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급증하는 한국판 레미제라블

2021-09-09 11:41:29 게재

한국판 레미제라블이 급증하는 경고가 요란하다. 통계청 가계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1분위, 418만여 가구)의 올해 2분기 월평균 소득은 96만6000원으로 1년 새 6.3% 감소했다. 반면에 이들이 2분기에 식료품에 지출한 금액은 24만4000원으로 1년 전보다 12% 늘었다. 1분위 가운데 올 2분기에 적자가구 비율(55.3%)은 1년 전보다 8.2%p 올랐다. 230만여 가구가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뜻이다.

긴급복지 신청도 급증했다. 2019년 17만413건에서 2020년 32만9106건으로 2배가량 늘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증가세도 가파르다. 6월 기준 수급자 수는 229만4890명으로 2019년 1월 176만93명과 비교하면 2년 반 새 53만명 넘게 증가했다.

슈바베지수, 엥겔지수 역대 최대

빈곤의 척도로 사용되는 슈바베지수와 엥겔지수도 역대 최대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슈바베지수는 2020년 11.9%로 역대 최고다. 1인 가구의 평균 슈바베 지수는 무려 19.5%에 달했다.

소비지출 중 주거비 비중을 나타내는 슈바베 지수가 25%가 되면 빈곤이다. 최근 소득이 하락하고 전·월세 가격은 급등해 슈바베지수가 25%를 넘는 가구가 속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민들이 거주하는 서울 연립·다세대 평균 전 월세 시세가 한 달 만에 약 30% 급등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거취약층 지원예산은 벌써 바닥이 났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지원금은 보증금 50만원, 이사비 20만원, 생필품 20만원에 불과하다.

소비 중 식품지출 비중인 엥겔지수도 큰 폭으로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가구당 월 평균 소비지출은 240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2.3% 감소했다. 일자리를 잃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늘어나 소비를 줄인 때문이다.

소비를 줄였지만 식품비 비중은 급격히 늘었다. 2020년 엥겔지수는 15.9%로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13.9%보다 크게 높다. 1분위 엥겔지수는 21.2%나 됐다.

빚 못 갚는 빈곤층도 급격히 늘었다. 신용도 낮은 서민들에게 빌려주는 미소금융 햇살론 등 정책금융 대출 중 올해 상반기에만 3000억원 가량이 부도났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64%가 급증한 것이다. 이중 최저신용자에게 대출해주는 '햇살론17'의 올 상반기 부도만 1209억원으로 지난해 한 해 수준을 넘었다. 개인파산 신청자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파산 신청자가 5만명을 넘어섰다.

5대 시중은행에서 중·소상공인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만기를 연장하거나 원리금 상환을 유예한 규모가 올 상반기에만 46조원 불어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실상 부도로 예상된다.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소상공인 금융지원의 부도도 지난 한해 14억5000여만원에서 올해 상반기만 212억원으로 14배가 넘었다.

4년 만에 빈민 고독사 1000여명 증가

궁핍한 생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지난달 서울 중랑구에서 50대가 사망한 상태로 다세대주택 안에서 발견됐다. 그는 장애인으로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코로나로 그를 찾던 복지사의 발길이 끊겼다.

서울 화곡동에서는 한 달 새 기초수급가정 2가구에서 4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서대문구 다세대주택에서 30대 장애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빈민 고독사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전국 무연고 사망자 수는 2880명으로 2016년 1830명 보다 무려 1000명(58.2%)이나 증가했다.

지난해 국민 20%만 소득이 증가하고, 80%는 감소했다. 정부에서 뉴딜 등 포스트코로나 대책을 연일 발표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빈곤층에 대한 새로운 딜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복지국가'를 내세운 문재인정부는 2022년도 예산에서 복지비 증가율을 8.5%로 낮췄다. 집권 후 매년 두 자리 증가율을 보였던 것과는 다르다. 코로나19 백신 예산(3조1530억원)을 빼면 증가율은 7.7%에 그친다.

정부는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국민 다섯 중 한명이상이 가난으로 고통 받고, 고독사가 늘어나는 사회.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급증하고,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나라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문진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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