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만 키운 문 대통령의 '작심발언'

2021-05-13 10:50:23 게재

'무안주기 인사청문' 비판에 야당 반발, 정국 급랭

여당에서도 '철회' 요구

임기 말 당청 대립 부각

"야당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작심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비판한 발언이 무색해진 상황이 됐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지명철회 요구가 제기되는 탓이다. 문 대통령의 강경 발언으로 장관 후보자들을 낙마시키기도, 그렇다고 임명을 강행하기도 더 어려워진 모습이다.

환담장 이동하는 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천대엽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앞서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이후 야권에서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판단을 묻는 질문에 "국회의 논의까지 다 지켜보고 종합해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야당의 반대가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히려 "우리 인사청문회는 능력 부분은 그냥 제쳐두고 흠결만 놓고 따지는 그런 청문회가 되고 있다"면서 '무안주기식' 청문회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3명의 장관후보자의 발탁 이유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국민의 불신을 사고 있는 국토부 출신이 아니면서도 주택공급정책을 차질 없이 집행하고 국토부와 LH공사를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해운산업을 재건시키는 데 최고의 능력가라는 점을 지명 이유로 들었다. 또 과학기술 분야의 여성 진출 확대를 고려해 임혜숙 과학기술정통부 장관 후보자를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장관 후보자 인사 관련 질문은 예상됐던 것이지만 문 대통령의 답변 수위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만큼 문 대통령의 임명 강행의지가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 문 대통령은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시한 다음날인 11일 3인의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14일까지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가 시한을 넘길 경우 대통령은 열흘 이내에서 기한을 정해 재송부요청을 할 수 있고, 이 기한까지도 국회가 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대통령은 장관을 그대로 임명할 수 있다.

당장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반발하며 장관 후보자 3인은 물론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 처리도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 5선 이상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소한 임혜숙, 박준영 두 분은 민심에 크게 못 미친다"며 임명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상당수의 재선 의원들도 송영길 민주당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임명 반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주당 초선 모임인 '더민초'는 최소한 1명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해줄 것을 당 지도부에 요구하기로 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문 대통령의 장관 임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임기말 당청 갈등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문 대통령의 작심발언이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당청 대립만 더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야당과 여당 내 강한 반발에 임명을 강행하기도, 그렇다고 물러서기도 어려운 문 대통령 스스로도 난처한 상황이 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야당의 반발을 불러 국정 부담을 키웠고, 당청간 갈등을 부각시킨 셈이 됐다"며 "임기 말 발언으로는 무리한 발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장관 임명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견을 수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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