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선수 없으니 모두가 한발 더 뛰었죠"

2021-11-03 11:15:59 게재

서울시청 여자축구 7년만에 최고성적

연습장 없어 경기 전 숙소 옥상서 훈련

새 감독·구단 운영개선 효과 맞물려

요즘 스포츠 TV를 보면 놀랍게 바뀐 점이 하나 있다. 배구 중계 일정을 소개할 때 남자 경기보다 여자 경기를 먼저 안내한다. 도쿄 올림픽에서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긴 여자 배구 인기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축구는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은 종목이지만 앞에 '여자'라는 글자가 붙으면 딴판이 된다. 지소연 선수 등이 유럽 W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 중이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반짝 관심이 집중되지만 그때 뿐이다.

2021년 WK리그에서 4위를 거둔 서울시청여자축구팀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막판에 연패만 안했더라면 = 서울시청 여자축구팀은 열악한 현실이 집약된 팀이다. 야구나 남자 축구에 비해 연고지 개념이 약한데다 공공이 운영하는 구단이라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위드코로나가 오면서 대부분 인기 종목이 유관중 경기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여자 축구는 예외다. 코로나 이전에도 시청 여자축구팀 경기 관중은 가족과 지인 등 수십명에 불과했다. 서울시 직장운동부가 안고 있는 어려움도 있다. 수십개 비인기 종목 팀을 한정된 예산으로 운영하다보니 특정 종목에 대한 집중 투자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마조네스(서울시청 여자축구팀 이름)'는 올해 이같은 어려움을 보란듯이 뚫었다. 예산 규모, 스타 선수 보유 등 이른바 구단 파워가 리그 최하위 수준임에도 4위라는 호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리그 최종 다섯 경기를 남겨둘 때까지 3위를 기록, 플레이 오프 진출에 턱까지 다가갔지만 불운의 5연패를 당하며 아쉽게 4위로 내려앉았다.

유영실 감독과 선수들은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며 "예년에 비해 좋은 성적을 내게 되면서 감독과 선수 모두 리그 막판 3위 자리를 유지하려는 욕심이 커졌고 이런 부담이 경기력 저하로 이어진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서울에 숙소가 생겼어요" = 종목을 불문하고 프로 리그에선 한 해에 순위 한 계단 올리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팬들은 늘 우리팀이 '이변'을 일으키길 바라지만 감독, 선수층, 구단 지원이 고정된 상황에서 결과는 늘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WK리그 8개 팀 중 만년 하위를 기록하던 서울시청 여자축구팀이 올해 거둔 4위는 그래서 더욱 값지다. 부임 2년차인 유영실 감독은 어려운 구단 여건에서 올해 우수 선수를 알차게 영입했다. 기량이 훌륭하지만 소속 팀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는 선수들이 타겟이었다. 유명 구단 선수라는 간판보다 경기를 뛰고 싶었던 선수들이 유 감독 러브콜에 호응했고 팀이 리빌딩됐다. 출전 시간이 늘고 고른 기회가 부여되자 선수들은 결과로 보답했다.

구단의 지원도 승수 쌓기에 힘을 보탰다. 서울시청 소속 팀임에도 여자축구팀 숙소는 얼마전까지 남양주에 있었다. 원룸에서 4명씩 생활했다. 지난해 서울 은평구 신축 오피스텔로 옮기면서 숙소 환경이 대폭 개선됐다. 방은 2~3명씩 사용했고 주변 환경도 좋아졌다.

팀내 최다 득점자이자 주장을 맡고 있는 유영아 선수는 "남자 축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이만큼이라도 여건이 개선되고 무엇보다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 여자축구팀 존재는 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팬들의 관심만큼 중요한 건 최소한의 인프라다. 현재 전용구장이 없는 시청 여자축구팀은 목동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경기 전날 운동장을 쓸 수 없다. 고교 축구리그에 자리를 내준 선수들은 숙소인 오피스텔 옥상에서 삼삼오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거나 인근에서 러닝을 하는 등 개인 운동 밖에 할 수 없다. 들쑥날쑥한 연습 시간도 컨디션 조절을 어렵게 한다. 운동장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갑자기 연습을 하러 가거나 시합에 맞춰 몸을 풀 수조차 없다.

유영실 감독은 "승리수당을 30% 이상 늘리는 등 구단의 배려와 스타 선수가 없으니 모두가 한발씩 더 뛴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한 선수들의 팀웍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면서 "아직도 여자가 무슨 축구냐는 시선이 많다. 유소년 저변이 확대되고 우수 선수가 많이 나와야 여자축구도 인기종목으로 커갈 수 있는 만큼 보다 많은 관심과 애정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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