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법·조례 어기고 협약 체결했나?
혈세 들어가는데 시의회 의결 안거쳐
허술한 조례가 빌미 제공 … 분쟁소지
시 "보고 했다" … 의회 "협약 무효"
부산시가 시 예산 투입이 예상되는 업무협약을 수차례 체결하면서 지방자치법과 조례에서 정한 시의회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지방자치법과 부산시 조례에는 예산외 의무부담(향후 재정이 투입되는 부담)이 수반되는 협약은 시의회 의결사안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내일신문 취재 결과 박형준 시장 취임 이후 17건의 재정부담 협약이 이뤄졌지만 단 1건도 시의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가 지난 4월 경남도 전남도 등과 추진한 '남해안 탄성소재벨트구축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 예타선정 추진 협약'이 대표적이다. 사전연구용역에 재정투입이 필수적이지만 시의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글로벌펀딩 조성을 위한 요즈마그룹과의 업무협약'은 부산시 재정이 950억원이나 투입되지만 시의회 의결뿐 아니라 상임위 사전보고도 하지 않았다.
시는 한국게임산업협회와 국제게임전시회로 유명한 '지스타 개최를 2028년까지 연장한 협약', 출자금 10억원을 내야 하는 '베이비샤크 넥스트 유니콘펀드 결성 업무협약', 부산시가 사업비 지원을 약속한 현대자동차 그룹과의 '찾아가는 의료서비스 협약' 등도 시의회 의결절차를 무시한 사례다.
현행 지방자치법(39조 1항)에는 '지자체가 예산 외 의무부담을 질 경우 지방의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부산시 업무협약조례도 이 내용을 담아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이다.
의결절차를 두고 시와 시의회의 의견은 완전히 갈린다. '재정부담 협약은 상임위에 사전보고 한다'는 조례의 해석을 두고 정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의회는 '협약도 예산심사처럼 상임위에 보고하고 본회의 의결도 거쳐야 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부산시는 '보고만 하면 그만'이라고 해석했다. 벌칙조항이 없으니 강제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부산시가 사전보고 사항을 제대로 지킨 것도 아니다. 박 시장 취임 이후 지난 11월까지 99건의 업무협약 중 시의회에 사전보고 한 것은 10건 뿐이다. 부산시 주장처럼 '사전보고'만 해도 되는 업무협약 대상은 17건이다. 최소한 7건은 명백히 조례 위반이자 위법인 셈이다.
'사후보고'로 돌린 나머지 업무협약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행정부담이 투입되는 협약까지 확장하면 절차위반 건수는 더 늘어난다. 법제처는 의회 의결을 명시한 지방자치법 '예산외 의무부담'에 대해 "당장에는 구체적인 금액을 확정하기 어려워서 예산으로 바로 편성은 어렵지만 향후에 그런 재정 부담이나 행정부담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재정부담 뿐 아니라 행정부담도 시의회 의결 사안이라는 얘기다. 시가 맺은 협약 대부분에 행정지원 부담 내용이 들어있다.
박 시장 1호 협약인 '스터디채널 투자양해각서'에는 부산시가 기업 증설투자에 적극적인 행정·재정 지원을 한다고 돼 있다.
시의회 의결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쓴 경우도 있다. 박 시장은 지난 10월 롯데와 공동선언문을 작성했다. 선언문에는 사직야구장 재건축을 위한 업무협력체계 구축 및 사용수익허가 또는 관리위탁 검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업무협약과 내용이 동일하지만 막대한 시 재정이 투입되는 사직야구장 재건축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공동선언이라는 일종의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시의회는 뒤늦게 해당 조례의 문제점을 알았다. 지난 14일 본회의를 열어 재정이 투입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시의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시의회 의결을 거치지 않으면 협약 효력이 무효화되는 단서 조항도 넣었다. 손용구 부산시의회 의원은 "조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지방자치법을 지키지 않는 게 문제"라며 "박 시장이 맺은 업무협약 상당수가 절차위반이라 향후 법적 문제가 생기면 부산시가 독박 쓸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시는 여전히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부산시 관계자는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사전 또는 사후에라도 보고를 했다"며 "체결 부서의 판단에 따라 절차를 지켜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