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에 다가서고

2021-09-27 11:41:12 게재

FT "미중 사이에 낀 사우디·UAE, 최대 국익 위한 균형외교 고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최신기사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외교담당 특임장관인 안와르 가르가쉬는 올해 초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방미에서 '미국과의 관계 강화와 우호관계 지속'을 머릿속에 그렸다. 하지만 미국 측의 초점은 달랐다. 미-UAE 외교회담의 상당 부분은 중국 문제에 할애됐다.

UAE는 오래 전부터 미국과 친밀한 중동 국가다. 미국 자산에 대거 투자하는가 하면 수백억달러를 들여 미국 무기를 구매한다. 또 소말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에서 미국의 군사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UAE와 중국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미-UAE 동맹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미국은 UAE가 화웨이의 5G 이동통신장비 등 중국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상황에 큰 우려를 표한다. 내년 1월 UN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입하는 UAE는 더욱 난감해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사안마다 대립할 경우 UAE는 말 그대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리스크를 져야 한다.


가르가쉬 장관의 방미에 동행했던 한 인사는 FT에 "UAE가 UN 무대에서 누구의 편에서 투표할지 등에 대해 미중 양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미국은 안보리 문제에 덧붙여 중국에 관련된 민감한 주제 전반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결국 매우 어려울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5G 이슈는 많은 국가들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UAE 등 걸프 국가들은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를 고심하고 있다. 20년 전 중국이 경제적 정치적 위력을 중동 전역에 확대하기 시작하면서다. 중국은 걸프지역 원유의 최대 구매국가다. 중동 국가들의 균형외교 시동은 '미국 정치권이 중동에서 발을 빼고 싶어한다'는 자체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 8월 미군이 아프간에서 혼란스럽게 퇴각한 이후 걸프 국가들의 인식은 더욱 굳어졌다.

UAE 두바이대 정치학 교수인 압둘할레크 압둘라는 "미국에 대한 걸프 국가들의 신뢰가 부족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현재 흐름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군사 전략 등 모든 사안에서 중국엔 더 가까이, 미국엔 더 멀리 떨어지자는 것이다. 미국이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걸프 국가 지도자들은 미국을 안보의 보증인으로, 미국은 그들을 믿음직한 글로벌 에너지 공급자로 대했다. 하지만 미국의 중동원유 수입은 지난 10여년 동안 크게 줄었다. 북미지역 셰일가스 호황의 결과였다. 반면 아시아 원유 수요는 급증했다. 중국-걸프 국가들의 경제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원유거래를 넘어서는 다방면의 관계가 심화됐다.

걸프 국가들의 젊고 야심찬 지도자들은 국가 현대화를 최우선의 과제로 인식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사업인 스마트시티의 경우 중국 기술과 인공지능이 필수적이다. 공격용 무인드론과 헬스케어, 신재생에너지 역시 중국 의존도가 높다.

미국의 한 고위급 외교관은 FT에 "중국 이슈로 미국과 UAE는 험악한 지경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그는 "UAE뿐 아니라 다른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도 중국 이슈 때문에 어긋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라는 입장이지만, UAE는 확고하게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말라'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화웨이 이슈

걸프 국가들은 역사적인 안보협력 관계, 미국채 등 미국 자산에 대한 막대한 투자, 수많은 아랍계 학생들의 미국유학 등을 거론하면서 '미국은 여전히 넘버원 동맹'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중동의 양대 경제강국이자 전통의 미국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외교적 시각을 넓히고자 한다. 이들 국가의 야심찬 지도자들은 외교관계의 다각화를 꾀한다. 때문에 동쪽을 쳐다보는 일이 잦다.

걸프 국가들은 이를 '실용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중국은 서구 국가들보다 더욱 저렴하고 이전이 용이한 기술을 제공한다. 중국 화웨이의 5G 기술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걸프 국가들에게 장비나 기술의 판매를 꺼리지 않는다. 게다가 정치적 조건을 내걸지도 않는다.

미국의 중동전문 싱크탱크인 '아라비아재단' 설립자 알리 시하비는 "중국과의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명백한 이유들이 있다"며 3가지를 거론했다. 첫째 중국은 기술을 이전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의회에서 각종 청문회 명목으로 거래를 괴롭히지 않는다. 둘째, 중국은 사우디의 최대 시장이다. 셋째, 중국은 사우디의 경쟁국인 이란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하비는 "중국은 사실 이란의 유일한 동맹이다. 따라서 사우디에게 중국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중국의 관계는 무르익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제시한 5000억달러 규모의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 '네옴'은 화웨이의 5G 장비를 선택했다. 미국이 단호히 반대했지만 사우디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화웨이는 이미 해외 최대 규모 소매점을 사우디에 건설중이다. 사우디와 중국의 무역은 2001년 40억달러에서 지난해 600억달러로 껑충 뛰었다. 그중 절반은 중국의 수입이다.

사우디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중국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며 "5G 기술의 경우 우리에겐 미국 것이냐 중국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가장 이용가능한 것을 선택하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서구와 다른 중국

사우디는 한때 공산주의에 대한 단호한 반대국가였다. 대만을 공식 지지한 국가이기도 했다. 중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때도 아랍세계에서는 한참 늦은 1990년이었다. 이마저도 사우디 지도자들이 미국에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80년대 중반 사우디는 이란에 대한 억제책으로 미국산 미사일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미국이 사우디의 요청을 거부했다. 사우디 파드 왕은 비밀리에 중국과 접촉해 탄도미사일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사우디 고위 관계자는 "이는 파드 왕이 미국에 '너희가 거부한다면 우리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최근 들어선 '공격형 무인드론을 공급해달라'는 걸프 국가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사우디와 UAE는 대신 중국에서 무인드론을 조달했다. 사우디 살만 왕과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중국은 걸프지역 최초로 사우디의 '킹 압둘라지즈 과학기술 시티'에 드론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UAE는 보호장비를 조달하려 전세계를 헤맸다. UAE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장으로 있는 국영기업 '그룹42'는 신속히 중국 기업 BGI와 합작벤처를 설립했다. 수도 아부다비에 코로나바이러스 실험실을 열어 백신 임상실험을 수행했다.

동시에 UAE의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아부다비 왕세제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은 심복 중 하나를 미국 산업재 기업인 하니웰에 보냈다. 한시가 급한 코로나19 보호장비를 공급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니웰은 미국 정부의 보호장비 수출 금지 조치로 UAE를 도울 수 없었다. 하니웰은 궁리 끝에 중국 소재 자회사에서 보호장비를 조달해 UAE에 보냈다. 중국 정부의 허가로 가능했다. 이 일을 계기로 UAE가 중국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의 CEO이자 UAE 중국관계 특별대표인 무바라크는 FT에 "국부펀드 2320억달러 중 1000억달러 이상을 미국 자산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제는 중국의 기술 부문과 헬스케어 부문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 한다"며 "그 분야는 중국이 놀랄 만한 성장궤적을 보여주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UAE의 또 다른 고위 관리는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가 미국과의 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우리는 신속히 일을 진행하고 싶다. 하지만 서구의 정부와 기업들은 때로 느리게 대응한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를 전략적인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UAE의 생각과 달리 미국은 중동에서의 중국 존재감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UAE에 F-35 전투기를 판매하는 것에 신중한 입장이다. 중국이 미국의 최신 전투기 기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중동을 관할하는 미국 중부사령관 케네스 F. 매켄지는 "러시아, 중국과의 경쟁은 태평양이나 발트해뿐 아니라 중동에서도 벌어진다. 중동은 중국이 진입해 세력을 확장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와 UAE는 최근 수년 동안 중국과의 관계를 증진하려 공식 조치를 밟아나갔다. 2016년 1월 중국은 처음으로 '아랍정책백서'를 냈다. 안보와 무역, 대테러 등 모든 것을 망라했다. 같은 달 사우디와 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를 맺는 데 합의했다. 정치와 문화, 안보 군사 등의 연대를 증진시키는 내용이다. 걸프 국가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탐구중이다. 사우디 무함마드 왕세자는 '중국-사우디 고위급 합동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는 '사우디 비전 2030' 계획을 중국 일대일로와 연계했다.

시진핑 주석이 아부다비를 방문했던 2018년, UAE와 중국 역시 경제교류와 기술이전, IT와 에너지에 초점을 맞춘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 합의엔 정치적, 군사적 측면도 있다. '다양한 군종과 무기, 병력과 기타 영역에서의 합동훈련 등 양국의 군은 실질적인 협력을 증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공개된 미 국방부의 '중국의 군사력' 보고서엔 '중국은 군사적 병참시설 입지 중 하나로 UAE를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부다비 자예드대학의 중국-중동 관계 전문가인 조너선 풀턴 교수는 "중국과의 연대는 걸프 지도자들에겐 상당히 좋은 위험회피(헤지) 수단"이라며 "걸프 지도자들은 중국을 통해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긴다. 동시에 중국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서구 국가들은 모든 사안을 인권 이슈 또는 정치적 이념과 연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확고하게 비개입적 외교정책을 추진한다.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으며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풀턴 교수는 "미국은 걸프 국가들과 중국의 관계 향방에 여전히 영향을 끼칠 능력이 있다. 하지만 양자의 관계 증진을 애초부터 막을 방법은 없다"며 "시장의 크기, 인구의 규모를 보면, 글로벌 경제적 중력의 중심은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라비아재단'의 알리 시하비는 "미국은 사우디에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한다. 이는 사우디를 계속 자극하고 있다"며 "중국이 사우디와 관련한 미국의 점심을 계속 빼앗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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