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찬희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이사장

"우유팩 재활용 급감, 생산자가 책임져야"

2021-12-13 12:55:02 게재

기술 부족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성 확보가 관건 … 살균팩 멸균팩 재활용기준비용 차등화 필요

"멸균팩 재활용기술이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살균팩과 멸균팩의 재활용기준비용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자생적으로 재활용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당연히 생산자들도 노력을 해야 한다. 생산자는 궁극적으로 폐기물이 될 제품이나 포장용기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이를 판매해 이익을 얻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폐기물을 처리할 1차적 책임이 있다."

이찬희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이사장│△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 교수 (2017년 8월~2021년 3월) △대통령비서실 기후환경비서관(2014년 12월~2017년 5월) △환경부 자연보전국 환경정책관, 자연보전국장(2011년 8월~2014년 2월) △UNEP 아태지역 환경사무소(2008년 8월~2011년 8월) △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 산업폐기물과장 등(1987년 5월~2007년 10월). 사진 이의종

최근 종이팩 재활용률이 2016년 25.7%에서 2020년 15.8%로 급감하면서 생산자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처음 생산단계부터 자원순환을 고려한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8일 서울 양재동에서 이찬희(60)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이사장을 만난 것도 이러한 비판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은 '자원재활용법'에서 정한 포장재 재활용의무 이행을 위해 재활용의무생산자 6000여곳이 설립한 생산자책임기구(PRO)다.

조직 특성상 회원사들의 이익을 더 우선시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 이사장은 오히려 생산자 책임을 강조했다. 전세계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얘기였다.

■종이팩 재활용률이 급감했다. 생산업체들이 재활용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원래 취지에 맞춰 생산자들도 책임을 좀 더 강하게 느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상온보관이 가능해 출고량이 늘어난 멸균팩은 알루미늄이 들어있고 재활용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 비율)이 낮은 편이다. 살균팩과 비교했을 때 재활용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다. 게다가 멸균팩에 사용된 알루미늄박과 황색펄프가 재활용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재활용 과정에서 멸균팩은 잔재물로 처리되는 실정이다.

현실은 이런데 정작 살균팩과 멸균팩 재활용기준비용은 1kg당 185원(2021년 기준)으로 동일하다. 재활용기준비용에 따라 회수·재활용 지원금도 살균팩과 멸균팩이 똑같다. 이런 문제들이 멸균팩 재활용시장이 형성되지 못하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환경부에서 멸균팩 재활용기준비용 인상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발맞춰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은 멸균팩 생산자와 사용자에 부과하는 분담금을 대폭 높이고 회수·재활용 지원비용도 크게 인상해 재활용시장이 창출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멸균팩 재활용기술이 없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지원이 강화된다면 자연스럽게 재활용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산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면 반발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일부 전문가들이 다루던 ESG가 우리 사회와 기업이 추구해야 할 지표로 자리잡았다. 세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기업들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ESG 중의 환경(E)은 기후위기 탄소중립 생물다양성 탈플라스틱 등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이들 분야는 모두 자원순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원순환은 폐기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재활용해 자원을 절약하고 폐기물로 인한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일을 말한다.

1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을 활성화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다. 자연히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지구 생태계 보전으로 생물다양성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자원순환경제 달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생산업체 재활용업체 시민 등 모든 경제주체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특히 생산자들은 원료의 구입, 제품의 설계와 생산, 포장과 유통을 관장하기 때문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재생원료 사용 확대를 통해 천연자원 채취를 줄이거나 친환경설계를 통해 재활용이 용이한 재질과 구조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생산자들의 책임과 부담이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자원순환경제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재활용가능자원의 특성, 출고량, 시장 상황 등 다양한 여건을 파악해 효율적인 재활용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회원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제도개편을 환경부에 건의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현장을 다니면서 회원사들이 무엇을 원하고 아쉬워하는지를 직접 파악해 환경부와 함께 해결방안을 고민하겠다.

■생산자뿐만 아니라 테트라팩 SIG콤비블록 등 멸균팩을 제조하는 업체들과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종이팩 재활용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종이팩과 폐지의 혼합배출 문제다. 종이팩 회수업체에서도 경비 절감을 위해 살균팩과 멸균팩을 분리하지 않고 혼합 압축해 제지업체에 납품하면서 재생원료 품질이 떨어져 수요가 줄고 있다.

지난달 테트라팩 SIG콤비블록 등 멸균팩 제조업체들과 서울우유협동조합 매일유업 삼육식품 등이 택배를 활용해 종이팩 회수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했다.

우유팩을 모아서 친환경 인터넷 쇼핑몰 닥터주부에 택배로 보내는 소비자에게 다음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적립 포인트를 준다. 수거된 종이팩 중 살균팩은 부림제지에서 화장지로, 멸균팩은 삼영제지에서 페이퍼타월로 재탄생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 외에도 환경부와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은 지자체와 협조해 전국 공동주택 6만가구를 대상으로 '종이팩분리배출 시범사업'을 12월부터 시행 중이다. 단계적으로 확대하면서 종이팩 회수와 재활용률을 높일 계획이다.

■내년부터 식품용기에 재생 투명페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독려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추진 중인가.

재생 투명페트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재생원료 생산은 물론 관련 시장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생원료 안전성 시험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재생 투명페트 생산 및 사용업체들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지급할 예정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관련업계와 협약 체결을 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재생 투명페트 사용 확대에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

탈플라스틱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최근 유엔환경계획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127개국 정부가 플라스틱 봉투와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과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금지 등 다양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은 지난 1월부터 재활용이 되지 않는 플라스틱에 대해 1㎏당 0.8유로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플라스틱세 0.8유로는 우리나라 폐기물부담금 150원에 비하면 약 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다. 최근 플라스틱 대체자원인 바이오플라스틱이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하는 걸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현 재활용시스템에서는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환경부는 물론 관련 업계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생각이다.

■재활용이 어려워 논란이 됐던 화장품용기도 탈플라스틱 강화 움직임에 맞춰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않나.

화장품용기는 △유통이나 보관 과정에서 품질이나 안전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는지 △사용 편리성을 위한 구조적인 문제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하기 위한 디자인 △배출시 남게 되는 이물질 등으로 인해 재활용이 쉽지 않다. 게다가 종이팩처럼 섞여서 버려지면 다른 용기의 재활용까지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화장품용기를 별도로 회수할 수 있다면 다른 용기의 재활용을 쉽게 할뿐만 아니라 화장품용기도 재활용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은 수거함 제작·배포 등을 통해 화장품 유통업계 및 생산자와 함께 역회수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소비자가 화장품을 소분(리필)해 사용할 경우 폐화장품용기 발생량은 그만큼 줄어든다. 소분 판매 활성화를 위해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은 환경부와 공동으로 화장품 소분용 표준용기 설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할 계획이다. 나아가 중소규모의 리필매장을 대상으로 소분용 표준용기를 시범 보급할 생각이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은 제품 생산자 및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의무생산자)에게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재활용부과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재활용기준비용 = 재활용의무 미이행시 부과되는 재활용부과금의 산정기준이 된다. 재활용부과금의 산출기준이 되는 폐기물의 재활용에 드는 비용인 재활용단위비용은 재활용기준비용에 재활용비용산정지수 등을 곱해서 산출한다.

■살균팩과 멸균팩 = 국내에서 사용하는 종이팩은 크게 2종류로 나뉜다. 우유팩으로 주로 사용되는 살균팩(카톤팩)과 두유팩으로 쓰는 멸균팩(아셉틱 카톤팩) 등이다.

살균팩은 '폴리에틸렌(PE·인쇄면)+펄프 1+펄프 2+펄프 3+PE(내면)'로, 멸균팩은 'PE(인쇄면)+펄프+PE+알루미늄+PE+PE(내면)'로 구성된다. 겉으로는 동일해 보여도 사용한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섞이게 되면 재활용하기가 힘들어진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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