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표 경제정책 … 그린·디지털 집중
취임후 첫 경제·재정방침 윤곽 … 미국중심 경제동맹 강화, 재정적자 계속 눈덩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취임 이후 자신의 구상을 담은 경제정책을 처음으로 한 데 모은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이른바 ‘3개의 화살’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도 디지털과 그린경제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안보동맹에 대한 참여도 구체화하는 가운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핵심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막대한 사회보장비 지출과 만성적 재정적자에 따른 국가부채의 급증으로 재정개혁의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경제성장 엔진의 정체는 심각한 위협이다. 여기에 아베 전 총리와 같은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스가식 경제재건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2050년 탄소제로, 1000조원 경제효과 기대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의장 스가 총리)는 지난달 25일 회의를 열어 6월중 내각에서 결정할 ‘경제재정운용과 개혁의 기본방침’(기본방침) 초안을 발표했다. 기본방침은 일본 정부가 가야할 장단기 경제정책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기초해 재정운용의 틀을 짜는 기초 자료로 활용한다. 이에 따라 총리가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각 부처와 자문그룹이 큰 틀의 방향을 세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스가 총리 집권 이후 첫 기본방침이라는 점에서 전임 아베 총리가 결정한 2020년 기본방침과 차별화가 주목됐다. 이날 공개한 초안은 크게 4개의 장으로 이뤄졌다. 제1장은 코로나19 극복 과제와 향후 경제사회적 개혁과 관련한 총론에 해당하고, 제2장은 새로운 성장의 원천으로서 4개 원동력을 구체화했다. 스가정권이 향후 핵심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4개의 원동력은 △그린사회의 실현 △디지털화 가속화 △활력있는 지방만들기 △출산과 육아에 대한 환경 조성 등이다.
이날 발표한 초안은 아베정권 당시인 지난해 7월 방침과 큰 기조에서 차이는 없다. 다만 스가정권은 아베정권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기울이지 않았던 탈탄소사회 실현과 디지털혁신을 보다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스가 총리 스스로 여러차례 강조한 ‘2050년 탄소실질제로’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도 제시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해상 풍력과 수소, 전지 등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등을 통해 2030년 연 90조엔(918조원)의 경제효과와 850만명의 고용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혁신도 아베정권 당시보다 전략적으로 힘을 집중하고 있다. 규제개혁추진회의는 1일 회의를 갖고, 2만2000여개에 이르는 행정절차의 98%를 2025년까지 온라인화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에는 여러 성과 청에 분산돼 있는 디지털 관련 업무를 통합하는 ‘디지털청’의 설치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스가정권은 ‘쉬운 출산과 육아를 위한 사회의 실현’을 내걸고 문부과학성과 후생노동성 등에 흩어져 있는 아동 관련 업무의 통일을 위해 이른바 ‘어린이청’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자민당 내부의 ‘어린이·청년의 빛나는 미래창조본부’(본부장 니카이 간사장)는 지난달 31일 ‘어린이청’ 창설을 제언하는 결의안을 마련했다. 여러 성과 청으로 분산된 예산을 통합하고, 양육과 관련한 예산을 현재 국내총생산 대비 1% 수준에서 미국이나 유럽 등과 같이 3%대로 끌어 올린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이 이러한 내용을 담아 올해 하반기 중의원 총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울 계획”이라고 관측했다.
반중 경제동맹 강화, 영국 TPP 가입 유도
이번 기본방침에서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4대 성장동력을 뒷받침하는 하위개념으로 경제안전보장의 확보와 전략적인 경제연계의 강화를 들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통적인 선진국 클럽을 중심으로 중국으로부터의 공급망 독립과 독자적인 기술개발 등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다.
특히 반도체 등 핵심산업에 대해서는 미국 대만 등과 연계한 연구기술력 향상과 생산거점 확보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일본정부는 대만의 TSMC 등과 함께 일본 국내에서 반도체 연구기술 거점을 추진하기로 하고 정부차원의 예산지원을 천명했다. 자민당도 지난달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을 결성하고 아베 전 총리를 고문에 추대하는 등 거당적으로 나섰다. 의원연맹은 지난달 28일 회의에서 반도체의 국내 제조기반의 강화를 요구하는 결의서를 채택하고 연구개발기금의 창설 등을 모색하기로 했다.
일본정부는 또 경제산업성 등을 중심으로 2일 성장전략회의를 열어 ‘성장전략 실행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수소충전소 1000곳 및 전기자동차 전용 급속충전설비 3만곳 설치 △차세대 데이터센터 핵심 거점 5곳 설치 △양자기술 등 연구개발 가속과 향후 5년간 민관이 120조엔 투자 목표 △백신의 국내개발과 생산체제 구축 등을 성장전략으로 제시했다.
전략적 경제연계 강화의 일환으로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영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트럼프정부에서 미국이 이 협정에서 탈퇴하면서 사실상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의장국으로서 영국의 가입을 통해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TPP에 가입하고 있는 11개 국가는 2일 장관급 위원회를 열어 영국의 가입을 위한 교섭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TPP는 일본과 호주, 싱가포르 등 아시아 태평양 역내의 11개 국가가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이 여기에 가입하면 역외로는 첫번째 국가다. EU 탈퇴로 고립된 영국도 TPP가입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알려졌다. 니시무라 야스노리 경제산업상은 “중요한 무역투자국인 영국이 TPP에 가입하면 일본과 영국의 경제관계 강화에도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물건너간 2025년 균형재정 목표 고집
기본방침의 또 다른 핵심축인 재정운용 방침에 대해서는 기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회의에 제출한 ‘재정건전화를 위한 건의’에서 “저금리 아래서 국채발행 증가에 따른 비용 부담을 느끼기 어렵지만 악화한 재정상황은 미래의 부담을 뒤로 미루는 것이며 현재도 코스트 리스크가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와 국민생활의 저하를 방어하기 위해 각종 무상 재난지원금과 대출금 등의 급증으로 막대한 규모의 재정적자를 보였다. 내각부가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초적재정수지’는 69조4000억엔 적자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1월 예상치인 15조3000억엔에 비해 4배 이상 급증한 규모이다.
해마다 재정적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국채발행잔액도 급증하고 있다. 재무성에 따르면 2020년 말 중앙정부 일반회계 국채발행 잔액은 946조6468억엔으로 전년도 말(886조6945억엔)에 비해 6.8% 늘었고, 올해 말에는 이 규모가 990조3066억 엔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내각부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채권발행 잔액이 지난해 말 1159조8000억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당초 목표로 한 2025년 균형재정 달성은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NHK에 따르면 일본경제가 매년 2% 이상 성장을 전제로 하더라도 2025년 7조3000억엔의 적자가 불가피하고, 2029년에 가서야 3000억엔 정도의 흑자로 돌아선다. 내각부는 2025년 일본의 국채발행 잔액이 1243조엔, 2030년 1327조7000억 엔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 일본 내에서 세출뿐만 아니라 세제개혁 등을 통한 세입 측면의 개혁도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의 3대 경제단체 가운데 하나인 경제동우회는 지난달 내놓은 ‘지속가능한 재정구조의 실현을 위한 제언’에서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도,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위기시에 필요한 재정동원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재정구조의 실현을 위한 논의를 신속하게 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무라총합연구소 키우치 타카히데 이코노미스트는 “흑자화 달성목표는 2030년 정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정부가 목표를 수정하면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놔야 하기 때문에 올해 기본방침에서는 완전히 형해화된 2025년도 흑자라는 기존 목표를 유지할 것”이라며 “재정 환경의 악화는 포스트 코로나 성장동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순히 세출 개혁만 강조해서는 안되고, 증세를 포함한 재원의 확보에 대해 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