989년 그린 연구팀의 박사과정 학생이 됐다.

그는 2년반 만에 박사과정을 끝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그린 교수는 스정룽 박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 계속 태양광발전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뉴사우스웨일스대는 태양광전지 기술을 상업화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퍼시픽솔라라는 스타트업을 세웠다. 1995년 미국의 발전공기업인 퍼시픽파워와 동업거래를 맺었다. 퍼시픽파워가 4700만달러를 투자했다. 공장은 시드니 남부 보타니만에 세워졌고 스정룽이 연구개발 부소장을 맡았다. 이곳에서 스정룽은 풍부한 학식과 정확성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린 교수는 “기본적으로 스정룽이 회사를 경영했다”고 말했다.

5년 정도 퍼시픽솔라에서 일하던 스정룽은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 2000년 11월 중국 장쑤성 관리 4명이 그를 찾아와 ‘중국으로 돌아오면 태양광전지 공장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37세의 연구자이자 호주 시민권자인 그는 한동안 고민하다 제안을 받아들였다. 장쑤성의 작은 도시 우시에 정착한 그는 지방정부로부터 스타트업 지원금 600만달러를 받아 ‘선테크’를 창업했다.

스정룽의 귀환은 중국 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17% 변환효율을 가진 전통적인 태양광패널을 매우 저렴하게 만드는 그의 능력에 중국 경쟁기업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는 “중국 경쟁기업들에겐 큰 충격이었다”며 “우리가 대규모 지역에 고도의 효율을 가진 태양광 패널을 만들어 설치하는 것을 보며 그들은 계속 ‘와우’라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기업들의 첫번째 반응은 ‘이것이 미래다’였지만 곧이어 그들은 ‘너무 시대를 앞선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중국 내 최신 태양광패널 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독일이 태양광발전 패널의 활용을 높이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키면서 상황이 변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에 태양광발전에 대한 거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전세계 제조업체들이 태양광발전 시스템을 공급하려 달려들기 시작했다.

수익성 좋은 투자기회를 엿보던 영국계 사모펀드 액티스캐피털과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등이 컨소시엄을 이뤄 스정룽에게 기업공개를 권유했다. 선테크는 2005년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4억2000만달러를 모았다. 스정룽은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1년 뒤 선테크는 30억달러 가치의 기업이 됐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고 ‘태양왕’(the Sun King)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일이 법 만들면서 시장판도 변화

선테크가 태양광발전의 길을 개척하면서 중국 내 관련 산업계는 급속히 커졌다. 선테크 홀로 태양광발전 용량을 60메가 와트에서 500메가와트로 늘렸다. 2009년엔 1기가와트 용량에 이르렀다. 선테크가 급성장하면서 태양광패널에 들어가는 유리와 폴리실리콘, 전자시스템의 공급이 크게 달렸다. 스정룽은 중국 내 지역공급망 구축에 대거 투자했다.

중국에서 태양광발전 기술개발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어느날 한 지역의 태양광발전 기업이 치고나오면 다음날 다른 지역의 업체가 등장해 앞선 기업을 압박했다. 그 다음날엔 또 다른 지역의 업체가 나타나 시장을 잠식했다. 이런 식의 경쟁이 끝없이 이어졌다. 극도로 낮은 마진과 치열한 경쟁에 모든 태양광발전 기업들은 사실상 늘 실패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다.

2012년 즈음 전세계 시장에 태양광패널이 넘쳐났다. 가격은 바닥을 뚫고 급전직하했다. 중국 선도기업 선테크 역시 휘청거렸다. 이미 극도의 재정 압박을 받던 터에 사기보증에 휘말리며 재앙이 닥쳤다. 기업인수전에 참여하면서 5억6000만유로어치 독일국채로 담보를 받았는데, 내부 감사결과 이 국채가 가짜인 것으로 드러난 것.

실제 국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스정룽은 선테크 CEO에서 해임됐다. 1년 뒤인 2013년 3월 선테크는 만기가 돌아온 5억4100만달러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파산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

호주 매쿼리대 명예교수인 존 매튜스는 "이후 선테크에 무슨 일이 닥쳤다 해도, 그 기업은 중국과 전세계를 영원히 변화시키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역사의 우연인지 미국이 석유에서 독립하려고 추진한 태양광발전 프로젝트는 결국 중국이 임무를 받아안았다. 그 덕에 태양광발전은 아주 저렴한 에너지원이 됐다.

매튜스 교수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중국의 접근법은 에너지안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며 "중국은 새로운 산업들에 뛰어들 때마다 화석연료를 대량 수입해야 한다. 이는 경제적으로 중국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에너지장비를 자체 제조하면서 지정학적 장애물인 화석연료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그린 교수과 스정룽 대표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 두 사람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스정룽은 새로운 기업을 세워 재기를 꿈꾸고 있다. 72세 그린은 또 다른 혁신을 찾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린 교수가 파고드는 혁신 중 하나는 겹쳐 쌓아올릴 수 있는 태양광전지다. 여전히 초창기 수준의 틈새기술이다. 그는 "현재 통용되는 '퍼크'기술(태양광 셀 후면에 반사막을 삽입해 셀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로 22% 전력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며 "하지만 겹쳐 쌓아올리는 접근법을 완성하면, 태양광발전 산업계는 40% 전력효율을 가진 모듈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리콘 위에 실리콘을 쌓아도 모든 특질을 그대로 간직하는 새로운 전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IEA는 이제 '태양광발전이 전세계 역사상 가장 저렴한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비상식적으로 저렴한 에너지의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에 진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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