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편집, 기후변화 대처 방안 될까
포린어페어스 "크리스퍼 기술, 농업분야 탄소배출 저감에 효과 커"
최근 열린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미국은 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농업 분야의 기후변화 대책인 'AIM4C'(Agriculture Innovation Mission for Climate) 이니셔티브를 주도했다. 한국 등 30여개국이 여기에 참여했다.
AIM4C는 '기후 스마트농업 및 식품시스템 혁신'을 위해 40억달러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UN회의에서 나온 또 다른 농업관련 기후변화 대처방안엔 '2030년까지 메탄 배출을 30% 줄이자'는 것과 '삼림벌채를 지양하자는 것' 등이 있다.
AIM4C와 메탄 감축, 산림벌채 지양 등의 약속은 전세계 국가들이 농업과 기후변화의 관련성이 깊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식량생산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온실가스의 약 1/3을 차지한다. 토양과 비료에서 나오는 아산화질소나 가축의 소화과정, 배설물에서 나오는 메탄은 지구의 온도를 높인다. 경작지 확대를 위한 산림벌채는 식물이 갖고 있던 이산화탄소를 대기중에 방출한다. 벌채 자체만으로 지구상 모든 이산화탄소 배출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기후변화는 이미 농업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1961년 이후 단위당 생산성은 21% 줄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질 전망이다. 각국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보다 많은 산림을 경작지로 바꾸려 할 수 있다. 이는 더욱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농업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유기농업을 장려한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벌채라는 이중과제에 대처하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야 한다. 자연적인 해법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유전공학의 힘을 빌리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전자가위로 알려진 '크리스퍼'(CRISPR) 기술이다. 이는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절단해 유전체 교정을 가능하게 하는 리보핵산(RNA) 기반 인공 제한효소를 말한다.
미국 환경연구단체 '브레이크스루 연구소' 에마 코박 선임연구원과 웰즐리칼리지 로버트 팔버그 교수는 17일 포린어페어스 기고 '크리스퍼와 기후'에서 "크리스퍼 기술은 각국의 식량시스템을 탈탄소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며 "악천후에도 잘 자라는 농작물을 만들면 경작지를 넓힐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벨기에 과학자들은 크리스퍼를 활용해 폭염과 가뭄에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옥수수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과학자들은 가뭄과 염분에 강한 대두, 가뭄에 강한 옥수수를 설계하고 있다. 이들은 또 토양으로부터 질소를 보다 많이 흡수할 수 있는 곡물을 만들기 위해 크리스퍼를 활용한다. 성공한다면 비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과 탄소배출을 줄일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크리스퍼 기술을 신뢰하고 채택해야 그 잠재력이 제대로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가들이 크리스퍼를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s)과 동일시해 규제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코박 연구원과 팔버그 교수는 "크리스퍼 기술은 GMO 기술과 동일한 게 아니다. 다른 종의 DNA를 주입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많은 나라들이 크리스퍼 기술을 농작물에 활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기후변화 대처에 효율적인 한가지 방법을 사장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업 온실가스, 전체의 1/3 차지
유럽은 기후변화 대처에 가장 앞선 대륙이다. 하지만 농업에선 다르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은 2018년 유전자 편집 농작물이 GMO와 같은 규제를 적용 받는다고 판결했다. EU는 1990년대 말 유럽 농업계에서 GMO를 퇴출한 바 있다. EU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 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9% 정도인 유기농업을 25%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이에 대해 코박 연구원은 "유기농업은 이론상 친환경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농업수확량을 줄이는 비생산적인 접근법"이라며 "보다 많은 농지를 확보해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으로 유기농업을 25%까지 확대하면 EU 곡물수확량은 현재보다 약 21% 줄어드는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약 370만에이커(1만5000㎢)에 달하는 삼림을 농경지로 전환해야 한다. 전세계 다른 지역도 1240만에이커(5만㎢)를 추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토양으로부터 배출되는 탄소의 양을 늘리고 생태계를 파괴하게 된다는 게 코박 연구원의 주장이다.
EU는 GMO와 크리스퍼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정부이지만 유일한 건 아니다. 뉴질랜드는 유전자 편집 농작물을 GMO와 동일한 잣대로 규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멕시코는 유전자 편집 농작물을 특정한 규제대상으로 삼지는 않지만, GMO 규제법에서 이를 다루고 있다. 미국에 이어 전세계 2위 규모의 경작지를 보유한 인도는 유전자 편집 농작물 일부에 대해 탈규제를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떤 작물을 배제대상에 포함시킬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반면 GMO 규제법에서 크리스퍼 작물을 분리하는 나라도 많다. 2018년 유럽 최고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후 아르헨티나와 호주 브라질 캐나다 도미니카공화국 과테말라 온두라스 파라과이 미국 우르과이 등 10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연합 서한을 보내 "유전자 편집 농작물을 전통의 농작물처럼 취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U를 탈퇴한 영국 역시 유럽과 달리 크리스퍼 농작물에 대한 연구를 추진중이다. 일본도 유전자 편집 농작물을 카르타헤나 의정서 상의 GMO로 분류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은 공식 의견을 낸 바 없으나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어 크리스퍼 기술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나라는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편집 등 모든 가용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코박 연구원은 GMO 역시 탄소배출 없는 농작물을 만들면서 막대한 공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 변형은 해충과 질병에 강한 농작물을 생산한다는 측면에선 유전자 편집보다 더 우수한 기술이다. 또 더 좁은 땅에서 더 많은 산출을 가능케 하기에 산림벌채를 막는 효과도 낸다. 예를 들어 천연살충제인 BT균으로 유전자를 변형한 농작물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평균 25% 생산량이 늘었다.
유전자 변형은 또 제초제에 강한 농작물을 만드는 데에서도 유전자 편집 기술보다 우수하다. 이는 잡초를 효율적으로 제거해 산출량을 늘린다. 코박 연구원은 "해충과 제초제에 강한 GMO 작물은 농약 살포와 논밭갈이에 쓰이는 트랙터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연간 160만대의 자동차가 내뿜는 온실가스와 동일한 양을 감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여론은 유전공학에 무작정 반대는 아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유전자 변형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어디에 적용되는지에 따라 편차가 크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수족관 물고기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과 관련해선 응답자의 21%만 찬성했다. 하지만 모기가 옮기는 질병을 막기 위해 모기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에 대해선 70%가 찬성했다. 질병을 줄이는 건 기술의 적절한 활용이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또 인간에게 이식될 수 있는 세포조직과 장기를 가진 동물을 변형하는 것엔 57%가 찬성했다.
유전공학에 대해 엇갈린 입장들
일부 환경보호론자들도 대의명분이 충족될 경우 유전공학에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민간 환경운동단체인 '시에라클럽'은 역사적으로 모든 유전자조작 동식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최근 유전자 변형 미국밤나무를 심는 것에 대해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1800년대 말까지 미국 동부에 무성하던 미국밤나무는 마름병으로 전멸했다. 코박 연구원은 "이는 유전자 편집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환경단체들은 농업에서의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크리스퍼나 GMO 기술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용인할 수도 있다"고 썼다.
하지만 유전공학의 잠재력을 여는 것은 대중의 여론 추이나 환경단체의 용인 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양한 종류의 크리스퍼 농작물을 얻기 위해선, 개발자들과 국가들이 관련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과 관련, 미국에서만 6000개 이상의 특허가 출원돼 있다. 매달 200개 이상의 특허가 보태진다.
코박 연구원은 "이런 복잡한 구조에선 개발자가 단일 농작물을 상업화하기 위해 수많은 종류의 특허를 받아야 한다"며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크리스퍼 농작물의 출시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은 크리스퍼 특허를 비영리 연구기관에게 무료로 허용한다고 약속했다. 다른 특허 보유자들도 동참할지 주목된다.
한편 크리스퍼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과 투명한 의사결정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근거없는 두려움이 양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박 연구원은 "GMO에 대한 완고한 반대가 보여주듯, 새로운 기술 또는 방법이 일단 불신을 받는다면 이를 되돌리기란 어렵다"며 "크리스퍼 기술은 기후변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