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가장 행복한 나라 총리의 ‘무료조식 게이트’

2021-06-24 12:58:34 게재
김택환 언론인 경기대 특임교수
2018년부터 4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평가받은 핀란드에서 산나 마린 총리 스캔들이 터졌다. 세계 최초 33살에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핀란드 언론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노리에 취리히 차이퉁(NZZ) 등 유럽 언론들이 관심있게 보도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조식-게이트’(breakfast-gate)라 부른다. 유로뉴스는 “핀란드 최고 덕목인 근면절약을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논평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마린 총리가 관저에서 한달 동안 무료로 아침식사를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우유 뮤즐리 빵 등 아침식사 한달 비용은 860유로 (약 116만원)이다. 핀란드 언론들은 “총리가 아침 식사비를 세금으로 사용했다”면서 “총리 개인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공금을 써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기름을 부은 것은 총리 관저로 이사한 직원들이 식대 1만4363유로(1936만원)를 세금으로 사용한 것이다. 언론들은 즉각 ‘총리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찰과 국세청도 조사에 착수했다. 유럽 언론들은 “총리의 무상조식이 핀란드 국민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총리 무상조식이 핀란드인 자존심 건드려

핀란드인의 자존심이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가? 크게 두 가지, 즉 행복지수 1등과 자유평등사회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행복지수 1등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다. 농업 국가였던 핀란드는 1950년대 산업화에 시동을 걸어 2018년부터 유엔(UN)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주관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핀란드 정부사이트 등 많은 곳에서 이를 홍보한다.

SDSN은 행복국가를 6개 기준으로 평가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누구나 필요한 물건을 살 돈이 있고, 건강하며, 자유롭게 더불어 사는 인심좋은 사회이자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다.

① ‘개인GDP’다. 구매력을 포함해 개인이 쓸 수 있는 돈, 즉 국가의 부를 말한다. ② ‘기대수명’이다. 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건강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회가 행복한 나라다. ③ ‘사회적 연대’다. 세계적으로 설문조사를 담당하는 갤럽(GWP)은 “만약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친인척이나 친구 동료들이 있는가”를 묻는다.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이다. ④ ‘자유’다. GWP는 또 “당신 삶을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만족도”에 묻는다. 개인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다. ⑤ ‘인심’이다. GWP는 “당신이 지난달에 자선을 위해 얼마만큼 돈을 기부했는가”를 묻는다. 각박하지 않고 인심 좋은 사회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⑥ ‘부정부패’이다. ‘정부와 기업 등에 부정부패가 얼마나 널리 퍼져있는가’를 평가한다.

핀란드는 4년 연속 세계 1위(7.842)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은 2021년 조사국가 149개국 중 62위(5.845점)를 기록했다. 우리 순위가 낮은 이유는 세계 최고 자살률과 부정부패지수 때문이다. G7 등 주요국의 경우 독일(13위), 캐나다(14위), 영국(17위), 미국(19위), 프랑스(21위)로 나타났고, 아시아에서는 대만(24위), 싱가포르(32위), 일본(56위) 순으로 조사됐다.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한 나라

핀란드의 또 다른 역사적인 유산은 ‘자유평등사회’다. 이같은 철학은 정치·경제·외교안보·미디어 등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먼저 오래 전에 확립된 ‘토지 공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의 권리’로 누구나 농사와 여가 활동을 위해 공공·사유지를 이용할 수 있다. 부족·씨족 패거리가 아닌 공동체 정신으로 발전했다. 부동산 투기를 찾아볼 수 없다.

둘째, 교육기회의 평등과 양성평등 사회를 앞당겼다. 1980년 ‘평등법’, 2015년 ‘차별금지법’ 등 제정으로 미혼모의 동등한 권리와 자녀 성 결정, 남녀 임금격차 해소, 사회적 차별대우와 차별표현 금지, 양성평등재판소, 옴부즈만제 등을 제도화했다. 현재 사민당의 마린 총리뿐만 아니라 연정 파트너인 4개 정당, 즉 중앙당, 좌파당, 녹색당, 스웨덴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다.

셋째, 산업국인 동시에 복지국가다. 산업화를 적극 추진해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 2021년 개인 GDP가 5만4330달러의 부자나라이자 노르딕 모델인 최고 복지시스템을 구축했다. 넷째, 외교안보의 ‘핀란드화’다. 스웨덴 독일 소련(러시아) 등 패권국가들 틈바구니에서 수난을 겪으면서 정체성을 지킨 것이다.

다섯째, 정보화된 사회와 언론·인터넷의 발전이다. 핀란드는 세계 언론자유 1등 국가이자, 신문·방송·뉴미디어 산업도 발전했다. 언론이 권력감시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에 총리의 ‘무상조식 게이트’가 밝혀진 것이다.

또 핀란드는 2017~2018년 최초로 ‘기본소득’을 실험했다. 정부가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 매월 560유로(약 72만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했다. 목적은 청년실업(당시 20%)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기본소득 수령자들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3점으로 기존 실업수당 수령자(6.8점)보다 높았다. 반면 일자리 증대에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 연구에 참여한 헬싱키 대학의 헤이키 힐라모 교수는 “기본소득이라는 당근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이후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실험을 폐지하고 일자리 창출에 올인 하고 있다. 그 결과 2021년 청년 실업이 16%로 떨어지고, 전체 실업율도 6.66%로 낮아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핀란드에서 폐기한 실험, 즉 기본소득이 한국을 달구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왜 우리 사회 일각에서 핀란드의 실패 실험 모델에 이렇게 열을 올리고 있을까?

독일의 역사학자 한스 울리히 벨러는 ‘여러 사회계층에 무상제공을 약속하는 선전’을 ‘벌거벗은 포퓰리즘’으로 표현한다. 충분한 재원조달 없이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이며,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사회보장제도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지수 1등’ 비전 내거는 후보는 없나

그럼 우리는 핀란드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부유하고 투명하며, 건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다. 3가지를 도출할 수 있다.

먼저 제왕적 대통령의 특권 내려놓기다. 권위주의 유산인 청와대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 수조원 특수활동비를 없애고, ‘청와대를 국민행복관’으로 돌려주고 세종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6년 동안 사저(私邸)에서 살면서 전기값 수도값 등을 스스로 지불한다. 집안에 요리사도 없다. 현재 청와대에서 대통령 부부 식사, 직원들의 아침 및 저녁식사가 무료이고 점심은 3000원이라고 한다.

둘째, 청년일자리 창출에 올인이다. 최악의 청년실업으로 ‘3포세대’(일, 연애, 결혼 포기)에게 ‘일과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셋째, 경제성장과 복지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미국은 ‘바이드노믹스’ 일본은 ‘스가 총리의 신경제성장전략’을 제시해 경제에 온기가 돌고 있다. 이를 통해 복지를 강화할 수 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클린(clean) 사회, 행복지수 1등 국가’를 비전으로 내걸고 도전하는 대선 후보를 만나고 싶다. 가장 행복한 국가에서 총리의 ‘무상조식 스캔들’을 주요 이슈로 보도하는 그런 나라를 대한민국이 넘어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