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운하 막힌 엿새, 무슨 일 있었나

2021-07-05 12:03:29 게재

블룸버그 BW가 전한 ‘에버기븐호 사태’ 내막 I

올해 3월 23일(현지시각) 수에즈운하에 좌초된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사건 발생 엿새 만에 예인선에 인도되는 장면이 미국 우주기술업체 ‘맥사테크놀로지’의 위성사진에 잡혔다. 사진 AFP=연합뉴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의 선장 크리슈난 칸타벨은 올해 3월 23일(현지시 각) 연무가 낀 홍해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걸 지켜봤다. 시속 65km가 넘는 바람이 불어 이집트 사막의 먼지모래를 흩날렸다. 하늘은 노란색으로 흐려졌다. 함교에 선 그의 시선에 수에즈만에 정박된 19척 배들의 흐릿한 윤곽이 잡혔다. 이 배들은 지중해를 향해 내륙으로 이어진 협소한 운하를 들어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칸타벨이 지휘하는 에버기븐호는 수에즈운하 북쪽을 향해 진입할 13번째 배였다. 에버기븐호는 대기중인 선단 중 가장 큰 배였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가장 가치가 높은 배이기도 했다. 동이 트고 얼마 안돼 에버기븐호를 지도할 도선사들을 태운 작은 보트가 다가왔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데엔 보통 12시간이 걸린다. 수에즈운하 항해는 때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다.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방법보다 약 3주를 절약할 수 있는 최단로이지만, 수에즈운하의 폭은 협소하다. 폭 200m, 깊이 24m 정도다.

반면 현대식 선박은 육중하다. 계속 커지고 있다. 에버기븐호는 이물에서 고물까지 400m 길이다.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높이와 비슷하다. 폭은 60m로 맨해튼 시가의 한 구획만큼 넓다. 말레이시아를 출발해 네덜란드에 도착할 에버기븐호엔 약 1만7600개의 컨테이너가 실려 있었다. 선박 바닥의 중앙을 받치는 길고 큰 재목인 용골은 운하 바닥과 수미터 차이밖에 안났다. 실수를 용납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두명의 이집트 도선사들은 에버기븐호에 승선해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등을 만나러 함교에 올랐다. 이 배의 선장 이하 모든 선원은 인도인이었다. 이집트법원에 제출된 문서에 따르면 이 만남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악천후 때문에 수에즈운하에 진입할 수 있는지를 놓고서다. 이집트인이나 인도인 모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양측 논쟁에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이날의 폭풍우 때문에 최소 인근 4개 항구는 이미 폐쇄됐다. 하루 전날 카타르에서 천연가스를 싣고 출발한 한 수송선의 선장은 ‘돌풍이 너무 거세 수에즈운하를 안전하게 통과하기 어렵다’며 운항을 포기했다.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현대식 선박엔 항해데이터 기록장치(VDR)가 설치돼 있다. 주요 결정이 이뤄지는 함교에서 어떤 대화를 하는지 녹음하는 블랙박스 기기다. 이집트정부는 에버기븐호 함교에서 녹음된 전체 기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도선사와 선원들이 기상조건과 관련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출신의 베테랑 선원인 칸타벨 선장에게 가해지는 상업적 압박감은 컸다. 그의 배는 대략 10억달러 가치의 화물을 싣고 있었다. 이케아 가구와 나이키 신발, 레노보 노트북은 물론 미확인 인화성 액체를 실은 100개의 컨테이너 등이 실렸다.

화물뿐 아니다. 에버기븐호가 예정된 시일에 유럽에 도착해야 할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이 여럿 있었다. 일본 선사인 ‘쇼에이기센’, 그로부터 장기계약을 맺어 배를 임대운항하는 대만 ‘에버그린’, 상업용 선박에 선원들을 공급하고 관리감독하는 독일 ‘베른하르트 슐테 선박관리기업’ 등이 있었다. 예정기일에 하루만 지연돼도 수만달러 손해가 난다.

베테랑 선장들에 따르면 날씨가 안 좋아도 수에즈운하를 운항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은 “운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네 자리를 대신할 거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현대식 선박은 레이더와 전자감지기를 갖추고 있다. 시계제로 상황에서도 수에즈운하를 기술적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그리고 전직 동료들에 따르면 칸타벨 선장은 차분하고 자신감 넘치는 고급선원이었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풍부한 경험을 갖췄다.

함교에 선 칸타벨 선장은 약 800m 앞을 내다볼 수 있었다. 북쪽으로 향하는 다른 배들은 수에즈운하 어귀에 세워진 높은 크레인들을 속속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칸타벨 선장은 항해를 포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로를 관리하는 이집트당국의 승인이 났고, 많은 이들이 운하를 건너기를 바랐다. 그는 결국 항해를 결정했다.

이집트 선임 도선사는 잡음이 쉴새없이 나오는 무전기에 귀를 대고 아랍어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서 함교 선원들에게 배를 직진방향으로 몰라고 지시했다. 항구 주변 점점이 흩어진 마을을 지나자 불모의 사막이 펼쳐졌다. 에버기븐호는 ‘이집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대형광고판을 지나쳤다.

도선사들은 ‘수에즈운하관리청’(SCA)에 소속돼 있다. SCA는 이집트정부가 1956년 운하 통제권을 되찾으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해군장교 출신인 도선사들은 직접 배를 조종하지 않는다. 이들의 임무는 선장과 조타수 등에게 지시를 내리는 일이다. 운하를 이동하는 다른 선단, SCA 통제실과 교신을 하면서 배들이 운하를 안전하게 통과하도록 돕는다. 대개 그 임무는 목표한 대로 안전하게 수행된다.

그러나 일부 선박들에겐 SCA와의 만남이 스트레스의 원인일 수 있다. 선장은 기술적으로 선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지만, 제복을 입은 낯선 도선사들에게 상당한 통제권을 넘겨준다. 도선사마다 전문성과 경쟁력이 각기 다르다. 또 SCA 전기기사와 정박전문가, 보건검사관 등도 함께 승선한다. 이들 각각은 서류작업과 음식, 공간, 지휘감독권을 요구한다. 때로 담배 등 금품을 원한다. 2015년 해상부패를 추방하자며 한 시민단체가 ‘세이 노’(Say No)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선사들이 도선사에게 그 어떤 것도 건네지 말자고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SCA는 과거 금품요구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에버기븐호의 조타수 크리스 길라드는 2008~2019년 덴마크 컨테이너선사인 AP묄러-머스크에서 고급선원으로 일했다. 당시 그는 한달에 한번씩 수에즈운하를 통과했다. 도선사 문제, 항해의 어려움 등 때문에 수에즈운하 운항이 두려워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수에즈운하를 지나가느니 대장내시경을 받겠다”고 말한 바 있다. 몇년 전부터 상황은 개선됐지만, 근본 원인이 제거된 건 아닐 수 있다.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 진입하고 몇마일 지나 갑작스런 돌풍에 배 선체가 우현으로 홱 비틀어졌다가 본래 상태로 돌아왔다. 뭉툭한 배의 선체가 거대한 돛으로 기능했다.

이집트법원에 제출된 증거에 따르면 SCA 선임 도선사는 길라드에게 고함을 치며 ‘힘껏 우측으로 배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에버기븐호의 거대한 선체는 조타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배가 반응하기 시작할 땐 상황이 달라졌다. 선임 도선사는 다시 ‘왼쪽으로 배를 돌리라’고 고함쳤다. 이 지시에 다른 도선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둘은 논쟁하기 시작했다. 정황상 아랍어로 욕설을 주고받았을 수 있다. SCA는 도선사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고, 이후 “이들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선임 도선사는 ‘전속력 앞으로’라며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에버기븐호의 속도가 13노트(시속 15마일)에 달했다. SCA가 권고하는 속도제한 8노트를 훨씬 초과한 것이었다. 다른 도선사가 이 지시를 취소하려고 했다. 그러자 도선사 둘은 고함을 치며 성난 언사들을 주고받았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에 따르면 이 시점에 칸타벨 선장이 개입했다. 그러자 선임 도선사는 ‘배에서 내리겠다’고 위협하며 이를 막았다.

속도를 높이면 돌풍에 맞닥뜨린 에버기븐호는 보다 안정적인 상황이 돼야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요소가 개입됐다. ‘베르누이 원리’다. 18세기 스위스 수학자의 이름을 딴 이 원리는 유체의 속도가 높아지면 압력은 낮아진다는 내용이다.

에버기븐호가 밀어내는 수십만톤의 수에즈운하 물은 선체와 인근 해변 사이 좁은 간격을 통과해야 했다. 배가 속도를 높여 물의 흐름이 빨라지자 그 간격의 압력은 줄어들었고, 결국 배는 제방 쪽으로 빨려들어갔다. 속도를 높일수록, 견인력은 커졌다. 길라드는 “일정 수준까지 속도를 높이면 효과가 있지만, 그 이후엔 역효과를 낸다”며 “어떤 수를 써도 배를 전방으로 몰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에버기븐호가 침몰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 순간을 담은 장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거대한 선체가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하는 마지막 몇초는 대형건물 붕괴의 슬로우모션처럼 끔찍하게 펼쳐졌다. 에버기븐호의 항해데이터 기록장치를 접한 한 취재원에 따르면, 칸데빌 선장은 이 순간 “제기랄”(Shit)이라고 외쳤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상업 요충지

유럽이나 북미에 사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수에즈운하를 통해 온 상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에즈운하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다. 수세기 전만 해도 양쪽을 오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수에즈운하가 존재하기 전 뱃사람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우회해 배를 몰아 해적과 거센 비바람과 맞서야 했다. 육로를 택한 이들은 산속의 강도나 불모의 사막을 넘는 용기를 가져야 했다.

수에즈지협을 건너는 직로의 개념은 19세기까지는 환상으로 배척됐다. 프랑스 와인 도매상이자 사회주의자인 앙팡탱(1796~1864년)은 동양이 여성의 본질을, 서양이 남성의 본질을 갖고 있다고 봤다. 그는 이집트, 특별히 수에즈를 동서양이라는 남녀가 합방하는 장소로 상상했다.

앙팡탱의 상상적 개념은 이집트 주재 프랑스 외교관 레셉스(1805~1894년)에 닿았다. 그는 '수에즈운하컴퍼니'라는 기업을 설립해 당시 이집트 왕 사이드 파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설득했다. 이집트정부가 지분 44%를, 프랑스 투자자들이 나머지 지분을 사들였다. 수만명의 이집트 소작농들이 처음엔 맨 손으로, 나중엔 유럽에서 수입한 기계로 수로를 뚫었다.

1869년 사막 120마일(약 193킬로미터)에 물길이 뚫리는 기적이 완공됐다. 곧 둘도 없이 중요한 상업적 동맥이 됐다. 특히 아시아에 제국을 확대하려는 유럽 열강들에 중요했다. 반면 이집트는 별다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운하 건설로 이집트 재정상황은 치명타를 입었다. 유럽 채권자들을 달래기 위해 이집트는 울며겨자먹기로 영국정부에 수에즈운하 지분을 팔아야 했다. 1882년 영국은 이집트 민족주의자들의 봉기를 구실 삼아 3만명이 넘는 군대를 파견했다. 이집트를 속국으로 만들어 수에즈운하를 접수했다. 수에즈는 유럽 열강들이 놓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됐다.

전후 이집트 내 제국 침략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1956년 이집트 정치인 가말 압델 나세르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의 지원을 얻어 수에즈운하를 되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중동을 재식민지화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밝힌 후였다. 그 이후 수에즈운하는 이집트가 통제하고 있다. 2015년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85억달러를 들여 수로를 확장했다. 폭과 깊이를 늘려 운항 시간을 단축했다. 당시 이집트 카이로 시내 전광판엔 '이집트가 전세계에 선사하는 선물'이라는 문구가 일제히 게시됐다.

오늘날 연간 1만9000여대의 배들이 10억톤 이상의 상품을 싣고 수에즈운하를 오간다. 초대형선박의 경우 통행료가 1000만달러에 달한다. SCA는 연간 약 50억달러의 수익을 올린다. 이집트정부는 해상무역에서 수에즈운하가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사고

올해 3월 23일 아침, SCA 소속 모하메드 엘사예드 핫사닌 선장은 이집트 이스마일리아 소재 SCA 본부 통제타워에서 막 교대근무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통제타워는 당시 에버기븐호 위치에서 북쪽으로 약 50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도선사들이 무전으로 '북쪽으로 향하는 선단 13번 배가 좌초됐다'고 알렸다. 엘사예드 손장은 현장 CCTV와 연결된 지휘소 모니터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통제타워에서 근무하는 그 누구도 이같은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선박은 수로를 가로질러 비스듬하게 쳐박혔다. 카메라를 확대하니 에버기븐호 함교에 망연자실 서 있는 칸타벨 선장의 모습이 보였다.

해군 대령 출신인 엘사예드 선장은 하루 4개 선단을 감독한다. 수에즈운하를 남하하는 두 개 선단, 북상하는 두 개 선단이다. 그의 임무는 선박 항해 편성이다. 수에즈운하 절반 이상의 구간은 폭이 좁아 대형선박들이 안전하게 교행할 수 없다. 북상 또는 남하하는 선단은 곳곳에서 반대편 선단의 배들이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엘사예드는 한 인터뷰에서 "에버기븐호는 수에즈운하 최악의 장소에서 좌초됐다"고 말했다. 사고지점은 편도 통행만 가능한 곳이었다. 그는 직접 현장에 가기로 결정했다. 차를 타고 이동한 뒤 소형 보트를 타고 에버기븐호에 다가갔다. 대형선박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에버기븐호의 규모는 놀랄 만했다. 엘사예드는 오팔색 수로에 떠오른 철산(鐵山)을 연상했다고 한다. 흘수선(선체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 아래 볼록한 뱃머리는 바위와 거친 모래 속에 단검처럼 깊숙이 파묻혔다. 어쩐 일인지 배 끝도 좌초됐다. 반대편 제방에 쳐박혀 45도 각도로 해안 쪽으로 기울었다. 어떤 배도 통과할 수 없었다. 뱃머리쪽이 선미에 비해 약 6미터 높았다. 컨테이너선은 스스로 설 수 없게 설계됐다. 에버기븐호의 중량 배분은 이미 무너졌다. 수미터의 해수가 선체의 중앙 부분을 지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엘사예드는 배가 곧 두 동강 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다.

두 대의 SCA 예인선이 현장에 있었다. 잠수부들은 선체 파손을 점검하고 있었다. 엘사예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 함교에 있는 칸타벨 선장을 만났다. 그는 겁을 잔뜩 먹었다. 엘사예드는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야. 인샬라(알라신의 뜻이라면)"라면서 그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칸타벨에게 에버기븐호의 선체 중량과 화물 중량, 밸러스트 탱크 물의 양 등에 대해 물었다. 짐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면 추가적인 부력을 통해 배를 제방에서 띄우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엘사예드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톤당 부양력 비율은 1센티미터당 201톤이었다. 에버기븐호를 1미터 들어올리려면 약 2만톤의 화물을 제거해야 했다. SCA가 지면에서 50미터 이상 높이에 적재된 컨테이너를 옮길 만큼 큰 크레인을 동원한다고 해도 이는 매우 엄청난 작업이었다. 두 대의 예인선이 에버기븐호에 줄을 연결해 물로 끌어내려 애썼다. 예인선의 엔진이 최대치로 돌면서 수로에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하지만 에버기븐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엘사예드와 SCA 오사마 라비 청장은 즉석에서 계획을 짰다. 12시간 교대로 굴착기와 예인선을 번갈아 동원하는 방법이었다. 썰물 땐 굴착기가 해안에서 선미와 뱃머리 주변의 바위모래를 제거하고, 밀물 땐 예인선이 최대한의 마력을 동원해 배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엘사예드는 두 대의 SCA 준설선을 추가로 동원했다.

작업에 나선 첫번째 주자는 노란색 굴착기였다. 인근에서 일하는 SCA 하청업체가 보낸 것이었다. 굴착기 운전사는 조심스레 뱃머리에 접근해 주변의 돌들을 파내기 시작했다. 이 운전사는 이후 인사이더지와의 인터뷰에서 "거대한 선체가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렸다"고 말했다. 에버기븐호와 굴착기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1대의 굴착기가 홀로 땅을 파내는 사진이 전세계에 급속히 퍼졌다.

에버기븐 함교에 있던 2명의 SCA 도선사들은 사고의 자초지종을 엘사예드에게 전달한 후 하선할 준비를 했다. SCA가 부인하는 법정 증거에 따르면 이들이 배에서 내리면서도 계속 다퉜다. 선임 도선사가 "이 배는 아예 수로에 진입하면 안됐어"라고 말하자 동료 도선사는 "그러면 왜 진입을 승인했는가" 반박했다.

순식간에 마비된 공급망

AP묄러-머스크 자회사 'APM터미널'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케이스 스벤젠은 차를 몰고 출근하다 수에즈운하 사고 소식을 들었다. APM터미널은 네덜란드 소재 컨테이터항구 운영기업이다. 그가 전화로 들은 사고소식에 별다른 세부내용은 없었다. 모기업 머스크와 자회사 APM터미널은 추가적인 정보를 찾으려 분주히 움직였다.

에버그린과 같은 선박 대기업들이 해상무역을 하기 위해선 육지와 해상을 연계하는 APM터미널 같은 기업이 필요하다. 이 기업은 미국 LA와 인도 뭄바이, 스웨덴 예테보리 등 전세계 약 70개 항구에서 짐을 싣고 부리는 선박들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간 처리하는 선박 수만 3만2000척에 달한다. APM터미널은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 들렀던 말레이시아 탄중 펠레파스 항구를 공동소유한 기업이기도 하다.

덴마크 출신 스벤젠은 크게 걱정하기 않기로 했다. 수에즈운하 사고는 흔했고, 대개 몇시간 내 해결됐다. 30년 동안 뱃사람으로 10년 동안 선박관련 기업 임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여러차례 위기일발 순간을 겪었다. 그중 몇몇 사건은 수에즈운하에서 일어났다. 그 사고들은 대개 저절로 해결됐다.

"수에즈운하 좌초, ‘적기공급생산’ 위협" 으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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