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통주'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2021-11-25 12:17:12 게재
김상남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쓴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한민족은 음주가무를 즐겼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우리 민족이 '가무악에 진심'인 것이 이웃 나라에 퍼질 정도로 소문이 자자했나 보다. 이 DNA가 어딜 가진 않는지 최근에는 BTS 등 K-팝 뮤지션들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시간과 세대를 뛰어넘어 '가무'가 뛰어난 것은 확인되는데, 가무 앞에 붙은 '음주'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한국은 음주에 관대하다는 이미지만 있을 뿐, 이렇다 내세울 우리술은 거의 없다. 몇 년 전 막걸리 붐이 불긴 했지만 프랑스의 와인, 러시아의 보드카, 중국의 바이주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맛과 전통, 명성이 쌓인 술은 꼽기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맛있는 술이 없느냐면 또 그것은 아니다. 안동의 안동소주, 경주의 교동법주, 전주의 이강주, 김포의 문배술 등 맛도 향도 보장된 전통주가 지역마다 하나씩은 있다. 게다가 2017년 전통주를 보호, 육성하는 차원에서 일부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서 전통주 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조사에 따르면 2016년 397억 원이었던 전통주 시장 규모는 2018년 456억원으로 늘어났다. 온라인 소비에 적극적인 2030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아저씨 술', '명절용 술'이라는 이미지도 엷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혼술족, 홈술족의 증가로 온라인에서의 전통주 판매가 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 관심은 늘고 지속적으로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도 우리 전통주가 전체 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에 불과하다.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2017년 '전통증류소주 대중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수입 농산물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희석식 소주와 다른, 우리 농산물을 발효시키고 증류한 고품질 전통주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최근 이 프로젝트를 통해 경기 가평과 용인, 강원 강릉, 충남 당진, 제주 성산포 등 5개 지역 양조장에서 지역 특색이 담긴 전통증류소주를 선보였다. 지역에서 생산된 쌀로 빚은 발효주를 증류해 희석식 소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부한 향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국산 증류주 상품화 기술 현장 접목 연구'를 추진 중이다.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증류주 생산 기술을 전수하고 고품질 증류소주를 생산할 수 있도록 공정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 끝에 얼마 전 전주한옥마을에서 시제품 시음회도 열 수 있었다. 이 전통주들은 이르면 내년 초에 시중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주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청년들의 활약도 기대해볼 만하다. 농촌진흥청에서 청년 창업을 돕기 위해 제품 개발과 시제품 생산 등 기술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지원하고, 양조장 창업에 필요한 맞춤형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여개 업체가 창업을 준비 중이니 조만간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담긴 독특한 전통주들이 속속 등장하리라 기대한다.

최근 술 소비 트렌드가 '취하자'에서 '즐기자'로 바뀌면서, 코로나19로 '혼술'과 '홈술'이 대세가 되면서, 그리고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소비가 늘면서 전통주 시장에도 물이 들어오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지금이 전통주 시장을 키우고 주류시장에서 전통주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다. 머지않아 다양한 곳에서 지역 특색 가득한 전통주를 쉽게 만나고, 전통주 한 잔에서 깊은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