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은 녹색인가 … 독일-프랑스 대립

2021-12-20 11:28:36 게재

워싱턴포스트 "프랑스정부 신규 원전 건설 의향, 독일정부는 전면 폐쇄 원해"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TV 연설에서 "신규 원전을 짓겠다"며 원자력발전의 부활을 선언했다. 프랑스는 원자력발전소 운용 개수에선 미국에 뒤처지지만, 에너지 의존도에서는 세계 최고다.

마크롱정부의 입장은 원자력에너지가 있어야 에너지비용을 낮추고 공급망 안정성을 지키며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 프랑스는 중부유럽·동유럽국가들과 함께 원자력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 목록에 포함시키라며 유럽연합(EU)에 압력을 넣고 있다.


19일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페센아임의 주민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지난달 발언을 접한 당시 처음에는 잘못 들었겠거니 생각했다. 페센아임은 1970년대 지어진 원전으로 경제를 꾸려왔지만, 지난해부터 폐쇄작업에 돌입했다.

페센아임 클로드 벤더 시장은 WP에 "우리는 희생 당하길, 잊혀지길 원치 않는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을 '긍정적인 충격'이라고 환영했다. 페센아임 원전은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고용한 지역 최대 사업장이었다.

페센아임이 속한 알자스주의 프레데릭 비에리 주지사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원전 폐쇄는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릇된 선택이었다"며 "미래 원전 부지로 페센아임을 다시 고려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마을 동쪽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독일이다. 독일정부의 입장은 원자력발전소가 너무 위험한 데다 기후변화 위기 해법으로 쓰기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는 것.

독일은 덴마크, 오스트리아와 함께 '유럽의 모든 원전을 폐쇄하자'고 촉구한다. 또 원자력을 친환경적으로 분류하는 데 격하게 반대한다. 원자력이 친환경적이냐는 논쟁은 조만간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EU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2000여명 고용 원전, 지난해 폐쇄 돌입

유럽에서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의견 대립이 페센아임보다 거센 곳은 없다. 이곳엔 1970년대 1800메가와트 원전이 건설됐다. 프랑스 입장에서 페센아임 원전은 자부심과 경제적 발전의 원천이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이었다. 원전이 내는 세금으로 마을이 발전했다. 각종 경기장과 학교, 쇼핑센터 등을 지었다.

이곳 주민 로랑 슈바인은 "절정기에 페센아임은 모든 것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은 늘어나는 주민과 관광객 덕분에 계속 확장됐다. 그는 "지역주민들은 지진에 취약한 단층에 자리잡은 원전의 안전성을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경 반대쪽 독일에선 오랫동안 반핵운동이 벌어졌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에서 나온 방사선이 서유럽 방향으로 확산된 이후, 페센아임은 독일 반핵운동가들의 타깃이 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같은 두려움을 배가시켰다. 사고 몇달 뒤 독일정부는 가동 원전 절반을 영구적으로 폐쇄하기로, 나머지 절반도 운용기간을 제한키로 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처럼 강경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프랑스 대선에 나선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는 '당선된다면 페센아임 원전을 폐쇄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페센아임 원전 폐쇄까지는 8년이 걸렸다. 2020년 6월 폐쇄조치에 돌입했다. 이 마을과 인접한 독일 국경마을 브라이자흐의 환경운동가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독일 환경운동가 에버하르트 부에프는 "폐쇄 당일 프랑스 국민의 감정을 존중해 샴페인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활절과 성탄절이 한꺼번에 닥친 듯한 기쁨이었다. 그만큼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페센아임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벤더 시장은 지역주민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현재까지도 원전 담벼락엔 '역사적인 실수' '환경론자를 위한 정치적 희생양' 등의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벤더 시장은 "우리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원전 vs 화석연료, 누가 더 나쁜가

벤더 시장은 "독일은 반핵을 외치면서도 환경에 치명적인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크다. 이미지의 충돌이 생긴다"며 "독일은 매년 체르노빌 사태의 몇배에 이르는 죽음을 일으키는 대기오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프랑스의 2배에 육박한다. 독일은 내년 마지막 남은 원자력발전소들을 단계적으로 폐쇄할 계획이다. 그 결과 부족해지는 에너지 간극을 메우기 위해 수년 동안 석탄을 비롯한 기타 오염 에너지원에 의존해야 한다. 석탄광산 개발을 위해 독일은 광산 인근 마을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있다.

반면 마크롱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약속을 지키려면 원자력을 고수해야 한다며 화석연료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는 것보다 원자력을 활용하는 게 훨씬 좋은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영국의 에너지 전문연구기관 '오로라 에너지 리서치'의 선임 연구원 알렉산더 댄다인은 "탄소배출 관점에서만 본다면, 원자력은 최고의 에너지원"이라고 말했다.

독일 환경운동가들도 석탄에 대한 자국의 지속적인 의존은 단기적인 임시조치라 해도 문제가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독일이 풍력과 태양광 등 대안에너지로 신속하게 전환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다.

독일 녹색당은 새로 구성된 연정에 포함됐다. 녹색당은 신재생에너지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소비자들이 에너지가격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녹색당은 2030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 전력의 80% 이상으로 높이길 원한다. 현재 독일정부의 공식적인 목표치는 약 50%다.

독일 정치인과 운동가들은 원자력을 녹색 또는 지속가능한 원천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에 강력 반발한다. 원전이 잠재적으로 재앙적인 환경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사능폐기물을 장기간 저장하는 데 따른 문제점이나 풍력과 태양광에 쏟아져야 할 투자가 원자력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거론한다.

독일의 반핵환경 운동가인 슈테판 아우흐터는 "향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태와 비슷한 일이 재발한다면 독일의 결정이 옳았음을 인정 받을 것"이라며 "원자력에너지는 러시안룰렛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회전식 연발권총에 하나의 총알을 장전한 뒤 머리에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처럼 위험하다는 의미다.

환영 일색의 원자력업계

지난달 말 프랑스 파리 북부 지역에서 열린 민간 분야 원자력 기업·기관들의 최대 행사 '세계원자력박람회'(WNE)에선 원자력업계의 자신감이 엿보였다. 박람회를 보러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는가 하면, 원자력산업 관계자들은 원자로 미니어처 지붕 아래서 점심식사를 하는 홍보장면을 연출했다.

지난달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엔 구체적 내용은 없었지만, 프랑스가 향후 짓게 될 신규원전은 '유럽형 가압경수로'(EPR)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는 전통의 원자로보다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인 것으로 폐기물도 덜 나온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EDF'는 올해 봄 EPR 6기를 새로 짓겠다며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게다가 EPR보다 더 저렴하고 안전한 신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유럽과 미국에서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EU집행위원회 에너지위원장인 카드리 심슨은 지난달 연설에서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관심사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EDF의 소형모듈원자로 프로젝트 국장인 르노 크라소우스는 "향후 10년 동안 출시될 소형모듈원자로는 까다로운 안전성 기준을 모두 만족시킬 것"이라며 "원자력에 회의적인 국가들도 신기술을 접하게 되면 원전에 대한 기존 결정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페센아임과 인접한 독일 국경마을 브라이자흐의 올레베르 라인 시장은 원자력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는 페센아임 원전 폐쇄로 프랑스-독일의 신재생에너지 합동 프로젝트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지만 이웃마을인 페센아임이 원전의 재도입을 추구한다면, 양국 관계는 험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 시장은 "프랑스의 원자력 재도입 움직임은 내년 대선을 위한 정치적 제스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여론조사를 보면 원자력에너지를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여론을 다시 앞섰다. 게다가 현직 마크롱 대통령에 가장 위협적인 도전자들은 모두 우파나 극우파 소속이다. 극우파 대선후보인 마린 르펜은 페센아임 원전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는 에리크 제무르 후보는 대선출정식 동영상에 원자로와 관련된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센아임의 일부 주민들은 마을에 원자력이 다시 도입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페센아임 원전에서 일하다 은퇴한 63세 장 이브 트레쯔는 "독일이 압력을 가한다면, 원전 재도입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반핵 활동가로 페센아임 원전 통제위원회 위원인 클로드 레데거버는 "원전 재도입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미 너무 많은 요소들이 제거됐다"고 말했다.

이 마을 식당 사장인 슈바인은 "원전 해체 작업에 수년이 걸린다. 그때까지만이라도 노동자들이 식당을 찾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는 이미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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