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술규제 로드맵, 독일형 모델 따른다
블룸버그 "반독점, 사교육에 독일 모방 … 거대기술기업보다 중소제조업체 우선"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쑤저우증권 선임 전략가 첸 리는 최근 프레젠테이션에서 "중국은 기업규제와 관련해 미국 방식에서 독일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분석은 중국 소셜미디어에 널리 공유됐다.
DBS그룹홀딩스 수석 중국이코노미스트 크리스 렁은 최근 투자보고서에서 "독일식 기업 규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중국에 매력적인 대안"이라며 "독일은 굵직한 국영은행들, 강력한 제조업수출 부문을 갖고 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후 금융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렁은 "중국이 앵글로-색슨모델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며 "중국이 눈여겨보는 독일식 모델은 경제개발모델을 이끄는 강력한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중국과 독일의 유사성을 엿보는 건 제한적이다. 하지만 최소 3가지 영역에서 양국이 수렴하고 있다. 반독점 규정과 서비스 대비 제조업 강조, 교육 접근법"이라고 지적했다.
반독점
중국은 기술과 부동산 부문을 지배하는 거대기업들의 시장력을 제한하고자 노력한다. 최근 인터넷 서비스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반독점 규정을 고치고 있다. 중국 민간경제의 최대 성공스토리는 알리바바그룹과 텐센트홀딩스가 썼다. 하지만 지난해 시작된 중국 당국의 기술기업 규제로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 수천억달러가 사라졌다.
중국은 최근 거대 기술기업에 대한 규제를 지속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디지털경제와 관련해 새로운 기업개발모델을 마련하고자 강력한 규제를 시행한다는 것. 일부 경제학자들은 그같은 규제가 중국의 경제성장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말하지만, 독일은 소비자를 상대로 한 거대 기술기업 없이도 선진경제를 구축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네덜란드 국립종합대인 라이든대의 중국학 교수인 로저 크리머스는 "영미권에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기업들이 꼭 공공선에 기여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 규제가 적어야 사업모델이 성공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이 부분이 바로 중국이 독일모델을 따르고자 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독일 중도우파 기독민주동맹당(CDU) 산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아시아태평양발전 대표 페터 헤펠은 "중국은 반독점 규정을 제정하면서 독일 전문가들에게 지속적인 자문을 구했다"며 "중국은 독일법의 많은 항목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제조업 중시
중국은 산업기반을 잃지 않으면서 선진경제로 진입하길 원한다. 올해 3월 발표된 중국의 5개년 경제발전 계획은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선 어떤 목표도 담지 않았다. 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25%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수준을 유지해야 국가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독일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독일 제조업은 GDP에서 약 18%를 차지한다. 미국은 약 11%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중국기업·경제학 학장인 도리스 피셔는 "중국은 독일이 산업핵심 기반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대단히 존경한다. 독일은 제조업이 서비스산업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인식한다"고 말했다.
'중국제조2025' 계획은 기술 부문에서 국내 제조업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독일의 '인더스트리4.0' 계획에서 영감을 얻었다. 중국제조2025를 두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국이 반발하자 중국은 최근 그 계획에 대한 톤을 낮췄다. 하지만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가열되면서 중국의 제조업 업그레이드 야망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 자급자족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 중국정부 관계자들이 내놓는 발언들을 보면 중소규모 기업들을 거대 기술기업보다 더욱 우대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독일 경제의 중추가 중소규모 제조업체들, 이른바 '미텔슈탄트 기업'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독일 미텔슈탄트들은 중국 인수합병의 주요 목표물이기도 하다.
독일 에너지기업 'EEW에너지'의 CEO 베르나르트 켐퍼는 "중국 사람들은 독일경제의 기초가 상장 대기업이 아닌, 기술력을 갖춘 중소규모 기업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를 배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EEW에너지의 모기업 '웨이스트GmbH'는 2016년 중국기업에 인수됐다.
직업교육
중국은 지난달부터 영리를 목적으로 한 민간 사교육 기업들을 집중단속 중이다. 이 기업들은 학교 밖에서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암기교육을 시키는데, 정부의 단속으로 상당수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반면 전문대학교들이 실용적인 직업기술을 가르치는 직업교육 부문은 정부의 환대를 받고 있다. 중국 5개년 경제계획에서도 직업교육이 강조됐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4월 "사회주의 현대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기술전문교육이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HSBC홀딩스는 최근 투자보고서에서 "강력한 규제로 중국 교육부문에 급제동이 걸렸다"면서도 "중국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직업교육 부문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정부는 올해 공개한 직업교육법 초안에서 독일의 교육시스템을 언급하며 산학연계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독일 민간 기업들이 유급 인턴십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는 것 등이다.
독일 컨설팅업체 '지몬-쿠허&파트너스'의 CEO 헤르만 지몬은 "독일의 시스템을 대규모로 모방한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독일의 차이점
중국이 많은 부분에서 독일모델을 따르고자 하지만 피하고자 하는 지점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정부와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용인하지 않는다. 또 중국은 국가투자와 관련해 독일보다 높은 비율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수출보다 내수를 키우길 원한다. 중국정부의 반독점규제는 주로 민간부문에 집중돼 있다. 반면 철강과 철도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영기업들은 오히려 장려된다.
독일의 중국 전문 싱크탱크인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MERICS)의 중국경제 애널리스트인 야코프 군터는 "자유시장 방식은 경제의 절반 정도에서만 허용된다. 나머지 절반의 경제에선 정부가 지원하는 국영기업들이 활동한다. 이는 독일과 다른 측면"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민간기업들이 지배하는 영역에선 독일로부터 배우기를 원한다. 하지만 다른 부문에선 소수의 국영기업들을 장려한다. 다루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