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00개 기금 난립 … 27조원 과다 적립
집행률 절반 이하가 전체의 30% 수준
부풀린 예산, 과도한 인건비 등 도마에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국비가 지원되는 192개 기금을 분석한 결과, 전체 기금의 30% 정도는 절반도 집행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저조한 집행률에 의해 남아도는 적립금만 2조6000억엔(27조3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집행률이 50% 미만인 기금은 54건(28%)에 달하고, 이 가운데 34건은 집행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장기실업자 취업지원'을 위한 기금의 집행률은 전체 예산 379억엔 가운데 3.5%에 불과했다. '자발적 실업자 취업지원'을 위한 기금도 148억엔 가운데 9.3%의 집행률에 그쳤고, '동일본대지진 피해자의 자택재건지원'사업은 2423억엔 가운데 14.1%에 그쳤다. 전기자동차 충전설비 정비를 위한 지원사업도 1005억엔의 21.0%만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정부가 전기자동차의 빠른 보급을 위해 충전소 설치 등을 지원하는 기금은 애초에 설계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당초 10만기 가량의 충전설비 설치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이었지만 실제로는 3만기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본의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전기차 보급이 생각보다 느린 것도 문제다.
이 기금을 운영하는 일반 사단법인 관계자는 "사업자들 내에서 채산성에 대한 불안감을 처음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소관 부처인 경제산업성의 한 전직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전기차와 관련한 운영 비용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관련 충전소와 설비는 늘어나게 돼 있다"면서 "정책이 지나치게 보조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집행하지 않은 기금의 국고 회수도 미진하다는 분석이다. 이 기간중 집행이 완료되지 않아 남아도는 기금 2조6000억엔 가운데 국고로 반납한 금액은 1조8500억엔에 그치고, 나머지 7500억엔은 회수가 안된 상태다.
이처럼 기금운용이 방만한 것은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과정에서 소요예산을 크게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산 집행에 대한 감시가 느슨한 추경예산을 통해 만들어지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금운용의 세부적인 계획은 느슨한 가운데 정부 부처는 우선 자금을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예산을 배정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집행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재무성 관료 출신인 다나카 히데아키 메이지대학 교수는 "정책 효과의 사후검증이 거의 되지 않고 있다"면서 "새롭게 평가기준을 정해 우선 감독관청이 평가하고 관리감독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 문제도 낳고 있다. 일부 지원금은 실제로 현장에서 집행된 금액보다 이를 관리하는 인건비의 비중이 더 큰 경우도 있다. 국가의 기금을 운영하는 데서 관리비로 들어가는 비용은 전체의 10% 정도 수준이지만 10개 이상의 기금은 관리비가 2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기업의 자금 융통을 지원하는 한 기금의 경우 관리비가 40%를 넘기도 했다.
오키나와현 나하시의 상공회의소에 설치한 '중소기업의 차입금 변제유예 지원보조금'의 경우 2013년부터 2019년도까지 지급한 보조금 실적은 1억4000만엔인데, 이를 상담하는 데 필요한 인력의 인건비는 1억4400만엔이 들어갔다.
한편 일본의 각종 지원금 지급을 위한 기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 중소기업과 서민생활, 낙후산업 등의 지원을 위해 빠르게 늘어났다. 특히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음식 및 숙박업, 여행업 등을 중심으로 작은 기업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금이 급증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탈탄소 기술의 연구개발 등을 지원하기 위해 무려 2조엔(21조원) 규모의 새로운 기금을 만들기도 했다. 일본의 지난해 총 기금규모는 전년대비 8.5배 증가한 8조엔(84조원)을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