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품질 조작, 묻지마 범죄의 일상화
일본정부 건설업수주 뻥튀기, GDP도 의심 … 오사카 방화 25명 사망, 연쇄 모방범죄 추정
이달 들어 대형사건 잇따라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장기간 지속되는 경제침체와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격차와 불만이 폭력을 동반하고, 사회적 참극이 다시 모방범죄를 불러오는 양상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오랜 기간 사실상 1당 집권체제를 지속하는 일본의 정치·행정 환경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대한 고위공직사회의 복종과 줄대기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눈속임·뻥튀기 만연한 정부와 기업
아사히신문은 지난주 국토교통성의 건설업 수주통계가 오랜 기간 부풀려져 왔다고 폭로했다. 신문에 따르면 국토교통성과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2010년대 전반부터 이중계상 등의 방식으로 통계를 부풀려 온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업 수주와 관련한 통계의 과대 계상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론은 분석했다. 일본 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통계 부풀리기는 전체 GDP 규모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미 2018년 이전의 데이터는 파기돼 GDP 재산정도 어렵게 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이에 앞서 2018년에는 후생노동성이 매월 작성하는 '매월노동통계'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당시 후생노동성은 통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500인 이상 사업장을 전수조사해야 하는 데도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샘플조사로 이뤄져 신뢰성에 문제를 드러냈다.
당시 통계 오류는 결과적으로 2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고용보험 급부액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는 등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불러왔다.
아베 전 총리 부부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사건과 관련한 재무성의 공문서 위조 사건은 지금까지 정치권의 공방 소재로 남아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던 이 사건은 재무성 공무원이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발각돼 파문이 더 커졌고, 이후 지방 사무소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져 파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공직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통계와 문서 조작이 여기에 그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정부는 후생노동성 부정 통계문제 때 기간통계 모두를 일제 점검했지만 이번 국토교통성 자료 부풀리기 문제는 놓쳤다"면서 "문제의 원인과 경위, 책임의 소재에 대한 해명이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식의 눈가림은 공직사회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만연해있다. 올해 6월 발각된 미쓰비시전기의 일부 공장에서 1990년대 초부터 품질검사를 허위로 하거나 아예 절차를 무시하는 부정이 드러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하철 등의 공기정화장치를 납품하는 이 회사는 나가사키 제작소 등에서 관련 제품에 대한 품질관리를 허위로 보고한 것이 드러나 대표이사가 사퇴하는 등의 진통을 겪었다.
이에 앞서 2008년 발각된 신일본제철과 JFE스틸이 저지른 강관 데이터조작 사건과 2017년 세상에 알려진 닛산자동차의 절차를 무시한 품질검사 사건도 있다. 같은해 고베제강소의 검사증명서 조작 사건 등도 대표적인 허위·조작사건에 해당한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 죽이고 싶어"
지난 17일 오사카에 있는 한 빌딩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으로 모두 25명의 시민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불과 2년 전 교토의 한 애니메이션 제작소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으로 36명이 사망한 사건에 이은 대형 참극이다. 특히 이번 방화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2년 전 교토 방화사건 범죄를 참고하는 등 모방범죄의 성격이 의심된다고 일본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이런식으로 익명의 대중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인 살인행위가 일본 사회에서 자주 발생한다. 올해 들어서만도 지난 8월 도쿄 오타큐선 지하철 안에서 30대 남성이 승객을 대상으로 무차별 흉기를 휘둘러 10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범인은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었다"고 말하는 등 극도로 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10월 마지막날에는 도쿄 게이오선 지하철 안에서 20대 남성이 차내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한 뒤 흉기를 휘둘러 17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범인도 앞서 있었던 오타큐선 범행을 참고했고, 영화 '조커'의 주인공을 흉내 내는 등 모방범죄의 성격을 드러냈다.
지난달에도 구마모토에서 달리던 신칸센에서 60대 남성이 차내에 가연성 액체를 뿌리고 방화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용의자도 "(10월의) 게이오선 사건을 따라 했다"라고 진술했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련의 사건이 1995년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와도 성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당시 지하철 테러는 옴진리교라는 종교집단의 조직적인 범죄행위였다면 최근 일어나는 범죄는 거의 개인이 단독으로 저지르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최근 사건의 공통점은 불특정 다수가 모여있고, 경비나 감시가 힘든 공공장소에서 이른바 '소프트 타겟'에 대한 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불러온다는 점"이라며 "범인들은 대체로 사회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이라는 범행 동기도 비슷하다"고 했다.
일본 경찰과 정부, 철도 등 대중교통 기관은 무차별 살인행위에 대해 다양한 방도를 세우고 있지만 논란도 많다. 예컨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거동이 수상한 사람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첨단기술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첨단기술을 이용한 범죄 예방과 대처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타케키 나카누마 세츠난대학 교수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안전대책을 개선해야 하는 시기지만 규제의 강화에는 사회적 이해와 협조가 불가피하다"면서 "정부 관계기관과 시민사회가 함께 사회적 논의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사건에 무감각한 정치권
일본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대형 사건이 터지면 반짝 법석을 떨다가 결국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문제 해결은 요원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국토교통성 통계 부풀리기와 관련해서도 벌써부터 책임소재를 가리지 못하고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각종 정치적 파문이 터지면 정치적·법적으로 책임지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아베 전 총리 스스로 '사꾸라를 보는 모임'을 통해 지역구 유권자에게 향응을 베푼 의혹과 관련 다양한 증언과 물증이 나오는 데도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나는 등 의문을 남겼다. 각종 통계 허위작성과 공문서 위조에 대해서도 누구 하나 책임졌다는 얘기는 없다. 오히려 하급 공무원만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가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이다.
고이케 아키라 공산당 의원은 1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정권 때부터 이상한 체질로 바뀌어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메스를 대지 못했다"면서 "공문서와 통계 문제는 국민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다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기에 확실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지만 정치권에 큰 울림은 없다는 평가다.
무차별적인 살인행위는 경제적·사회적 위기의 징후라는 진단이 진작부터 나왔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8년 도쿄 아키하바라 보행자거리에 대형트럭이 돌진해 7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는 범인에 대해 "파견사원을 전전하는 가운데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일본 사회는 고이즈미정권 이후 확산한 노동유연화 정책과 이에 따른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격차가 확대되던 때다.
일부 전문가는 미디어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일본은 사회적 파문을 가져오는 사건이 터지면 TV를 비롯해 모든 미디어가 사건의 개요와 과정을 지나치게 상세히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가 모방범죄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본다. 미우라 마사히로 고쿠시칸대학 교수는 "도쿄 지하철 사건 등을 다루는 미디어의 모습을 보면 문제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