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갑자기 모든 것이 부족해지다

2021-05-18 11:20:25 게재

블룸버그 "1년 전엔 소비자, 지금은 기업이 패닉바잉"

1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이 국가들을 차례차례 점령했을 때, 소비자들이 '패닉바잉'(매점매석)의 주체였다. 지금은 기업들이 패닉바잉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 "매트리스에서 자동차, 알루미늄호일 등을 만드는 기업들은 당장의 필요 이상으로 원재료를 사들이고 있다"며 "상품 수요가 급속도로 회복되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원재료가 고갈될 것이라는 원초적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이런 광풍은 공급망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가고 있다. 원재료 부족에 운수송 병목, 이에 따른 가격 급등으로 글로벌 경제에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촉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리와 철광석 강철, 옥수수와 커피 밀 대두, 목재와 반도체 플라스틱 포장용 종이상자... 전세계 거의 모든 것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엔진과 발전기 제조사인 '커민스'의 CEO 톰 라인바거는 블룸버그에 "뭐든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디애나주 소재 기업 '콜럼버스'의 CEO 제니퍼 럼지는 "고객사들은 할수 있는 한 모든 원재료를 얻으려고 한다. 높은 수요를 예상하기 때문"이라며 "내년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와 과거의 공급대란 사이의 차이점은 순전히 규모의 차이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크건 작건 여기서 벗어나 있는 기업들은 거의 없다. 유럽의 최대 트럭운송기업인 '기르테카 로지스틱스'는 운배송 수요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캘리포니아 소재 음료제조사인 '몬스터 베버리지'는 알루미늄캔 부족에 고심하고 있다. 휴대폰 무선충전기 등을 제조하는 홍콩 소재 '모맥스 테크놀로지'는 반도체 부족으로 신상품 제조를 미루고 있다.

원자재 시장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건 최근 이례적으로 이어진 각종 사건사고다. 지난 3월 수에즈운하를 막은 희한한 사고로 글로벌 해상운송이 막혔다. 가뭄으로 전세계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 2월 강추위와 대규모 정전상태로 미 중부지역 전반의 에너지와 석유화학 사업이 마비됐다. 최근엔 해커들이 미국 최대 연료운송 파이프 기업을 교란시켜 가솔린 가격이 갤런당 3달러는 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이제 인도의 코로나19 긴급상황으로 인도 최대 무역항들의 활동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같은 상황이 몇달 내로 끝날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표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미국 물류관리자지수(LMI)는 기업 공급망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재고(수준, 비용) △창고(용량, 이용률, 가격) △운송(용량, 이용률, 가격) 등 8가지 비용 요소를 조사한다. 이를 통해 향후 1년 동안 공급망 상황을 알 수 있다. 현재 LMI는 2016년 이후 2번째로 높다. 지금부터 1년 동안 재고와 창고 운송 등 공급망 비용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콜로라도주립대 MBA 부교수로서 LMI 산출에 관여하는 잭 로저스는 지금 상황을 '패러다임 시프트'로 보고 있다. 기업들은 과거 재고와 창고 운송을 비용절감 측면에서 접근했다. 하지만 이제 전자상거래 수요가 치솟으면서 창고는 도심 외곽의 저렴한 부지에서 도심의 주요 주차장 부지나 비어 있는 백화점 공간으로 옮겨지고 있다. 부동산과 노동력, 전기·상하수도료 등이 더 비싸지만 배달 또는 배송의 신속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재고를 넉넉히 두는 건 대단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젠 확보할 수 있는 선까지 재고를 비축하는 게 인기다. 변동성이 큰 운송비용은 수요가 줄어들 때까지 낮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로저스 부교수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대기가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며 "향후 12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가격 인상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표도 있다. 미국 식음료와 연료를 제외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급증했다. 1982년 이래 최대폭 상승이었다. 미국 제조업체들이 매기는 출고가 인상폭은 경제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상승이 가팔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제 '언제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막을 것이냐'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규모 지출계획을 위협하고 있다.

영국 소재 물류 소프트웨어 서비스 제공업체인 블루제이 솔루션스의 최고제품책임자(CPO)인 데이비드 랜도는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심각한 인플레이션 상승이 무르익은 환경이다. 반면 이에 대처할 지렛대는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애틀랜타 소재 '콜게이트 매트리스'의 부사장인 데니스 울킨은 3대째 아기침대를 만들고 있다. 경기확장은 대개 아기침대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핵심 원재료인 발포고무 충전재가 없다면 수요 폭증은 의미가 없다. 울킨이 사용하는 폴리우레탄 충전재는 구하기 어렵다. 지난 2월 미국 중남부 전역을 휩쓴 강추위와 대규모 정전상태로 석유화학기업들의 활동이 중단된 데다 관련 기업들이 될 수 있는 한 많은 양을 비축해놓으려고 과도한 양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킨은 "통제 불가능 상황이다. 특히 지난달에 심각했다"며 "이같은 상황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폴리우레탄 충전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50% 비싸졌지만 울킨 역시 당장 필요한 양의 2배를 주문한다. 신규고객의 주문을 거절하느니, 창고를 새로 지어서라도 이를 비축하려 한다. 그는 "우리와 같은 모든 기업들은 필요 이상 구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디지털 공급망 관리 시스템을 갖춘 다국적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가전제품 제조사 월풀의 CEO 마크 비처는 "공급망이 뒤집혔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단계적인 가격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월풀을 비롯한 대형 제조사들은 주문량에 따라, 판매예상에 따라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용가능한 부품에 따라 제품을 만든다.

비처는 "이는 효율적이거나 정상적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일각에선 공급망 교란이 일시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상황이 향후 계속 고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같은 압박은 다시 글로벌 원자재 시장으로 되먹임된다. 희소자원 생산이 둔화되고 더 비싸진다. 목재와 구리 철광석, 강철 가격은 최근 몇달 동안 치솟았다. 세계 양대 경제강국인 미국과 중국의 강력한 수요에 직면한 데다 수요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가격 역시 상승 기조다. 플라스틱에서 고무, 화학품까지 산업재 가격이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알루미늄 호일과 쓰레기봉투를 만드는 '레이놀드 컨슈머 프라덕츠'는 또 다시 가격인상을 계획중이다. 올해 들어서만 3번째다.

식음료 가격 역시 오르고 있다. 세계 가장 많이 소비되는, 기름야자나무의 열매로 얻는 식용유는 지난해 135% 상승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두는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부셸당 16달러를 넘었다. 옥수수 선물은 8년래 최고치다. 밀 선물은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엔이 산출하는 세계식량지수는 지난달 역대 11번째 높은 달에 올랐다. 7년래 최고치였다. 식량가격은 10년 이상 상승 국면에 있다. 최장기다. 기후변화 우려에다 중국의 농작물 매입 열풍이 불어 식량 공급을 타이트하게 만들었다. 인플레이션 급등의 위협을 고조시킨다.

이달 초 블룸버그 원자재 현물 지수는 2011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경제다.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른 회복세를 경험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 해안을 부유하는 수십대의 컨테이너선이 대표적 증거다. 오클랜드에서 로스앤젤레스 항구에 이르기까지 짐을 부리려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상품은 중국에서 선적된 것이다.

지난주 발표된 4월 중국 생산자가격지수는 2017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공장 출고가가 소매업자나 해외의 다른 고객사들에게 전가된다면 비용상승 압박의 또 다른 리스크가 생긴다.

동아시아의 제조허브 상황도 심각하다. 반도체 부족 상황은 자동차와 스마트폰 공급망까지 확산됐다. 홍콩 소재 '모맥스 테크놀로지'는 무선 스마트폰 충전기와 스마트홈 공기청정기 등을 만드는 가전제조사다. 300명의 직원 중 약 2/3가 선전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폰이나 에어팟, 아이패드, 애플와치 등 애플 제품에 쓰일 새로운 보조배터리 생산이 반도체 부족으로 연기되고 있다.

게이브칼 리서치의 빈센트 취는 "반도체업계 상황은 단기간 차질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전업계 전반을 위협할 수 있다. 아시아의 첨단 수출 경제국들을 압박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말했다. 반도체 부족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한국은 최근 "약 4500억달러를 투자해 향후 10년 전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기지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선박과 트럭, 열차 운수송은 풀가동되고 있다. 특히 해양 화물선적률은 최고치에 달했다. 주요국 항구들은 미어터진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박사 APM 머스크의 경영진은 "올해 조금씩 해양화물 요금이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매우 저렴했던 수준으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HSBC 무역 이코노미스트인 샤넬라 라자나야감에 따르면 지난해 컨테이너 요금 상승으로 유로존 제품 가격이 평균 약 2% 올랐다.

열차, 트럭 화물 운송료 역시 상승했다. 북미 화물 선적량을 보여주는 카스화물지수(CFI)는 4월 최고치를 기록했다. 5개월 동안 4번 기록을 경신했다. 키뱅크 캐피털 마켓츠 애널리스트인 토드 파울러는 "올해 2분기 트럭화물 서비스 현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7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전체와 올해 전체를 비교하면 약 30% 상승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파울러는 "각 기업의 재고가 빈약하고 계절적 수요가 겹치는 데다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화물운송료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게다가 트럭생산이 제한되고 운전기사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 소재 포장재 기업인 'DS스미스'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로 몰리면서 포장재박스와 기타 선적 재료 등에 대한 수요가 700% 늘었다. 이에 따라 포장재 원재료 공급 가격은 두배 올랐다. 재활용 섬유로 만든 포장재 1톤당 200유로에 달한다. DS스미스 CEO 마일스 로버츠는 "연간 재활용 섬유를 400만~500만톤씩 구매하는 우리에겐 상당한 부담"이라며 "늘어난 전자상거래는 팬데믹이 지나간다 해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콜게이트 매트리스의 울킨 부사장은 과거 매주 월요일마다 충전재를 주문하고 다음날 이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콜게이트의 공급사들은 그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콜게이트도 높아진 원가를 언젠가는 소비자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울킨은 "단기가 아닌, 장기적 문제다. 인플레이션이 닥치고 있다. 어느 순간 이를 다른 이에게 떠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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