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술기업 규제, 미국 모델과의 결별

2021-07-28 13:16:07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실리콘밸리 모방하던 중국, 이젠 자신만의 방식 개척중"

쿠바 아래 위치한 영국령 케이맨제도의 가장 큰 섬인 그랜드 케이맨엔 중국 차량공유 기업 '디디추싱 글로벌'의 역외지점이 있다. 몇 건물 건너엔 중국 인터넷기업 '바이두'와 '메이투안' '알리바바' 지점이 등록돼 있다.

이곳들은 모두 우편주소만 빌린 페이퍼컴퍼니다. 아무런 영업가치가 없다. 하지만 중국 유니콘기업들이 유럽과 미국의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활용되는 곳이다. 케이맨제도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로, 이곳에 적을 둔 중국기업들은 공산당이 용인한 자유분방한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중국정부는 그 대가로 자국기업들에게 미국의 거대기업들과 경쟁하도록 했다.


디디추싱은 케이맨제도에서의 존재감이 필요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 기업공개(IPO)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시장에 접근하면서 다양한 혜택을 주시했다. 디디추싱이 2017년 캘리포니아주에 연구개발 캠퍼스를 열었을 때, 이 기업 창업자이자 CEO인 청웨이는 "우리는 새로운 고향에 왔다. 전세계 가장 위대한 기술기업들과 함께 있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중국 기술기업들은 그처럼 위대한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지난해 10월 경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알리바바 공동창업자 마윈이 중국 규제당국을 지목해 '혁신을 목조른다'고 비판하면서다. 이에 대해 시진핑정부는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상장을 금지했다. 그리고 알리바바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개시했다. 마윈은 한동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재산 역시 크게 줄었다.

그리고 이달 2일 디디추싱의 차례가 왔다.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44억달러를 얻은 지 이틀 뒤였다. 중국당국은 디디추싱에 대한 보안검사를 명령했다. 이어 중국 내 모바일스토어에서 디디추싱의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싱가포르 분교 교수인 마이클 위트는 "매우 성공한 기술기업이라고 해서 공산당 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의미"라며 "앤트그룹과 마윈은 지난해 말 이를 통렬히 깨달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디디추싱은 그 메시지를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중국정부는 온라인 교육산업에 대해 전면적인 새로운 규제안을 마련했다. 중국당국은 온라인 교육산업이 자본에 납치됐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온라인 식음료 플랫폼들에 대해 '노동자들이 최소한 지역 기준 최저임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이 조치로 배달 관련 스타트업 메이투안의 주가가 하락했다. 이 기업은 이미 독점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알리바바와 디디추싱, 메이투안은 차례대로 각각의 성명서를 통해 '중국당국에 협력할 것이고 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기술기업에 대한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은 더 강력한 감시와 규제가 가해지는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시사한다. 케이맨제도에 적을 둔다고 해서, 캘리포니아에서 인재를 구한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이제 전세계 1, 2위 경제대국들은 각기 다른 경로를 밟아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양국 모두 민간 기술기업들이 축적해가는 거대한 파워가 더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과 강도에서 결이 달라진다. 대개의 전문가들은 중국당국의 독재적인 기조가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중국이 지정학적 경쟁국인 미국에 앞설 경쟁력을 얻을 기회로 보는 측도 있다. 상하이 소재 벤처자본투자기업인 '고비파트너스'의 공동창업자인 토마스 차오는 "중국은 거대 기술기업들의 거대한 권력에 한계를 설정하는 일에 앞서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 중국은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기술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를 적극적으로 모방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자본은 물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중국 기업가 세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국은 이베이와 아마존의 중국 버전으로 알리바바를, AOL과 페이스북의 중국 버전으로 텐센트를, 구글의 중국 버전으로 바이두를 적극적으로 밀었다. 중국정부는 자국 기술기업들에 관대한 접근법을 취했다. 그리고 미국 경쟁기업들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중국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이용불가능했던 서비스를 복제해 내수시장에 풀었고, 막대한 성공을 일궜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선 뒤엔 실리콘밸리 경쟁기업의 단순 카피캣이 되는 것을 멈췄다. 이제는 오히려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기도 한다. 이른바 슈퍼앱으로 불리는 텐센트의 위챗이나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는 주문형 수송부터 음식배달, 공과금 납부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더 처리해주는 척척박사다. 미국에선 그에 필적할 만한 앱이 없을 정도다. 오히려 애플과 페이스북 스냅챗이 중국 슈퍼앱의 주요 특징을 베끼려 안달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규제가 미약한 상황에서 점차 강력한 기술기업과 CEO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상당한 독립성을 보장받아 활동하면서 기업의 커진 힘을 휘두르는 데 거침이 없었다. 중국 최대 기술기업들은 주기적으로 중소규모 기업들을 플랫폼에 통합시키거나 회사를 매도하라고 강제했다. 마윈을 비롯한 거대기업 CEO들은 문화적 록스타가 됐다. 마윈은 알리바바 주최 행사 때 록스타와 같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북미 원주민인 모호크족 가발을 쓰고 가죽재킷을 입고 기타를 멨다. 그리고 사회적 문제에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서는 알리바바와 디디추싱 등 기술기업들에 대한 제재가 진즉 일어났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2000년대 구글의 중국 모바일 전략을 진두지휘했고 지금은 베이징 소재 소셜미디어 스타트업인 '아시안이노베이션스그룹' CEO인 앤디 톈은 "중국당국의 조치는 혁신에 긍정적이다. 중국 내 경쟁은 미국에서보다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중소 규모 기업들이 거대 경쟁자들을 제어하는 당국의 정책으로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콩대 중국법센터 센터장이자 '중국 반독점 예외주의'의 저자인 안젤라 장은 "중국당국의 개입은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기술산업을 재편시킬 것"이라며 "중국 반독점 당국은 알리바바에 대한 규제를 단 4개월 만에 완성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었다면 페이스북이나 구글 아마존 등 기술기업을 제재하는 데 수년이 걸렸을 것이다. 이들 기업은 이를 악물고 정부정책에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레터 '중국특색'(Chinese Characteristics)의 창업자이자 발행인인 릴리안 리는 중국 내 기술기업을 둘러싼 혼란을 역학관계의 재균형, 경계의 재설정으로 본다. 그는 "중국정부가 거대 기술기업을 파괴하려고 생각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 동안 기술기업들이 무슨 일을 해도 된다는 태도를 가졌던 중국정부가 이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르쳐주려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실리콘밸리 모델을 버리는 게 사실이라면 대체모델은 무엇일까. 중국 안팎의 전문가들은 창업자 중심에서 벗어난, 보다 중국 중심적인 기업일 것으로 본다. 미국정부의 반독점 조치는 소비자보호 강화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반면 중국정부의 조치는 궁극적으로 정부정책을 보호하는 것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알리시아 가르시아-헤레로는 "중국 이동통신 네트워크 시장을 장악한 화웨이나 ZTE 어느 곳도 현재까지 중국당국의 타깃에 오른 바 없다"며 "이는 중국당국과 긴밀한 연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지도부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시키는 게 중국시장 사업에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시진핑정부의 우선순위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이다. 시진핑 주석은 기술산업계가 축적한 데이터를 '필수적이고 전략적인 자원'이라 칭한다. 수년 동안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2015년 지침에 따라 구이양에서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각 도시들은 잇따라 데이터거래소를 설립했다. 기업 간 익명화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다. 블룸버그는 "이는 디지털공공인프라로 기능하는 국영 데이터공유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정부가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손에 쥘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데이터 통제권을 놓고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일 수도 있다. 중국기업 연구 권위자인 하버드대 교수 윌리엄 커비는 "미국은 회계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중국 기업들의 상장을 폐지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중국이 지키고자 하는 데이터를 미국에 넘겨줘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중국정부는 자국기업이 미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더 까다롭게 만들 수 있다고 시사했다. 커비 교수는 "현재 상황은 미중 양국 모두 손해보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이어져 중국 기술기업들의 확장이 어려워지면, 그 수혜자는 미국 기술기업이 될 수 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기술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현실화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지배적인 기술기업들은 미래의 잠재적 경쟁기업들을 샅샅이 인수하면서 몸집을 더 불릴 수 있다. 물론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 내 혁신을 고사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한편 중국이 기술기업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데 따른 비용은 미래의 기업 리더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 중국 내 스타트업 리더들은 디디추싱과 알리바바 창업자를 우러러보며 자랐다. 이들은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을 보며 향후 자신의 앞날을 우려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소재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블룸버그에 "위험하다 싶은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공산당 정책을 보다 존중해야 한다. 몸집이 지나치게 커져서도 안된다. 정부의 주목을 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수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한 또 다른 창업자는 "정부의 규제를 의식해 몸집을 키우지 않겠다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내 기업이 너무 커져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면 놀랄 만한 일일 것이다. 내가 성공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차세대 마윈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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