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엔진과 결별 … 도요타, 수소엔진 고집
2021-06-25 12:04:14 게재
일본 자동차업계, 탄소중립 압박에 각기 다른 길 … 도요타 “엔진 사라지면 100만명 실직”
지난 4월 23일 혼다 자동차 신임 미베 토시히로 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엔진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미베 사장은 “앞으로 5년간 총 5조엔을 투자해 전기차(EV)전용공장을 신설하고 2020년대 후반에는 독자적인 차세대 전지의 실용화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혼다는 이를 통해 ‘탈엔진’의 전 단계로 2035년 EV와 연료전지차(FCV) 판매비율을 자사 판매량의 8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혼다의 다걸기 전략, 도요타의 중립성
일본 언론은 탄소중립을 위한 미래자동차 개발 경쟁에서 도요타와 혼다가 보여주는 상반된 길에 주목했다. 산케이신문은 최근 “도요타는 수소로 활로를 모색하고, 혼다는 엔진과 결별했다”며 “일본 자동차업체가 엔진을 버릴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세계적 조류와 일본의 에너지 상황을 고려한 완성차업체의 판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고 분석했다.
두 자동차 회사의 전략은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이냐 ‘불투명한 시장전망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냐의 차이로 집약된다는 분석이다. 우선 혼다는 올해 8월까지 기존 FCV 차량인 ‘클래디티’의 생산 중단을 선언하면서 수소차 개발 경쟁에서 일단 발을 빼는 분위기다. 혼다는 대신 EV 차량에 집중할 태세다. 혼다는 오는 2024년까지 순차적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내에서 다양한 제품군의 EV차량을 선보이고, 2030년까지 중국과 미국(40%), 일본(20%)에서 EV 판매비중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혼다는 도요타가 F1대회에 참가한 것과 대조적으로 그동안 지원했던 모든 자동차경주에서 전면 철수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이달 11일 전세계 생산공장에서 CO₂ 배출량을 사실상 제로로 하는 시기를 당초 2050년에서 2035년으로 15년 앞당기겠다고 선언하면서 가솔린자동차의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이른바 ‘풀라인업’으로 불리는, 사실상 모든 종류의 친환경차를 계속 만들고 판매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특히 기존 가솔린엔진과 영원히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수소를 연료로 하는 새로운 수소엔진차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경주대회에 참가한 그 모델이다. 아직 상품화단계는 아니지만 기술력에서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다.
경주에 참가한 일본 F1레이서 고바야시 가무이 선수는 “엔진의 반응성과 승차감은 가솔린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전체적으로 다소 무겁다는 느낌이었는데 중량을 좀더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 사내 모터스포츠 차량의 개발을 도맡아 온 ‘GAZOO Racing’의 사토 코지 대표는 “기술적인 우려는 비정상적인 연소를 어떻게 제어하는가였다”며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는 가운데 어느정도 예상했던 범위내에서 제어가 가능해 기술적인 불안정성을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정만기 회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두 자동차회사의 다른 선택은 결국 현재 양쪽이 처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봤다. 정 회장은 “일본은 하이브리드에 강해서 전기차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전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의 확산으로 불가피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혼다는 한마디로 다걸기 전략으로 미래자동차 시장의 주류가 어떤 에너지원으로 갈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다소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그러면서 도요타의 유연성 전략을 주목했다. 그는 “에너지원에서는 중립성과 개방성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한두 가지 기술만 고집해서는 시장의 판도 변화와 기술혁신에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요타나 현대차 등이 비교적 유연한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엔진차의 소리와 진동도 즐거움?
그렇다면 도요타는 왜 ‘엔진=반환경’ ‘전기모터=환경’으로 인식되는 미래자동차 경쟁 상황에서 굳이 엔진을 살리면서 가려고 할까. 자동차산업이 가지는 방대한 산업연관효과 및 고용창출 능력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도요타 자동차 대표이사인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엔진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일본에서만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550만명의 동료들 가운데 100만명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그러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싣고 수소엔진차 ‘코롤라’(도요타의 대표적 브랜드로 경주에 참여한 차에도 이 이름을 붙임)가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본 민방 NNN은 최근 도요타의 수소엔진차와 고용 문제를 다루는 방송을 내보냈다. 도쿄 근교 사이타마현 소재 안도나사제작소는 직원 100명 정도를 고용해 가솔린엔진용 나사를 만든다. 이 회사 구보타 켄지 전무는 NNN방송 인터뷰에서 “가솔린차에 3만점의 부품이 들어간다면 전기자동차엔 2만점의 부품이 들어간다”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직원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기존 가솔린엔진의 연료공급 및 분사체계 등을 수소용으로 변형해 탄소제로 자동차를 만들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가솔린엔진 기술과 노하우를 살리면서 여기서 형성된 부품공급망을 활용해 수많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의도다. 더구나 엔진자동차가 갖는 소음과 진동까지 살려 모터차가 구현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고객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노림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이러한 도요타의 대응은 필연적이라는 반응도 있다. 하이브리드 시장 최강자인 도요타는 내연기관과 단번에 결별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구조가 깨진다면 거미줄처럼 얽힌 부품업체와 협력업체의 기술과 노하우, 인력의 대변동을 불러오게 된다. 도요타가 일본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을 볼 때 불가능한 선택이다.
지난 4월 제임스 캐프너 도요타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사내 홍보지인 ‘도요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지금 자동차산업계는 탄소중립을 ‘어떤 전기자동차가 차세대의 중심이 될 것인가’라고 하는 단면적인 대립구조로 보고 있다”며 “EV의 보급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자동차를 곧 전기차로 바꿔나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정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요타는 자사에 강한 하이브리드를 지키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조치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리드에 내연기관이 들어가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도요타도 최근 1차 협력업체 800개 중 상당수 업체에 탄소중립으로 전환하라고 권고했다. 언제라도 EV로 갈 수 있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달 16일 아이치현 도요타시 본사에서 열린 도요타자동차 주주총회에서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기술개발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도 나왔다. 도요타가 기존 프리우스로 대표되는 하이브리드(HV)에서 EV, FCV는 물론 수소로 엔진을 돌리는 자동차까지 이른바 ‘풀라인업’ 전략을 펴는 것에 대해 선택과 집중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도요타임즈’에 따르면 이날 주총에서는 전방위적 기술개발과 관련, “투자액이 너무 방대하지 않은가”라든지 “전기차 개발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한두 가지로 집중해 미래자동차 개발경쟁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완성차업계의 벅찬 탄소제로 발걸음
일본 완성차업계는 스가정권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밀어붙이는 ‘2050 탄소제로’ 정책에 부응하면서도 속으로는 불만도 내비친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본에서 전기차로의 급속한 전환은 결국 전지에 들어가는 전력의 생산과정에서 막대한 CO₂를 발생시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불복’이라는 논리다.
일본자동차신문은 “전기차에 탑재하는 리튬이온 전지를 제조할 때 가솔린차의 2배에 달하는 대량의 탄소가 배출된다”면서 “원료의 채굴부터 제조 운반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의 CO₂배출량을 평가하는 ‘전과정평가’(LCA) 정책을 세계 각국이 본격적으로 도입할 태세여서 향후 완성차업체는 물론 부품업체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자동차에 사용되는 재료에서 높은 비중을 점하는 강판 등의 금속재료는 자동차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장애다. 강판업계가 일본 전체 CO₂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로, 제조업(40%) 전체와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이기도 한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자동차업계는 2001년 2억3000만톤이던 CO₂ 배출량을 2018년 1억8000만톤으로 22% 감소시켰다. 평균연비도 2001년 JC08모드로 13.2km였던 것이 2018년에는 같은 조건에서 22.6km로 71%나 향상시켰다”면서 “(탄소제로 관련) 획기적인 기술로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은 아직 불확실해 보인다.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 예상되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요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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