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함께할 연극·공연│인터뷰 - 신현종 배우

"트랜스젠더 등 5명 출연 … 수다로 치유"

2021-12-09 11:07:51 게재

성 소수자 말복 역 이해하기 위해 '젠더 포럼' 참여 … 마음 속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연극 '사라지다'(극단 고래/이해성 연출)에는 개성 있고 매력적이면서도 우리네 삶을 보여주는 여성 5명이 등장한다. 각 절기를 이름으로 하는 인물들은 각각 상강 청명 동지 신정 말복. 연말을 맞아 상강 청명 동지 신정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너무나도 편하게 '이모'라고 부르는 말복을 만나 한판 수다를 펼친다.

말복은 트랜스젠더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인물. 곡절이 많은 인생이기에 성격이 어두울 것 같지만 친조카 같은 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대하는 밝은 모습을 지녔다.

40년 넘게 연극 무대를 지켜온 신현종 배우(59)는 배역에 대해 설명을 듣자마자 "지금까지 못했고 앞으로도 하기 쉽지 않을 배역"에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28일 그를 대학로에서 한 카페에서 만나 성 소수자 말복을 연기한다는 것의 의미를 들었다. 이 자리에는 강윤주 극단 고래 공동대표도 함께했다.

28일 대학로에서 만난 신현종 배우. 작은 사진은 그가 트랜스젠더로 분장한 모습. 사진 이의종

■연극 '사라지다'는 어떤 연극인가.

등장인물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연말에 만나 한판 수다를 펼친다. 인물들끼리 티격태격하는 소소한 싸움도 있다.

말복이 정말 독하게 말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도 상처를 받을지언정 누구 하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떤다. 또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결국엔 서로 보듬어주고 상처를 이해하고 인정해준다.

그 과정에서 한편의 따뜻한 연극 '사라지다'가 탄생한다.

■말복은 어떤 인물인가.

말복은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말복은 자신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결혼을 했고 딸도 낳았다. 딸과는 친분을 유지하며 지내지만 전처와는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딸이 결혼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게 된다.

이렇게 많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말복은 밝게 살려고 노력하며 따뜻한 감성을 갖고 있다.

■연극 '사라지다'는 경계에 대해 얘기한다고 들었다.

연극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은 모두 경계에 서 있다. 말복의 경계는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있다. 젠더 때문에 이곳에도 저곳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인물이다.

강 대표에 따르면 말복은 트랜스젠더로 '남성, 여성,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군가, 누가 그렇게 명백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가'를 말한다. 강 대표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성 소수자의 목소리가 사회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듯이 우리가 굉장히 견고한 담장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균열이 나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담장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게 아주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네 마음 속 경계는 무엇인가'를 질문한다"고 말했다.

■성 소수자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성 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해 숙명여대에서 개최한 젠더 포럼에 참여했다. 배우에게는 포럼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별로 없는 일이다. 공식 연습시간에 모두 함께 줌으로 포럼에 참여했고 매우 감사한 경험이었다. 한채윤 인권운동가의 발표가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하다. 말복을 맡기 전의 모습을 돌아보면 성 소수자에 대해 혐오하지도 않았지만 인정하지도 않고 있었다. 포럼에 참여한 이후에 성 소수자들을 인정하게 되고 지금까지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존중은커녕 인정받지도 못하는 성 소수자들의 삶을 한정된 관객들에게나마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본다.

■연기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가족들이 도움을 준다. 아내도 연극배우여서 조언을 많이 해 준다.

또 딸의 도움을 받아 트랜스젠더 관련한 영상물을 보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트랜스젠더를 다룬 작품이 별로 없어 해외 영상물을 봤는데 해외 배우들의 몸짓이 너무 커서 작은 몸짓으로 바꿔 소화하고 있다.

또 남자 중에서도 톤이 낮은 편이라 성대를 조여 말복에 맞는 소리를 내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데 술을 마시면 성대에 무리가 있어 자제하는 중이다. (웃음)

■연습 분위기는 어떤가.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3가지를 한다. 108배, 명상, 그리고 종이컵으로 하는 '컵차기'다. 다 함께 둘러서서 컵차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10번도 못 찼지만 최근엔 57번까지 이어졌다. 연습을 하는 동안 80번까지 이어지는 것이 목표다. (웃음)

요즘 연극계에도 전문 프로덕션 체계가 도입돼 극단 고래처럼 단원들이 꾸준히 함께하며 연극을 준비하는 곳은 많지 않다. 단원은 아니고 캐스팅돼 함께하게 됐지만 좋은 분위기에서 더욱 좋은 연극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열심히 준비해서 관객들이 연말에 아주 따뜻하게 함께할 수 있는 연극을 선보이고자 한다.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일시 12월 16일~2022년 1월 2일 평일 오후 8시/주말 오후 4시 (월요일 쉼)
소요시간 100분 (인터미션 없음)
관람연령 중학생 이상
가격 전석 3만원 (비지정석)
예매처 네이버예약 플레이티켓
문의 070-8261-2117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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