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주택정책, 근본부터 다시 짜야
극장·헬스장·학교·회사 기능 모두 집으로
1인가구·근무방식 변화, 주택기능 바꿔
최근 통계청은 서울시 1인가구 규모가 40%에 달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인가구 증가는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1인가구가 급증하며 그에 따라 주택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정부는 '인구 감소'를 상수로 두고 부동산 방정식을 세웠고 결과는 수요-공급의 극심한 왜곡으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향후 부동산 정책은 1인가구 맞춤형 소형주택 공급 위주로 짜면 되는 것일까.
코로나 이후 정부와 서울시 주택공급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1일 서울 종로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서울연구원 개원 29주년 기념 '위드코로나 시대, 서울의 도시전망' 세미나에 참가한 각계 전문가들은 도시공간의 재설계, 특히 주택공급 정책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인희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1인가구 증가라는 주택시장 근본적 변화를 읽지 못한 정부와 지자체가 소형 주택공급을 뒤늦게 강조하고 있지만 이 또한 주택정책 해법이 되지 못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집은 더이상 단순 주거공간이 아니게 됐다. 영화관, 홈트레이닝을 하는 헬스장, 문 닫은 학교를 대신할 교육공간,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 사무실 등 온갖 기능이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 기능을 수행하려면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주택시장에서 중대형 면적이 부상하고 교외나 도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는 타운하우스 등이 각광받는 이유다. 크기와 함께 기능의 다양화도 요구된다. 밥 해먹고 빨래 하는 공간, 가족이 모여앉아 TV를 보던 공간에서 컴퓨터로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아이들은 원격수업을 듣는 공간이 필요해지는 등 다기능 주택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김 연구위원은 "1가구 1주택, 소형 혹은 중대형 등 한가지 방향을 정해놓고 수립되는 기존 주택정책 설계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집의 역할, 1인가구 증가 등 사회구조 변화에 부응하는 다양한 주택을 수요에 기반해 공급하는 등 주택정책 근간이 다시 짜여져야 한다는 얘기다.
소유 중심 부동산 보유 형태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코로나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는 근무 환경은 물론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놨다. IT 기반 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요사이는 프로젝트형 근무, 모바일 근무가 보편화되고 있다. 오늘 동대문구에서 일하다가 다음달엔 구로디지털단지로 직장이 바뀔 수 있다. 자연히 집도 바뀔 수 있다. 재산·소유목적의 집과는 별개로 사는 곳이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셈이다. 공유 오피스, 가볍게 옮겨 다닐 수 있는 주거 공간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교통량 줄고 상가도 축소, 공간 대변화 = 코로나는 도시의 공간구조, 공간 활용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하루 2900만대에 달하던 서울시 일일 교통량은 2500만대까지 15% 이상 급감했다. 코로나로 성큼 다가온 비대면 시대, 기술의 진보는 도심 주차공간을 현격하게 줄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자율주행차가 아빠를 출근 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 뒤 아빠의 퇴근시간에 맞춰 다시 회사로 이동한다. 이론적으론 도심 내 혹은 회사건물 지하에 주차공간이 필요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유휴공간은 직장 내 어린이집, 직원 휴게공간 등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
온라인 쇼핑, 배달음식 천국 시대는 상업공간 축소로 이어진다. 오프라인 상점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상가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형태의 다기능 주택 혹은 복합 주거공간이 들어설 수도 있다.
도전적인 제안도 나온다. 아파트를 재건축해서 꼭 아파트만 짓는다는 생각을 바꾸자는 것이다. 남 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아파트를 아파트로만 재건축하는 건 주택을 주거 용도로만 보던 시절의 상상력"이라며 "생활 관점·도시공간 관점으로 발상을 전환하면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집 뿐 아니라 상업·주거·문화·여가 기능을 함께 짓는 '미니 신도시'로 만드는 방법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