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업종·지역 중층협의체 구성해야

2021-09-07 11:48:11 게재

산업전환과 노사관계 변화

정일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업전환자문단장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상황을 반영해 미·중 간 패권전쟁이 글로벌 반도체전쟁으로 격화되는 것이 최근의 상징적 양상이다.

심각함을 알기에 누구나 그린·디지털 전환을 얘기하고 클린카를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간과되고 있다. 산업전환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위기발생 원인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자본주의 이래 증폭돼왔다는 근거자료는 차고 넘친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재벌 중심 체제로, 강자의 횡포와 불공정한 담합이 경제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원·하청 수직계열화 문제는 물론, 긴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대응에서도 재벌간 협업이 원활하지 못한 현실이다.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경제성장률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나온다.

2050탄소제로조차 너무 늦다고 얘기되는 문명사적 위기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정부가 내놓는 지원방안이나 종합플랜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 체제 강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기존 독점체제를 강화하고 첨단화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정부는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자세를 분명히 하고 전환에 임해야 한다. 특히 경제 주체들, 일하는 당사자들의 참여 속에서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만들어가야 한다.

시작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경험한 촛불조차 기업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현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몇년 전부터 직장갑질이 여론화된 것은 이런 상황의 한 단면이다. 강한 것을 누르고 약한 것을 돕는 것이 대전환의 기조가 돼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방안에 대해서는 해외 사례와 자료들이 많이 확보돼 있다. 부품업체들이 독자생존할 수 있도록 자체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관건이다. 지역에서 자율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체제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전환과정의 피해 기업·노동자·지역 대책, AI(인공지능) 등 신산업에 특히 젊은층의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것은 최소한이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하는 당사자의 권리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기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당사자가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다. 업종·지역 차원에서 중층적으로 협의체를 만들어 기획 단계부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또 추진과정에 계획과 실행의 어긋남을 보완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업장에서 일·학습 병행체제를 갖춰서 노동자들이 어떤 학습을 할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노동시간 단축과 추가고용 및 좋은 일자리로 이어져야 한다. 여력 있는 대기업보다는 중소사업장 지원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도하는 쪽은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지배구조는 10~20년 쌓여온 게 아니다.

인류사의 위기는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산업정책만 잘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싸움이었다. 이는 노사관계 변화와 맞물려 있다. 산업 대전환은 기업별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제대로 된 전환을 이루려면 노사관계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사가 의견접근을 해서 최소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현안인 산업전환과 틀이 될 노사관계의 변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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