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일본 금형산업, 첨단화·정밀화로 승부

2021-06-08 11:13:26 게재

한중 추격에 초정밀도 기술 개발 노력

전기자동차 부품서 경쟁력 확보 고심

일본은 전후 자동차와 전기·전자제품 등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을 무기로 경제대국의 길을 일궜다. 일본 제조업 경쟁력에는 기본 바탕이 되는 금형산업의 압도적 우수성이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금속·기계산업의 기초인 금형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이 한국과 중국 등의 추격으로 기술과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지면서 기로에 놓였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기로에 선 금형산업'을 주제로 작지만 경쟁력 있는 일본내 금형기업을 소개하면서 첨단화와 정밀화로 승부해야 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사이타마현 이루마시에 본사를 두고 인근에 공장을 운영하는 사야마금형제작소는 초정밀화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1964년 창업한 이후 현 오오바 오사무 사장이 부친의 가업을 승계한 때는 1987년. 당시 한국과 대만 등 후발주자들이 낮은 인건비로 일본의 금형산업을 매섭게 추격하던 때였다.

오오바 사장은 "무엇이든 결심만 하면 다시 1등이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2001년 공장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도쿄와 사이타마현 경계에 걸쳐있는 사야마구릉의 넓은 야산 근처에 자리잡은 이 곳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오오바 사장이 공장을 한적한 이곳을 옮긴 이유는 미세한 가공작업의 정밀성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미세한 가공작업을 하는 데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진동조차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이곳으로 옮겼고, 공장도 햇볕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반지하로 했다. 공장내 온도는 항상 24도 전후로 유지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초정밀 가공을 위한 여건을 만들었다.

오오바 사장이 이처럼 금형산업에서 초정밀도에 집착하는 데는 그만큼 이 분야에서 미세한 공정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수백가지 금속부품을 조립하는 금형 과정에서 아주 조그마한 틈만 생겨도 불량부품을 양산하기 쉽다. 따라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1000분의 1미리 단위로 요구하는 정밀도를 확보하기 위해 기술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강한 경쟁력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스위스 시계회사 등으로부터 수주를 받을 정도로 정밀도를 자랑한다. 회사는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기용 미세부품 등의 금형제작에도 연구개발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오오바 사장은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 등을 만드는 일본 기업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수주가 끊기고 어려워졌다"면서 "중국 기업에 비해 반발짝 앞서간다는 생각으로 기술을 주도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래 첨단산업인 전기자동차(EV)의 모터코어에 들어가는 금형기술로 첨단화하는 사례도 있다. 기후현 오가키시에 있는 '오가키정공'은 6개월 전부터 세계 자동차 관련 기업으로부터 연락이 줄을 잇고 있다.

모터코어는 전기자동차에서 빠질 수 없는 구동용 모터의 핵심부품으로 아주 얇은 전자강판을 수백장 겹치게 해서 용접과 접착제를 쓰지 않고 접합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동판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모터의 효율과 소음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오가키정공은 특수한 접착제로 동판을 한장씩 접합해 모터코어를 만들 수 있는 금형과 양산방법을 개발해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등에서도 이 기술을 사용할 정도로 차세대 핵심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는 컴퓨터와 서버의 하드디스크 내부를 제어하는 초정밀부품에서 세계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우에다 카츠히로 회장은 "금형기업이 틀에 박힌 것이 아니라 기술력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일본 금형업계는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기술에 들어가는 부품과 다른 전기자동차의 미래에서 살길을 도모해야 한다는 관측을 하고 있다. 1만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가솔린 자동차에 비해 부품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그만큼 첨단화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일본금형공업회 회장인 코이데제작소 코이데 사토루 사장은 "새로운 미래 자동차산업에 금형업계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고민하지 않으면 호되게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 금형산업은 전기·전자업계와 완성차업체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경쟁력도 많이 상실했다. 일본금형공업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일본의 금형생산액은 약 1조5000억엔(15조3000억원)으로 1991년(약 2조엔)에 비해 규모가 크게 줄었다. 대부분 금형기업이 종업원 30명 이하의 영세한 업체인데, 1991년 1만3000개에 달했던 관련 산업의 기업도 지금은 절반 수준까지 줄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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