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SK이노 물적분할 '반대'

2021-09-15 11:14:09 게재

핵심사업부 비상장화 '주주가치 훼손' … 대기업 자회사 '쪼개기 상장' 논란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 물적분할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핵심사업부의 비상장화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된다는 판단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이 해외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대기업 물적분할한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물적분할 후 재상장은 한국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지적이다.

◆SK이노, 배터리·석유개발사업 분할 계획 =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오는 16일 열리는 SK이노베이션의 임시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하고 "분할 계획의 취지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배터리 사업 등 핵심 사업 부문의 비상장화에 따른 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있어 반대를 결정했다"고 14일 밝혔다.

물적분할은 특별결의 사안으로 주총 참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해야 의결된다. 국민연금은 상반기 말 현재 SK이노베이션 지분을 8.05% 보유해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최대 주주는 33.4%를 보유한 SK㈜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3일 이사회에서 배터리 사업과 E&P(Exploration & Production, 석유개발) 사업을 분할하기로 했다. 회사는 다음달 1일부터 신설법인 'SK배터리 주식회사(가칭)'와 'SK이엔피 주식회사(가칭)'를 각각 공식 출범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분할 안건이 통과하면 SK이노베이션이 신설법인 지분 100%를 각각 갖게 되며 분할 대상 사업에 속하는 자산과 채무 등도 신설되는 회사로 각각 이전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에도 LG화학 배터리사업부 물적분할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LG화학 물적분할 사례와 같이 '모회사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고 보고 분할 안에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 내 핵심사업부가 물적분할에 따라 모회사 아래로 가게 되면 할인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오너리스크 최소화 … 소액주주에겐 손해 =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 후 재상장은 한국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사업 분사 후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한국의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며 "통계적으로 자회사 상장 후 모회사는 해당 사업 가치의 일정 부분만큼 시가총액 상실을 겪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진은 이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밀어붙이며, 이사회는 전혀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주주가 아닌 모든 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의 원칙이 무시되는 한국 자본시장의 현실이다. 최 연구원은 "주요 지주회사의 순자산가치 대비 평균 할인율은 61%에 달한다"며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 후 재상장의 경우, 상장 이후 지분 평가액의 65% 정도가 할인되어 모회사 기업가치에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지만 그룹 오너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물적분할 후 상장은 그룹 오너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기업 가치를 키우기 위한 목적이라는 대의,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기업가치와 주주가치가 따로 놀게 된다.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가 누리는 이익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고, 이를 보상하기 위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최 연구원은 "더 심각한 것은 일반주주가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주주총회 과정을 넘기기 위해, 투자자와 소통하는 IR 과정에서 신뢰할 수 없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한다"며 "최근 자회사 분할 및 상장 이슈에 노출된 한국조선해양, SK이노베이션, 카카오의 경영자와 이사진은 투자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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