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돌아 '역선택 조항' 없던 일로 … 상처 뿐인 '룰 전쟁'
2021-09-06 11:26:24 게재
국민의힘 경선룰 놓고 '윤석열 대 반윤' 충돌 끝에 절충안
1차에 당원 20% '과거 룰' 반영 … 본경선, 경쟁력 조사로
'역선택 방지' 채택 안해 … "윤, 실리 조금 얻고 명분 잃어"
당을 파국 위기로 몰고갔던 '룰 전쟁'이 일단락됐지만 주자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패면서 충돌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특히 윤 후보는 선두권 주자임에도 룰 논란을 촉발한데다 관철에도 실패하면서 정치적 부담이 커진 모습이다.
◆윤 후보 일부 배려한 절충안 = 선관위는 5일 밤 늦게 절충안을 내놨다. 우선 윤 후보가 주장했던 '역선택 방지 조항'은 없던 일로 했다. 윤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이나 정권교체 반대층을 빼자는 주장을 폈다. 이들이 홍준표나 유승민 후보를 찍는 역선택을 통해 '경쟁력 약한 제1야당 후보'를 만들려한다는 주장이었다. 선관위는 윤 후보 주장을 놓고 2주일간 논란을 벌였지만 결국 '없던 일'로 했다.
대신 1차 컷오프에 당원 20%를 넣기로했다. 기존안은 여론조사 100%였다. 당원 비중을 20% 넣으면서 역선택 가능성을 그만큼 줄인 것이다.
사실 이같은 당원과 여론조사 비율을 통한 역선택 예방은 국민의힘 경선룰 역사를 돌이켜보면 금세 선택할 수 있었다. 내일신문 9월 1일자 2면('20년전에도 역선택 우려 … 여론조사 반영 비율로 보완')은 1992년 이후 국민의힘 경선룰 변천사를 보여주면서 과거에도 역선택 우려가 있었고 여론조사를 일정비율 이하로 묶어두는 방식으로 역선택 가능성을 줄였다고 보도했다. 이번 경선에선 1차 컷오프를 여론조사 100%로 치르기로한 게 역선택 우려를 자극한만큼 여론조사를 줄이고 대신 당원을 넣는게 국민의힘 경선룰 역사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윤 후보측은 당 경선룰 역사와 무관하게 역선택 방지 조항을 밀어붙였다가 결국 당원 비율을 조정하는 기존 방식으로 절충된 것이다.
선관위는 본경선에서는 '당원 50% 대 여론조사 50%' 비율을 유지하돼 여론조사 문항을 경쟁력에 비중을 두는 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기존에는 후보들을 나열해놓고 적합도를 물었다면 이번에는 '민주당 XXX 후보에 맞선 경쟁력'을 묻기로 한 것. 선관위는 1대1 가상대결을 통해 단순히 경쟁력을 측정할지 아니면 예시를 '민주당 XXX후보 대 윤석열' '민주당 XXX후보 대 홍준표' 식으로 나열해서 물을지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선관위 절충안은 윤 후보가 주장한 '역선택 방지 조항'은 만들지 않지만, 1차 컷오프에 당원을 20% 넣는 것을 통해 역선택 우려를 약간 더는 방식으로 윤 후보 편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본경선에서 경쟁력 조사를 하기로 한 것도 윤 후보에게 조금은 유리한 대목으로 읽힌다.
◆홍·유, 선관위 결정 수용 = 후보들은 선관위 절충안에 마뜩찮은 표정이지만 동의하고 나섰다.
유승민 후보는 이날 밤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은 선관위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홍준표 후보는 6일 오전 "또다른 불씨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선관위원 전원의 합의는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유 후보가 선관위 절충안을 수용하면서 경선룰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경선룰 논란을 촉발한 윤 후보는 약간의 실리는 얻었지만 명분을 잃는 전쟁을 벌였다는 평가다. 윤 후보는 선관위의 절충안이 본인에게 약간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소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력주자가 전례도 없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제기하면서 "명분이 없다" "자신 없어 보인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보수층에게 정권교체의 자신감을 보여줘야할 시기에 오히려 약한 모습만 노출한 것이다. '윤석열 대 반윤' 구도를 자초했다는 점도 부담이다. 룰 전쟁 막판에는 윤 후보 편이 아무도 없었다.
윤석열캠프가 "전략적 판단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캠프는 애당초 역선택 방지를 위한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이후 윤 후보에게 당 안팎의 부정적 반응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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