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주주 피해 초래하는 복수의결권 반대"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주 보호장치 미비·이사회 역할 부족 … 재벌 오너 지배력 강화 수단 사용 우려"
재계와 벤처업계가 앞장서 추진하고 있는 복수의결권 도입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벤처 창업인의 경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갖고 제안된 이 법안이 사실상 대기업 오너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된다는 비판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주 보호 장치가 미비하고 이사회의 역할이 부족하며, 사후 구제장치가 미흡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2일 오후 국회 앞에서 '복수의결권 도입 반대' 기자회견을 가진다. 포럼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주주 보호 장치가 크게 미비하고, 이사회의 역할도 부족하다"며 "개정안의 일몰조항도 해외 사례에 비해 완화되어 있고, 복수의결권이 악용될 경우 사후 구제장치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분할, 합병 등에는 복수의결권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으며, 상장 후에도 3년 동안 복수의결권이 유지될 수 있다.
결국 복수의결권을 확보한 대주주가 분할, 합병 등의 방식으로 일반주주의 부와 권리를 편취하고 불공정 승계에 악용하는 것이 유행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주주가 일반주주의 부와 권리를 편취하고 불공정 승계에 악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벤처붐을 만든다면서 대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전경련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도 이상하다고 지적한다.
류영재 포럼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비례적 가치를 훼손하고 특정 대주주의 배만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불공정한 회사 분할, 합병, 주식병합, 일감 몰아주기 등의 사례가 수 없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사전적·사후적 구제수단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주의 정당한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함께 도입하지 않고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것은 일반주주들의 피해만 초래하는 요인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주주의 이익이 잘 보호되는 미국에서조차 복수의결권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되고 오히려 장기투자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최근에는 미국, 캐나다 등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복수의결권이 오히려 축소되는 흐름이 보인다.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기금은 2014년 복수의결권 도입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했고, 미국기관투자자협의회는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복수의결권 도입 기업의 상장을 허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 주식회사 컬리는 창업자의 낮은 지분율 때문에 경영권 보호를 위해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했지만 결국 한국 증시에 상장하기로 했다. 언론에 따르면, 뉴욕에서 기대한 만큼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추정되며, 상장 이후 경영권은 창업자와 우호 주주의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체결을 통해 보호받기로 했다.
컬리의 이런 행보는 결국 어느 시장에 상장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있어 기업가치가 복수의결권보다 우선되며, 복수의결권이 아니더라도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주목할 점은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미국의 빅테크 기업 알파벳, 메타 등에는 오히려 복수의결권을 폐지하라는 주주제안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규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는 기업은 S&P 500 등의 지수 편입도 제외된다.
한편 지난 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한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보유지분보다 많은 의결권(1주당 10개 이하)을 부여해 경영권을 보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8일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 법안 통과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주주 평등 원칙에 예외를 만들어 다른 법률 체계와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며 "대주주 중심으로 지배력이 집중되면서 오히려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 의원은 또 "이미 상법상 의결권 없는 주식 발행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이런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과연 벤처기업을 위한 법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