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에도 월가의 중국사랑은 굳건
월가, 중국자산시장 매력에 군침 ... 인구위기 대처 위해 중국도 대환영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26일(현지 시각)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의 확산 원인에 대한 재조사를 전격 선언했다. 중국의 반응은 신속했고 크게 격앙됐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미국이 ‘정치적 조작’을 하고 있고, ‘중국에 오명을 씌우려 한다’고 비난했다. 양국이 주기적으로 주고받는 입씨름의 일종이다.
하루 앞선 25일 미중 정치적 갈등과는 결이 다른 소식이 들렸다. 미국 금융계의 글로벌 지배력을 상징하는 골드만삭스가 중국공상은행과 자산운용 파트너십을 맺는 데 중국당국이 예비 승인을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미중 관계가 점차 지정학적 경쟁, 경제적 탈동조화를 향하는 상황에서 미국 금융계는 중국 금융자산에 전례없이 가까워지고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빨리 진출하지 않는 것”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자산시장 규모는 121조 6000억위안(18조9000억달러)로 추산된다. FT는 “거대한 규모의 중국시장은 유서 깊은 월가와 유럽의 금융기관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에 앞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이달초 중국건설은행과의 자산운용 파트너십에서 중국당국의 승인을 얻었다고 밝혔다. JP모간 자산운용은 지난 3월 중국초상은행에 4억15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인 프랑스 ‘아문디’,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슈로더 역시 중국과의 자산운용 파트너십에서 지배지분 확보를 승인받았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의 아시아 고객사업 대표인 뚜언 럼은 “중국당국의 승인 소식에 회사 내 최고위층부터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흥분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시장에 대해, 최근 규제와 시장의 변화 등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심사숙고했다. 중국시장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력히 확신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중국 후룬리포트가 발표한 ‘2021 글로벌 부호 명단’에 따르면 중국의 억만장자는 1058명으로, 696명의 미국을 따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외국계 금융기관들에 지속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외국계 기관들에게 전적인 자유를 주는 데엔 주저하고 있지만, 이들의 풍부한 경험을 끌어들여 선진적인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한다. 특히 인구노령화에 따라 중국도 인구감소 위기에 직면하면서 금융시장 선진화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런 배경에서 일부 투자자들은 ‘현재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시장에 빨리 진입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을 무대로 한 외국기업의 골드러시에선 늘 벅찬 도전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경제의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금융산업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미중 양국의 지정학적 갈등을 고려하면 금융관계 역시 불안한 게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원에서 최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신장에서 대만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서구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공상은행과의 새로운 합작벤처에서 지배지분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우선 중국의 고액자산가들을 목표로 자산운용 사업을 진행한 뒤 점차 일반인에게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새로운 금융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의 저축은 예금 아니면 부동산 투자였다. 골드만삭스는 2020년 말 기준 중국 가계자산의 60%가 부동산에 매여 있고, 24%는 현금과 예금 형태로 있다고 추산한다.
블랙록의 아시아 대표 수잔 챈은 “중국은 저축의 나라이긴 하지만 현금과 부동산의 형태가 압도적”이라며 “자본시장과 금융 인프라, 사람들의 자산운용 방식에서 보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매우 젊다”고 말했다. 블랙록은 중국건설은행,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참여하는 합작벤처 설립을 신청해 중국당국의 승인을 얻었다.
방대한 유통망 가진 중국 은행
골드만삭스나 블랙록과 같은 투자기업이 중국 은행과 손잡는 이유는 방대한 금융 유통망에 있다. 투자상품을 중국 전역에서 신속히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인프라다. 중국공상은행은 고객수만 6억8000만명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2배를 넘는다.
국영은행이 보유한 자산 측면에서 중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 중국 국영은행들은 지난 수년 동안 고객들에게 예금의 대안으로 자산운용 상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그림자금융으로 인한 불투명성, 암묵적인 원금보장 등으로 각종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중국당국은 2018년 금융산업의 전면적인 개혁을 위해 외국계 금융기관에게 문호를 대폭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미국 금융사들은 중국에 발을 들인 지 오래다. 중국 내 사업 역사가 길다. 하지만 최근 금융산업계를 휩쓴 중국당국의 개혁조치로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사업 운용 여지가 크게 확대됐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아문디의 중화권 대표인 샤오펑 중은 “중국정부는 외국계 자산운용사와 은행들이 모범 경영과 잘 확립된 프로세스, 양호한 기준 등을 갖춘 새로운 종류의 기관투자자, 새로운 플레이어를 대표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문디는 지난해 외국계 자산운용사로서는 처음으로 지배지분을 가진 합작벤처를 설립하는 데 승인을 받았다. 그는 “아문디와 중국은행이 설립한 합작벤처는 20개 이상의 자산운용 상품을 출시해 수십억달러의 운용자산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슈로더의 글로벌유통 헤드인 리벤 데브루인은 “우리가 중국 내 자산운용 합작벤처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직접적으로 중국 거대은행들이 수년 동안 구축한 대규모 자산풀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슈로더는 올 2월 중국교통은행과의 파트너십에 대한 당국의 승인을 얻었다.
자산운용 부문은 중국 대규모 자산시장 풀의 일부다. 뮤추얼펀드의 경우 JP모간과 같은 외국금융기관들은 지난해 100% 지분을 확보한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또 중국 연금시스템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이번달 발표된 인구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인구성장률은 수십년래 최저치였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3.5%를 차지했다. 2010년 8.9%에서 크게 늘었다. 블랙록의 수잔 챈은 “중국인이 은퇴 이후 맞이할 위기는 전세계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크다”며 “중국정부는 국민에 ‘미래를 위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기관들에게 중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기회의 나라다. 서구의 금융기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융시장의 호황으로 단기적 이익을 늘렸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고도로 성숙한 시장에서는 장기적 성장전망을 장담할 수 없는 구조적 과제가 즐비하다. 글로벌 회계·컨설팅기업 EY의 자산운용 파트너인 리처드 그레이는 “기본적으로 중국은 성장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정치와 규제 환경의 급변 가능성
하지만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그레이는 “중국당국과 서구 금융기업들이 실용적인 기반에서 손을 잡고 있지만, 가장 거대한 리스크는 역시 정치적 환경의 변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당국과 문제가 생긴다면 이익을 본국으로 가져가는 것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너서클이 아니기에 중국 금융기관들과 달리 엄격한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정치적 방어막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모닝스타의 선임 애널리스트인 그레고리 워런도 “중국은 무시하기엔 너무 큰 시장이다. 하지만 중국당국의 규정과 태도는 하룻밤새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 정치권의 분위기도 심상찮다. 월가와 중국의 밀월에 대한 워싱턴의 시각은 깐깐하다. 공화당 상원의원 마코 루비오는 최근 “월가와 중국이 전례없는 수준에서 통합되고 있다”며 “누가 21세기 세계경제를 주도하느냐에 대한 대결과정에서 중국이 월가와의 관계를 갑작스레 끊어내는 상황은 미국의 가장 취약한 지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트럼프정부를 포함한 이전 정부는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늘리려고 갖은 애를 썼다. 지난해 타결된 미중 1단계 무역협상 타결에도 이는 주요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바이든행정부가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미 코넬대 중국 금융전문가인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월가는 워싱턴 정치권을 움직여 미국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강력한 로비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적 환경에서는 월가의 힘이 크게 제약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월가 수장들을 대상으로 한 의회 청문회에서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솔로몬은 “미중 관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며 “협력할 지점이 있고, 대결할 지점이 있다. 우리는 이를 적절한 방식으로 헤쳐나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