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시 지원프로그램 신속 가동 필요"
저신용등급 회사채 투자심리 상당기간 위축 … 추가 프로그램 도입 등 선별적 지원 확대해야
지난해 국내 회사채 시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시장안정화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이는 AA급 이상 고신용등급 기업에 선제적으로 진행되면서 A급 이하 저신용등급 기업들의 어려움은 더 악화된 것이다. 채권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등 외부충격에 따른 회사채 발행 여건 악화시 기업 유동성을 신속히 지원하기 위한 운영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모 회사채 발행 증가 = 12일 금융투자협회와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했다. 실물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 우려 등으로 신용채권에 대한 투자심리는 급격히 위축, 신용위험에 대한 경계감이 증대됨에 따라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전례 없는 규모의 시장안정화 대책을 통해 이에 적극 대응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한국은행과 정부의 시장안정화 조치가 시행된 가운데 국내외 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등으로 3월 중순 이후 국고채 금리가 빠르게 하락했다. 신용등급 AA 이상 회사채는 코로나19 충격 초기부터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의 정책프로그램 지원을 받음에 따라 이들 채권에 대한 투자수요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반면 신용등급 A 이하에 대해서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의 운영이 개시된 7월 하순 이후 본격적으로 발행이 지원됐다.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악화된 발행 여건이 상당기간 지속되며 공모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차환자금의 80%를 사모발행 방식으로 지원하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의 경우 발행사의 자체상환 부담, 주식연계채권 발행에 따른 지분희석 우려 등으로 실제 지원을 받은 기업은 소수에 그쳤다.
지난해 공모 회사채 발행규모가 4.5조원 감소한 데 반해 사모 회사채 발행규모는 전년 대비 2.9조원 증가한 9.8조원을 기록했다. 그나마 사모 발행의 증가는 공모 회사채 발행 경험이 있는 기업들 중심이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공모발행 여건이 악화되었음을 고려하면 이들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방식을 공모에서 사모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모 회사채 발행규모의 증가는 신용보증기금 P-CBO를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늘어난 데 크게 기인한다. 작년 P-CBO 지원을 위해 6.4조원의 유동화증권이 발행된 가운데 이 중 4.3조원은 지원 확대 대상인 코로나19 피해 중견·대기업에게 지원됐다. 기업 수 기준으로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총 2247개 기업이 P-CBO 지원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낮은 재무건전성 우려 = 문제는 지난해 사모 회사채 및 장기 CP를 주로 이용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낮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사모 회사채·장기 CP 발행기업의 부채비율은 192.3%로 공모 회사채 발행기업의 80.9%에 비해 크게 열악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그룹의 부채비율이 전년대비 하락한 데 반해 사모 회사채·장기 CP 발행 기업군의 부채비율은 3.8%p 상승하며 코로나19 기간 중 부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모습을 나타냈다. 유동비율 역시 사모 회사채·장기 CP 발행기업이 상대적으로 열위를 나타내며 재무안정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현금비율은 시장성 차입 수단과 관계없이 모든 그룹에 걸쳐 증가세를 나타냈으나 사모 회사채·장기 CP 발행 기업군과 다른 그룹 간의 격차는 지속되고 있다. 특히 유동부채 대비 보유현금의 격차가 지난해 크게 확대됐다. 정 연구위원은 "향후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에 대해 사모 회사채·장기 CP 발행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며 "낮은 재무건전성으로 인해 이들 기업이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회사채 시장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회사채 발행지원 프로그램의 연장 및 지원확대 등 대내외 경제상황 변화를 감안한 유연한 정책운영 요구도 나왔다. 신용등급 BBB 이상의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의 매입기간은 6개월 연장되어 2021년 7월 13일 종료될 예정이다.
그러나 취약업종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실적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책지원이 중단될 경우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 연구위원은 "백신보급 지연 등에 따른 피해규모 확대시 기업유동성지원기구의 매입한도를 조정하거나 추가 지원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선별적으로 지원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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