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교훈' 미국 없이 생존가능한 나라
2021-08-25 11:20:46 게재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실패 지적 … 전작권 전환의 필요성 더욱 커져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대국민연설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더 빨리 벌어졌다"며 오판을 인정했고,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18일 브리핑에서 "11일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을 접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철수과정이다. 고가의 무기를 비롯한 각종 장비는 물론이고, 인력조차 제대로 철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허둥지둥 카불공항을 떠나는 미국(미군)의 모습에서 그동안 자랑해 온 위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프간 전쟁의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미군의 철수과정은 세계 여러 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책임 전가하는 미국, 불안한 동맹들
미국 내에서도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바이든 외교안보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며 공세를 펼쳤다. 바이든행정부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붕괴 책임을 아프간 정부와 지도층에 돌렸다. 특히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해외 도피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블링컨 장관은 22일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일주일 전(탈레반의 카불 입성 당시)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그 전날 가니 대통령과 통화했다. 그는 그때 '죽기로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그는 가버렸고, (아프간) 군대는 무너졌다"고 말했다.
미 정부 관료들의 가니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에게 졌다는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은 탈레반이 승리했고, 미국이 패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우산 밑에 있으면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붕괴된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통적인 동맹국 내부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노골적 위협을 받고 있는 대만은 자강론이 커지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지난 18일 최근 아프간의 정세변화를 언급하면서 "대만의 유일한 선택은 바로 자신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빠지면 어떻게 될까
아프간이 탈레반에 점령당한 지난 15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눈길을 끄는 공방이 벌어졌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마크 티센이 트위터에 "한국이 이런 종류의 지속적 공격을 받는다면 빠르게 붕괴할 것"이라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미국의 동맹은 사실상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후속 트윗을 통해 "북한군은 탈레반보다 앞선다. 요점은 한국이 미국 도움 없이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매년 수십억달러를 절약하고 군대를 철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인물이자 언론사 칼럼니스트인 티센의 주장은 적잖은 논란을 불렀다. 댓글 중에는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 등은 아프간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내용도 적지 않았지만 티센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페이스북에서 "조지 W 부시와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연설문을 총괄했다는 양반이니 북한과 한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대해서도 웬만큼은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명백한 사실관계를 외면하고 상대방에 함부로 말하는 건 험담이라고 하는데 세계 6위의 군사력과 10대 무역대국인 우리나라와 지금의 아프간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험담"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논란은 국내에서도 벌어졌다. 보수논객들은 탈레반에 의해 카불이 점령당하고, 미군이 패퇴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 역시 이런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논지를 펼쳤다.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재향군인회 등은 각각 성명을 내고 아프간의 교훈을 절대로 남의 일처럼 여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민의힘은 대변인과 원내대변인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아프간 사태를 반면교사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방은 국회로도 이어졌다. 23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후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카불공항의 참사, 탈레반의 아프간 무혈입성을 보며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매우 착잡하다"며 "많은 걱정을 하는 분들은 인천공항이 카불공항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서 우리의 안보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황당한 비교라고 본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같은 허약한 정부는 아니다"고 정면 반박했다.
앞서 20일 국방위에는 흥미로운 장면도 연출됐다. 서 욱 장관은 '아프간 사태는 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군이 떠나면서 지휘체계가 무너진 것 아니냐'는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예비역 해군제독인 이병록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은 "이념이나 진영논리를 떠나 북베트남이나 탈레반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서 "베트남은 강대국인 프랑스 미국 중국 군대와 싸워 이겼고,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인 영국 소련 미국을 물리쳤는데 남베트남이나 아프간 정부군은 미국식 전술과 미군 지원에 너무 의지하게 된 것이 약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최강 동맹국이 주둔하고 지원하고 있는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쟁의 근원부터 살펴야
국내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아프간 전쟁의 근본부터 잘못됐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8월 16일 영국 가디언지에 실린 사이먼 젠킨스의 칼럼이 대표적인 경우다. 젠킨스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젠킨스는 특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며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리스트 국가'였던 적도 없었고,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1996년에 탈레반이 러시아에 맞서며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퓰리처상 수상경력의 언론인이자 방송 진행자인 크리스 헷지가 쓴 '카불에서의 패배와 미국의 집단자살'이라는 칼럼은 마치 몇주 뒤 카불에 닥칠 상황을 미리 예견한 듯 생생하다.
7월 26일자 '쉬어포스트'(Scheerpost)와 8월 12일자 '인포메이션 클리어링 하우스'(Information Clearing House)에 공동으로 실린 그의 글의 핵심은 탈레반 세력의 귀환은 미 제국주의 종말의 또 하나의 신호탄이 될 것이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칼럼에서 "앞으로 몇 주간 전광석화와 같이 혼돈에 빠지고 탈레반의 귀환을 보장할 아프간정부의 와해는 미제국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탄"이라고 단언했다. 또 "쇠락기에 돌입한 여느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아프가니스탄의 몰락과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여러 국가들의 몰락에 대해 절대로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며 "종말에 도달한 제국은 그야말로 '집단자살 기계'나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헷지는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면서 역사학자 알프레드 맥코이의 '미국 세기의 그림자에서: 미국 세계 패권의 부상과 몰락' 일부를 인용하기도 했다. 그것은 "몰락하는 제국은 부당하게 권력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제국의 관점에서 비합리적인 초군사작전은 이미 진행 중인 몰락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거나 굴욕적인 패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쏟아 부은 천문학적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패배하고 굴욕적으로 카불을 떠나는 미국의 모습을 예견한 듯한 설명이다.
정치·이념적 분쟁 끝내야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는 세계분쟁정보(WoWW)를 제공한다. KIDA에 따르면 분쟁에는 5가지 성립 요건이 필요하다. △분쟁의 주체(당사자)의 존재 △중요 쟁점(동인) △대립 행위의 본격화 △대립 수단(무력)의 존재 △지속성이다.
이런 기준에 따라 2021년 8월에 업데이트된 현황에 따르면 세계 각지에 112건의 분쟁지역이 있고, 이 가운데 현재까지 분쟁이 진행 중인 곳이 66개나 된다.
또 분쟁의 종류에 따라 충돌분쟁 대립분쟁 잠재분쟁 종류분쟁으로 나누며, 이 가운데 충돌분쟁은 다시 분쟁의 강도에 따라 A(전면전), B(국지전), C(게릴라전), D(폭동, 테러급) 등급으로 구분한다.
이처럼 지구촌의 숱한 분쟁을 지켜보면서 평화를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국내 여론은 그게 아니다. 남북대결을 종식하려는 노력이나 주장이 이념의 잣대로 평가되고, 비난받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한미가 협의해 결정한 연합훈련의 규모와 강도에 대해서도 북한의 하명에 따라 결정했다고 주장할 정도다. 여기에 주한미군 문제까지 나오면 그 강도는 더욱 커진다. 이쯤 되면 무력충돌만 없을 뿐 우리사회는 이념적 정치적 분쟁국가와 다를 바 없다. 아프간 사태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 바로 이념적 정치적 분쟁을 이제는 종식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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